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노동과 휴식이 어우러진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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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07.29. 조회수 13511
칼럼

[월간경실련 2022년 7,8월호-전문가칼럼]

노동과 휴식이 어우러진 삶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지리했던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펼쳐졌다. 너도나도 앞다투어 바캉스를 떠난다. ‘바캉스’(vacances)는 프랑스어에서 온 말로, 우리말에서 ‘피서’(避暑)나 여름 휴가의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바캉스’라는 단어는 프랑스어에서 단순히 ‘휴가’라는 뜻이어서 여름에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다만 한국어 들어와서 ‘여름 휴가’로 제한된 것이다.

영어로 들어가 vacation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프랑스어 vacances는 본래 ‘비어 있음’을 뜻하는 말이었다. ‘일의 비움, 빈집, 빈방’을 뜻하는 영어 단어 vacancy와 그 형용사형 vacant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가리라. 이뿐 아니라 evacuate((위험한 장소를) 비우다, 떠나다, 소개(疏開)시키다), vacuity(공허, 허무), vain(공허한, 헛된), vanity(덧없음, 허무) 등 상당히 많은 단어들이 이 바캉스와 동일한 어원에서 파생된 어휘들이다. ‘진공’을 뜻하는 vacuum도 마찬가지로 ‘비어 있음’의 개념 에서 왔는데, 진공청소기를 vacuum cleaner라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서 쓰이는 개념이다.

그런데, 왜 ‘휴가’가 ‘비어 있음’에서 왔을까? 여기서 ‘비어 있음’은 ‘일이 비어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꽉 찬 스케줄 표를 보면 금방 이해가 가리라. 하루가 할 일들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해 보라. 바로 실감이 날 것이다.

한편 우리말의 ‘휴일’(休日)은 글자 그대로 휴식이 있는 날이다. 휴식이란 노동으로부터의 휴식을 뜻한다. 영어 에서 휴일을 뜻하는 holiday는 ‘holy day’, 즉 ‘성스러운 날’에서 왔다. 이는 본래 ‘종교 축제’ 혹은 ‘종교적으로 보내는 날’을 뜻하였는데 14세기부터는 여기에서 종교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 일상의 노동으로부터 면제되는 휴식의 날이라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프랑스어에서 휴일은 ‘jour fe′rie′’라고 하는데, 이 역시 종교적인 축일(祝日)을 뜻하는 말이었다. 즉 이 단어도 holiday와 마찬가지로 종교적 의미에서 휴식을 취하는 날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라 하겠다.

이처럼 휴가는 일상적 노동의 면제라는 것을 핵심 개념으로 발달하였는데, 산업혁명 이후 노동이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면서 노동시간의 장기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 유럽인들은 이로부터의 자유, 즉 휴가의 쟁취와 휴가 일수의 확대를 위해 투쟁해 왔다. 그래서 그들은 휴가가 오면 철저하게 그것을 자신의 권리로서 지키고 즐긴다. 프랑스인들의 경우 오히려 여름의 한 달을 잘 놀기 위해 나머지 열한 달을 사는 사람들 같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이다. 그들이 저축을 하는 것은 오직 휴가 한 달을 잘 즐기기 위해서일 뿐이라는 얘기도 한다.

프랑스에는 7월에 휴가를 떠나는 사람을 가리키는 juilletiste(7월인), 8월에 휴가를 떠나는 사람을 지칭하는 aoutien(8월인)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이다. 7, 8월이면 프랑스인들의 전형적인 휴가지인 지중해 연안의 남쪽 도시들로 가는 도로들이 꽉 막힌다. TV를 통해 차량들로 장사진을 이루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이들은 이처럼 철저하게 휴식을 노동의 대립 개념으로 설정하고 이 휴가를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대한민국은 이와 정반대였다. 우리나라 사람, 특히 기성세대는 한마디로 너무 휴식을 지연시켜 왔다. 기성세대는 ‘지금은 죽어라 일하고 여가는 나중에 즐겨라!’라는 모토 아래 오직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 잡으며 희생시키는 삶을 살아왔다. 우선 부(富)를 축적하고 나중에 휴식을 즐길 것이라는 계획으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나중에 반드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보장이 있는가? 먼저 노동에 집중하고 나중에 거기에서 해방되려는 계획을 세우는 것은 그 자체로 잘못된 일이었다. 삶은 노동과 휴식의 대립이 아니라, 노동 과 휴식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동이 고통인 것은 노동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여가를 즐기면 노동도 즐거운 활동인데도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유럽이나 한국이나 양쪽이 다 지나쳤다. 유럽은 너무 휴식만을 우위에 놓는 접근을 함으로서 노동의 즐거움을 놓친 반면에 한국은 지나치게 노동의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휴식의 즐거움을 놓쳤던 것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유럽은 노동을 죄악시하고 한국은 휴식을 죄악시 했다.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부정적 감정, 소진, 복수심처럼 신체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스트레스인 ‘디스트레스’(distress)도 있지만, 긍정적 감정, 몰입, 용서와 같이 신체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스트레스인 ‘유스트레스’(eustress)도 있다. 최근에 이루어진 많은 심리학 연구는 말한다. 적당한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을 더 탄력적으로 만들어 주는 생명의 활력소라고. 이는 모두 유스트레스를 말하는데, 이는 결국 노동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사람은 죽기 전까지 자아실현에서 만족을 얻고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는 점에서 노동은 우리 행복의 원천인 것이다.

스위스의 경제학자 브루노 프라이(Bruno S. Frey)는 그의 저서「행복, 경제학의 혁명」에서, 실험 결과 소득의 상실이 가져다주는 불행보다 노동의 상실이 가져다주는 불행이 사람들에게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는데, 이는 노동이 얼마나 큰 행복의 원천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결국은 균형이다. 삶은 노동과 휴식의 균형적 결합이고, 노동과 휴식의 조화이다. 이들은 상호 보완 관계이다. 각자는 서로에게 상대가 줄 수 없는 만족을 준다. 그러므로 노동과 휴식을 분리하려 하지 말고 항상 함께 가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동과 휴식을 번갈아 할 때 여가가 꿀맛 같고, 노동도 즐거운 활동이 될 수 있다.
노동을 즐기고 휴식을 미루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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