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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노동과 휴식이 어우러진 삶

[월간경실련 2022년 7,8월호-전문가칼럼] 노동과 휴식이 어우러진 삶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지리했던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펼쳐졌다. 너도나도 앞다투어 바캉스를 떠난다. ‘바캉스’(vacances)는 프랑스어에서 온 말로, 우리말에서 ‘피서’(避暑)나 여름 휴가의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바캉스’라는 단어는 프랑스어에서 단순히 ‘휴가’라는 뜻이어서 여름에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다만 한국어 들어와서 ‘여름 휴가’로 제한된 것이다. 영어로 들어가 vacation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프랑스어 vacances는 본래 ‘비어 있음’을 뜻하는 말이었다. ‘일의 비움, 빈집, 빈방’을 뜻하는 영어 단어 vacancy와 그 형용사형 vacant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가리라. 이뿐 아니라 evacuate((위험한 장소를) 비우다, 떠나다, 소개(疏開)시키다), vacuity(공허, 허무), vain(공허한, 헛된), vanity(덧없음, 허무) 등 상당히 많은 단어들이 이 바캉스와 동일한 어원에서 파생된 어휘들이다. ‘진공’을 뜻하는 vacuum도 마찬가지로 ‘비어 있음’의 개념 에서 왔는데, 진공청소기를 vacuum cleaner라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서 쓰이는 개념이다. 그런데, 왜 ‘휴가’가 ‘비어 있음’에서 왔을까? 여기서 ‘비어 있음’은 ‘일이 비어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꽉 찬 스케줄 표를 보면 금방 이해가 가리라. 하루가 할 일들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해 보라. 바로 실감이 날 것이다. 한편 우리말의 ‘휴일’(休日)은 글자 그대로 휴식이 있는 날이다. 휴식이란 노동으로부터의 휴식을 뜻한다. 영어 에서 휴일을 뜻하는 holiday는 ‘holy day’, 즉 ‘성스러운 날’에서 왔다. 이는 본래 ‘종교 축제’ 혹은 ‘종교적으로 보내는 날’을 뜻하였는데 14세기부터는 여기에서 종교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 일상의 노동으로부터 면제되는 휴식의 날이라는 의미가 ...

발행일 2022.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