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의 증권시장투입에 대한 경실련 입장

관리자
발행일 2001.04.09. 조회수 3315
경제

 최근 정부당국은 증시부양을 위해 연내에 약 6조원 규모의 연기금을 증시 에 투입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약 11% 수준인 연기금의 주식편 입 비율을 2∼3년내 20%까지 높이겠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지만 이러한 정책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1. 그렇지 않아도 부실하기 짝이 없는 연금재정에서 자금을 끌어다 투자 위험성이 높은 주식시장에 투입한다는 것은 경제정책의 실패를 일시적으로 가리기 위해 국민들의 미래 노후생계자금까지도 서슴치 않고 끌어다 쓰겠다는 무책임하고 치졸한 발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진국 중에 서 세계적인 경기하강으로 인해 침체되고 있는 증권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기금의 안정적 운용이 무엇보다 중요한 의무가입형 국민연금에서 돈을 꺼내어 퍼붓는 나라는 없다.


개인연금이나 기업연금과 같은 임의가입 형 연금의 경우는 가입자들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주식형 펀드로 운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무가입형 국민연금을 지금과 같이 증권시장이 매우 불안정한 시점에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에 투자해도 된다는 무모하고도 무 지한 발상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관료들 뿐인 것 같다.


2. 우리는 정부의 아마추어적 증시부양책이 실패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한국은행의 발권력까지 동원하면서 투신사를 앞세워 실시한 인기위주의 부양책은 오늘날 투신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채 여지없이 실패하고 말 았다.


기관투자가에게 무조건 매수우위를 강요하는 지시, 증시안정기금 의 인위적 설정과 운용 등 각종 반시장적이고 즉흥적이며 임시방편적인 증시부양책도 대규모 사회적 손실만 남기고 모두 실패하였다. 실패한 증 시부양정책의 결과는 참담하였다. 정부를 믿은 순진한 투자자의 피해, 증권시장의 낙후, 증권시장에서의 시장원리 배척, 증시의 기초체질 약화 등 은 물론이고 정부와 정부정책에 대한 원망과 불신은 다른 정책의 효과성까지 떨어뜨리고 있다.


더욱 슬픈 것은 정부가 과거의 정책실패에서 배우 려 하지 않고 근시안적으로 임시방편에만 매달리면서 동일한 실패를 반복 하려는 유혹에 끊임없이 빠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3. 최근 환율급등과 증시침체로 인한 경제불안은 이미 작년 10월 이래 수 차례에 걸쳐 경고해 왔던 일임을 정부당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세계경제가 하강국면에 들어서면서 미국과 일본의 증시가 약세를 보이고 있으며, 우리 증시도 세계경제의 흐름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최근의 환율급등은 상당부분 엔화가치의 급락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지 난 10여간 일본경제의 구조조정이 부실한 데 원인이 있다.


그러나 원화가치 하락의 보다 근본적 원인은 우리 경제의 체질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대규모 기업부실이 드러나고 경제전망이 급속하게 어두워지고 있음에 도 정부는 경제운영에 있어 리더쉽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정치지도자와 정책담당자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경제의 미래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으며 현대그룹에 대한 특혜와 4대 개혁의 실패 등으로 한국의 국제신인도는 급락하고 있다. 이러한 국내외 사정을 고려할 때 한국의 주가지수가 독야청청 상승할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4. 이러한 상황에서 증시부양을 위해 4대 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은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다. 현 시점에서 연기금을 투입하여 세계적인 경기흐름을 막아보겠다는 발상을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믿을 만한 전문가는 없다. 지금은 정부가 서투르게 개입하는 것보다 증권시장이 세계경제 흐름의 대세에 순응하면서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 좋다. 정부가 무엇인가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익성을 향상시키는 데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 단기적인 증시부 양책은 대부분 큰 부작용만 남기고 실패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5. 금융부실 정리에 필요한 공적자금의 예측을 수시로 바꾸고, 마지막이라던 현대에 대한 특혜적 지원을 반복하면서 심각한 상황을 가벼운 듯 거짓말을 되풀이 해 온 정부당국이 이제는 연기금을 투입하면 장기적으로 증시가 부양될 것처럼 말하고 있다. 땜질식 처방과 인기몰이식 경기부양 책이나 증시부양책으로는 다시 밀려오는 거대한 경제위기의 파고를 막아 낼 수가 없다.


시장원리에 충실한 금융시장 운영, 시장원리에 합치하는 기업구조개혁, 그리고 투명하고 공개적인 정책결정을 통한 신뢰회복만이 우리 경제의 살길이고 환율안정은 물론 증시부양의 지름길이다. 이제 미사여구나 임기응변은 모두 그만 두고 다시 기본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더 늦기 전에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고 정부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을 찾아 위기로 치닫고 있는 경제를 바로잡게 하고 나라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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