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발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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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9.11.20. 조회수 2580
칼럼


사회발전의 의미


 


 




이근식(경실련 공동대표)


 


사회발전은 다음과 같이 경제발전, 자유와 평등의 확대 및 상생의 확대의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회발전의 첫 번째 내용은 경제발전이다. 사람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생존이고 생존에 필수적인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경제발전이므로 경제발전은 모든 사회발전의 토대이다.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야 자유와 평등도 의미가 있을 것이므로 사회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문제의 해결일 것이다. 밀(J. S. Mill)은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다음, 인간이 개인적으로 가장 강하게 욕망하는 것은 자유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는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지만 또한 생존이 자유보다 우선임을 인정한 말이다.  경제가 발전하여 우선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정치, 예술, 학문 등 다른 것들의 발전도 가능하고 자유와 평등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발전이 자원낭비와 자연파괴를 초래하는 과소비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연파괴형 대량소비는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는 것이 분명하여졌으므로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을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절대빈곤을 벗어나지만 과소비가 아니라 자원을 최소로 소비하는 소박한 삶을 지향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발전의 두 번째 내용은 자유와 평등의 확대(사회적 억압과 차별의 감소)이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이를 추구할 때에만 삶의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아의 인식과 실현이 곧 자유이다. 만인평등의 원리에서 자유의 당위성이 도출된다. 모두가 평등하므로 아무도 다른 사람을 강요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등의 실현은 자유를 내포하지만 굳이 자유와 평등이라고 한 것은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아직 여러 가지의 잘못된 사회적 차별이 남아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절대빈곤에 의한 차별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상대적 빈곤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박탈하는 절대빈곤은 만인평등과 분명 배치된다. 인간의 기본권을 모든 사람에게 보장하는 것이 만인평등의 기본 내용인데, 절대빈곤은 첫 번째 기본인권인 생존권을 박탈하기 때문이다.



만인평등에 기초한 자유주의의 보급 덕분에 근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사회적 차별이 철폐되거나 축소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재산, 학벌, 집안, 성, 권력, 인종, 종교, 지역 등을 기준으로 한 차별이 우리의 마음과 행동에 많이 남아 있다. 장애인, 후진국 출신 외국인, 미혼모,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엄존한다. 국제사회에서는 국내사회에서보다 차별이 훨씬 심하다. 전쟁은 국제사회에 차별이 존재함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강대국의 야만적 폭력이 국제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인류문명이 발전함에 따라서 차별이 점차 축소되고는 있지만 부당한 차별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항상 존재할 것이다. 이런 차별을 축소해 나가는 것이 사회진보일 것이다. 진보주의(progressivism)란 바로 사회적 차별을 철폐해 나가는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진보주의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나 항상 필요하다.


 


사회발전의 셋째 요소는 상생의 증대이다. 증오, 범죄와 싸움이 사라져야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미국은 대표적 선진국이지만 인구의 약 1%가 감옥에 수감되어 있고, 총기범죄로 수많은 사람들이 매년 살해되고, 의료보험이 없어서 큰 병에 걸리면 죽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사람이 5천만 명에 이르는 나라이다. 이런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상생(相生)의 원리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생명 및 모든 존재의 소중함을 인정하여 자신의 권리와 똑같이 이들의 정당한 권리를 존중하면서 이들과 서로 도우면서 함께 살아감을 말한다. 즉, 공생하는 모든 존재들이 함께 서로 존중하면서 돕고 사는 것을 상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에게 절대적으로 소중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존재도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소중하며 다른 존재가 있음으로 비로소 나의 존재가 가능하므로 나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도 존중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생의 원리에서 우리는 분배갈등, 노사갈등, 진보와 보수의 갈등, 국제분쟁 등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개인성(개체성)과 사회성(공동체성)의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는데, 이 중 개인성에서의 원리를 자유라고 한다면, 사회성에서의 원리를 상생이라고 하겠다.


 


상생의 원리에서 보면, 자연의 존중은 당연하다. 자연도 우리와 상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편협한 인본주의에 입각하고 있는 근대 서양 과학문명은 자연을 수단시하여 자연을 마구 파괴하여 왔다. 만일 칸트가 오늘 살아서, 탐욕스럽고 잔인한 인간들이 수 없는 동식물들을 멸종하고 산하를 끝없이 파괴하고 있는 현대를 본다면,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여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까? 자연을 두려워하여 자연에 순응하며 산다는 것은 동양만이 아니라 근대 과학이 발달되기 이전에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재와 같은 무분별한 자연파괴는, 우리가 탑승하고 우주를 항해하고 가는 지구라는 작고 아름다운 일엽편주의 배를 우리 스스로 파괴하는 자해 행위이다. 인간의 권리가 존엄하다면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를 잉태한 자연 자체는 더 큰 존엄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약력>
전 경실련 중앙위원회 의장
   정책위원장
   상임집행위원장
   상임집행 부위원장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경실련 통일협회 이사   
현 경실련 공동대표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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