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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기-행] 피어난 섬진강

[월간경실련 3,4월호][윤서기-행] 피어난 섬진강 최윤석 회원    잎샘이 채 가시지 않은 3월 초순, 먼저 온 봄을 만나러 섬진강에 갔다. 얼마 안 가 전국 팔도를 들뜨게 할 수많은 꽃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곳으로. 불과 그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강원도에는 대설이 내렸었다. 그런 와중에 봄꽃이 가당키나 한가? 헛걸음하는 건 아닐까? 미심쩍은 마음으로 호남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러나 기우였다. 피어났다. 잊혀지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긴 겨울을 뚫고 흐드러지게 핀 꽃숭어리들이 강촌 곳곳을 수놓고 있었다.  요즘 유독 그 ‘피어나다’라는 동사에 시선이 머무는 적이 많았다.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모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 이름이 ‘피어나’이기도(도독(?)) 하거니와, 뉴스를 보다 모 정당 대표의 배경으로 ‘봄이 되면 국민의 삶이 피어납니다’라는 슬로건에 눈길이 간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즐겨 보는 무협지 속 주인공의 대사 때문이었다. “화산의 검은 매화를 흉내 내지 않는다. 화산의 검은 매화를 피워 낸다. ‘매화’가 아니다. 바로 ‘피어남’이다.”  절치부심하며 과거의 영화를 되찾은 주인공이 그 시점에서 내뱉은, 그리 유별나지 않은 이 말 이후 꽃이 유난해 보이기 시작했다. 시절이 하 수상한 마당에 한 가로이 꽃구경을 떠난 까닭이 바로 그것이렷다. 광양 도사리 매화마을  보통 ‘광양’ 하면 제철소나 산업부두를 떠올리기 쉽지만 매화마을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하동을 마주하며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 마침 저쪽이 ‘하동(河東)’이니 맞은편인 이쪽이 ‘하서(河西)’쯤 되겠다. 뒤로는 쫓비산이 든든하게 받치고 정상에서 갈라져 나온 산자락들이 마을을 끌어안은 형세다. 매화는 그 품 안에서 자란다. 사람의 힘으로 만든, 일종의 과수농원으로, 가장 큰 홍쌍리 청매실 농원을 비롯해 수 개의 농원이 합심하여 마을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일대에서 ‘광양매화축제’가 진행되고 있었고, 방문한 날은 그 첫 주말이었다. 전날 반주(飯酒)도 참아가며 아침 ...

발행일 202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