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서기-행] 피어난 섬진강

회원미디어팀
발행일 2024.04.01. 조회수 25457
스토리

[월간경실련 3,4월호][윤서기-행]

피어난 섬진강

최윤석 회원

 

 잎샘이 채 가시지 않은 3월 초순, 먼저 온 봄을 만나러 섬진강에 갔다. 얼마 안 가 전국 팔도를 들뜨게 할 수많은 꽃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곳으로. 불과 그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강원도에는 대설이 내렸었다. 그런 와중에 봄꽃이 가당키나 한가? 헛걸음하는 건 아닐까? 미심쩍은 마음으로 호남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러나 기우였다. 피어났다. 잊혀지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긴 겨울을 뚫고 흐드러지게 핀 꽃숭어리들이 강촌 곳곳을 수놓고 있었다.

 요즘 유독 그 ‘피어나다’라는 동사에 시선이 머무는 적이 많았다.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모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 이름이 ‘피어나’이기도(도독(?)) 하거니와, 뉴스를 보다 모 정당 대표의 배경으로 ‘봄이 되면 국민의 삶이 피어납니다’라는 슬로건에 눈길이 간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즐겨 보는 무협지 속 주인공의 대사 때문이었다.

“화산의 검은 매화를 흉내 내지 않는다. 화산의 검은 매화를 피워 낸다. ‘매화’가 아니다. 바로 ‘피어남’이다.”

 절치부심하며 과거의 영화를 되찾은 주인공이 그 시점에서 내뱉은, 그리 유별나지 않은 이 말 이후 꽃이 유난해 보이기 시작했다. 시절이 하 수상한 마당에 한 가로이 꽃구경을 떠난 까닭이 바로 그것이렷다.

광양 도사리 매화마을
 보통 ‘광양’ 하면 제철소나 산업부두를 떠올리기 쉽지만 매화마을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하동을 마주하며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 마침 저쪽이 ‘하동(河東)’이니 맞은편인 이쪽이 ‘하서(河西)’쯤 되겠다. 뒤로는 쫓비산이 든든하게 받치고 정상에서 갈라져 나온 산자락들이 마을을 끌어안은 형세다. 매화는 그 품 안에서 자란다. 사람의 힘으로 만든, 일종의 과수농원으로, 가장 큰 홍쌍리 청매실 농원을 비롯해 수 개의 농원이 합심하여 마을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일대에서 ‘광양매화축제’가 진행되고 있었고, 방문한 날은 그 첫 주말이었다. 전날 반주(飯酒)도 참아가며 아침 일찍 일어났지만 이미 수많은 차량이 매화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세상은 아직 옅은 세피아 톤이었다. 뿌연 강 안개가 수면 위로 신화처럼 일렁거렸다. 늘어선 관목마다 제멋대로 피어난 떨기 꽃들이 아침 햇살에 이제 막 깨어나고 있었다.

 더 가까이 가면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할 성 싶어 조금 떨어진 마을 보건소 앞 공터에 차를 댔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날씨는 조금 쌀쌀했으나 햇살이 따듯해서 괜찮았다. 댓돌 위에서 체온을 높이는 새끼고양이도 운 좋게 마주쳤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골 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매화마을까지 10여 분 정도를 걸어갔다.

 행사장에 가까워지자 은은한 뽕짝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다 가서는 몇 곡이 섞여 들렸다. 주차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몽골 텐트와 형형색색의 광고물들에 정신이 산만해졌으나 표를 제시하고 입구로 들어서니 덜 번잡스러웠다. 상점이 없지는 않았으나 아래쪽 광장의 상점들처럼 유난스럽지는 않았다. 프로가 아니기 때문일까? 이들은 무고함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하나 같이 ‘주민이 운영하는 곳’이라는 표식을 써 붙이고 있었으며, 가격 역시 합리적이었다.

 입구로 들어서서 조금 더 올라가자 그제야 농원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음을 실감했다. 고개를 돌리면 섬진강의 그림 같은 풍경이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졌다. 사람들은 빈 배경을 재빨리 채워 들어가 행복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주최 측에서는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여러 감상 코스를 안배해 놓았는데, 농원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그 길을 따를 필요는 없었다. 전망대나 정자, 주점 등을 짧은 목적지로 두고 단단한 흙길을 자유롭게 거닐었다.

 이른 봄의 매화는 비록 4월의 벚꽃처럼 나무 전체를 지배하지는 못했지만, 한 덩어리 나무가 아니라 가지 하나하나로 개별적으로 눈에 들어와 더 가까이서 바라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이리 삐죽 저리 삐죽 자유롭게 뻗은 가지마다 떨기 꽃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매화의 하얀 꽃잎은 나비의 날개를 닮았다.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던 그 흰나비가 떠오른다. 가장 나약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먼저 나서 봄을 알리는 매화의 그 순수한 열정을 선조들은 어여삐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비단 그뿐만은 아닐 것이다. 매화는 그 자체로도 꽃답다. 가녀린 날개는 은밀한 곳에 가까워질수록 선홍빛을 띠고, 수술은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듯 과장되게 화려하다. 그 모습이 요사스럽기도 파리해 보이기도 해 내면의 야릇한 감성을 자극한다.

 나무들이 산줄기를 거스르지 않게 심어졌기에 장딴지가 수고를 겪을 수밖에 없었는데, 높이 오를수록 오히려 한적하게 걸음을 이어갈 수 있어 좋았다. 여유가 생기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닌 나무들 사이사이를 오가며 풍경을 감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여기다’ 싶게 볕이 잘 들고 경치가 기가 막힌 지검을 찾으면 꼭 거기에는 야트막한 봉분이 있었다. 자리를 고르고 골랐을 그 마음에 뭉클해졌다.

 원고 핑계로 호사를 누리고 있지만 혼자 하는 꽃구경은 처음이었던 터라 스쳐 지나간 옛사람들도 종종 생각났다. 그런 와중에 어디선가, ‘이런 데도 올 수 있을 때 와야 돼.’ 큰어머니뻘 되는 한 여인의 말에 혼자 부끄러워졌다. 효자는커녕 철들기도 아직 글렀구나 생각했다.

 발길 닫는 대로 거닐다가 느닷없이 대숲을 만났다. 보너스라기엔 과분하다. 촘촘히 자라 하나같이 높게 솟았는데도 대가 실하다. 굵기가 작은 냄비뚜껑 둘레 정도. 반질반질 윤기 나는 죽통에 절로 손이 간다. 먼저 온 봄을 만나러 왔다가 여름까지 잠시 훔쳐보고 간다.

 인파들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과장된 흥분이 전염되어 있었는지 강안으로 내려서자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등 뒤의 소란과는 상관없이 강물은 유려하게 흘렀다. 바라보며 담배를 한 가치 태우고 다시 천막이 즐비한 광장으로 갔다. 입장권으로 5,000원어치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짧은 고민 끝에 매화주 한 병을 구매했다.

 긴 운전을 앞두고 가까운 카페에 들러 휴식을 취했다. ‘소학재’라는 한옥 카페였는데, 조망이 으뜸이었다. ‘이름이 멋져서 가던 길 다시 되돌아왔어요.’라며 솔직하게 반가운 마음을 표하자 주인장도 ‘여기 소학재는 운이 좋은 분들만 올 수 있는 곳이에요.’라며 우연을 행운으로 포장해 주었다. 정말이지 분위기가 너무 근사했던 곳이기에, 부족한 지면에도 부러 장소를 일러 둔다.

마침내, 봄
 봄, 사실 이 소리 하나면 족하다. 다른 모든 말은 사족에 불과하다.

 봄. 이렇게 소리 내 부르기만 해도 입술 끝으로 다가온다, 봄이. 한결 순해진 땅을 삐죽이 헤집고 나온 잔풀의 배냇머리처럼, 꽃받침을 밀어내고 기지개를 켜는 여린 잎사귀처럼, 얘, 하고 어깨를 두드리면 달음질 멈추고 돌아보는 아이처럼. 불러봐야지, 생각하면 살풋 다물어지는 입술, 그 뒤로 숨은 잔 숨. 그러다 어떤 전조도 없이 깜짝, 아주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 톡. 나타났다가는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 엷은 미소 뒤에 숨는다.

 ‘몸’처럼 미리 울리지 않아서 신선하고, ‘폼’처럼 거칠지도 않다. ‘밤’,‘붐’처럼 유난스럽지 않으면서도 ‘범’보다는 산뜻하다. 무엇보다 받침이 ‘ㅁ’이라서, 개운하게 사라지면서도 여향을 남기는. 그래서 봄을 ‘봄’이라고 하나 보다.

 그런 봄. 이쯤에서 철 지난 영화 속 유행어를 한번 되뇌어 본다, ‘마침내’. 마침내 찾아온 봄을, 이 글을 서둘러 마치고 다시 만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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