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의와 생태정의가 공진화(共進化)하는 사회

관리자
발행일 2009.11.21. 조회수 462
칼럼

경제정의와 생태정의가 공진화(共進化)하는 사회


 



최덕천(경실련 상임집행위원)


 


1. 경제패러다임의 전환


1980년대의 민주항쟁과 88올림픽을 떠올려 본다. 그 거대한 물결이 지나간 뒤 우리는 다양한 경제적 불의에 직면하게 되었다. 부동산투기와 금융부정, 노동문제와 재벌집중, 빈부격차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한 시민의 자각에서 ‘경제정의’가 등장하였다. 1990년대 들어서는 환경관리를 하면서 경제발전을 하기 위해 ‘환경정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였다. 
21세기에 들어서 지구온난화 등에 따른 화석문명의 한계, 종(種)의 위기, 식량의 질 문제가 가시화되면서 생태주의가 세기적인 화두로 등장하였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환경·생명문제를 세계화’ 하는 부작용도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경제정의와 환경정의는 현 단계 자본주의적 경제체제 안에서 시장경제의 합리성을 회복하고, 소득분배의 형평성과 삶의 질 향상 문제를 주로 논의하였다. 어디까지나 ‘소득문제’가 논의의 중심이고, 인간이 중심이었던 셈이다.
이렇듯 경제패러다임은 고도성장주의에서 환경관리주의로, 다시 생태주의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특히, 지구온난화와 각종 환경병과 같은 거대한 담론들이 생태주의에 대한 요구를 앞당기고 있는 것이다. 


 


2. 화석문명을 넘어 자연자본의 시대로!


환경정의가 지구적 사고라면 생명정의는 인류적 사고이다. 환경정의는 생명정의, 나아가 생태정의로 이어 진다. 환경과 생명은 비가역적이다. 생명은 다시 부활하지 못하며 재활용할 수 없다. 불의한 경제든 부정한 환경이용이든 개인이 입는 피해는 간접적인 경우가 많지만, ‘생명’은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피해를 준다.



생명정의는 생명의 가치를 구현하고자 한다. 즉, 모든 생명과 자연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고, 인간의 윤리적 책임범위를 확대하여 자연을 생명의 터전으로 끌어들여 생명의 아름다움을 공평하게 향유하자는 것이다. 생명이란 매우 다의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래서 기계론적 사고나 합리주의적 사고로 파악하기 어렵고, 그래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생명의 가치는 외부화(外部化) 되고 만다.



그 동안의 경제패러다임은 소득-인간-시장 중심으로부터 삶의 질-생태계-공동체 중심, 즉 생태경제로 점차 이행해 가고 있다. 생태경제의 과제는 인간-생태-경제가 상생하는 균형해법을 찾는 것이. ‘화석’을 대체하는 재생성 자원인 자연자본(natural capital)을 지배적 생산요소로 하여 부가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면서도 생태계를 보전하는 경제체체이다.
생명정의가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생태정의(ecological  justice)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동안 경제활동에 투입되었던 자원과 화석에너지는 소진성 자원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생태계를 파괴하고서는 현재와 같은 화석문명을 지속할 수 없다. 생태계의 자정능력이 이미 한계를 초과하였다. 한편에서 생태계 파괴를 수반하며 새로운 소득을 얻게 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 피해가 다수에게 전가되고, 생태적 불의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생태정의의 정신이다.



생태위기를 미시적으로 관리하면서 경제성장을 지속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지구적·인류적 과제 앞에서 ‘저엔트로피 지속가능한 발전’이 정책기조가 되었다. 생태경제가 지향하는 것은 생태와 경제가 화해·협력하는 것이다. 생태적 관점에서 경제(시장)를 분석하고, 인간 삶의 질을 지속하기 위해 물질과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새로운 문명체계이다.


 


3. 생태와 경제의 상생을 기대하며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경제정의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지금 도처에서 경제적 불의가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 위협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는 자본주의적 경제순환이 생태적 순환보다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시장실패’의 그늘이 아닐까? 경제의 체질이 바뀌어 가고 있는 데, 증상에만 미시적으로 처방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생태주의적 시각에서 경제적 정의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리하여 경제와 생태가 함께 발전하는 공진화(co-evolution) 과정에서 경제정의를 찾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을까?



초학제적 관점에서 보면, 경제순환은 생태계순환과 유사하다. 생산-유통(분배, 분해)-소비 순환시스템이 그렇다. 경제시스템은 사람과 제도가 주관하고, 생태시스템은 자연이 주관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생태경제에서는 정치·사회·문화·해외 등 각 부문이 마치 생태계처럼 연계되어 하나의 시스템을 이루고 상호작용 한다고 본다. 즉, 정부와 시민의 협치, 저엔트로피(low entropy) 생산-소비구조와 지역경제 시스템, 문화다원주의와 생태적인 문화 콘텐츠 향유, 생태적 순환문화의 생활화를 추구한다. 지역별 생태적 공동체, 특히 도·농 생태공동체를 권장한다. 세계화를 수용하면서도 그것의 반생태적·반생명적 문제를 지적하며 지역공동체를 통해 보완해 낸다.



생태사회는 소득보다는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한다. 이에 따라 재생에너지 등 생태산업, 생태순환적 산업단지, 생태도시, 생태농업, 생태관광, 녹색소비, 생태공동체, 주민자치, 생태적 복지 등이 경제정책의 기조가 된다. 생태정의의 초석은 생태농업이다.
이제 생태정의라는 거대한 흐름 위에서 경제정의·환경정의가 추구했던 가치들을 한번쯤 재음미해 볼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약력>
전 경실련 환경농업실천가족연대 사무처장 
   경실련 중앙위원
현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상지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교양과 교수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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