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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평화 전도사가 아닌 영토 정복자의 길을 걷겠다는 것인가 _이승철 한양대

일본은 평화 전도사가 아닌 영토 정복자의 길을 기어코 걷겠다는 것인가 이승철 한양대 토목공학과 4학년 / 경실련통일협회 인턴   우리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 초등교육을 일본어로 받은 할머니는 팔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숫자를 일본어로 센다. 그게 더 편하다고 한다. 할머니가 해준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것 하나가 있다. 45년 8월 15일, 느닷없이 흘러나온 라디오 전파에서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그때 할머니는 정규 수업 대신 밭에서 작업을 (아마 전쟁 물자 보급을 위해 학생들을 동원한 듯하다.) 하고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는 할머니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이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지독한 한국어 말살 정책과 천황에 대한 충성 맹세 때문이었다. 지금의 할머니는 일본이 저지른 잔악한 전쟁 범죄와 식민 지배에 통탄을 금치 못한다. 광복한 지 5년 만에 겪어야 했던 6.25의 참혹함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전쟁에서 진 일본은 무조건 항복과 함께 ‘육, 해, 공군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이를 더 발전시켜 평화헌법 9조를 제정하여 발표한다.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써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의 평화 헌법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끈질기게 성찰한 끝에 내놓은 의지의 산물이었다. 비록 잘못에 대한 뉘우침이라고는 해도 평화 헌법이라는 조항은 그 자체로 일본이 세계에 자랑으로 내놓을 만한 정신적 보물임에 틀림없다. 또한 칸트가 영구 평화를 위해 제시한 단서를 한 나라가 성문법에 실제화시켜 놓았다는 사실은 일본이 세계 평화의 전초 기지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이 자랑스러운 헌법의 정신을 수출하고 세계에 전파시켜도 모자랄 판국에 일본 정부는 그것의 해석을 각의 결정만으로 변경해버렸다. 인류의 위대한 발걸음을 일본 정부가 자진해서 후퇴시킨 것이다. 나는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일본 정부의 집단 자위권 용인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아무리 침체기라 해도...

발행일 2014.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