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미망(迷妄)_김성훈 경실련통일협회 고문

관리자
발행일 2013.10.16. 조회수 827
칼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미망(迷妄)


 


김 성 훈 경실련통일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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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용어에 축약되어 있다. 북한이 지금이라도 핵을 포기하고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남북한 공동발전과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남북 비무장지대(DMZ) 안에 세계 생태·평화 공원을 짓겠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비핵개방 3000'을 생각나게 한다.


 


그 결과인지 원인인지 알 수 없지만, 박 정부 들어 개성공단이 165일간 폐쇄되었고, 남북 이산가족 만남이 며칠 앞두고 취소되었으며, 금강산 평화관광 재개의 희망 역시 좌절되었다. 제각기 자기 구역 안에 DMZ 평화공원을 유치하겠다고 경쟁을 벌이던 경기도와 강원도 간의 물밑경쟁도 머쓱해졌다.


 


그런가 하면, 57개 대북협력 민간단체들의 굶주림에 고통 받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에 대한 기초 영양·식량지원과 대북 수해지원 계획은 통일부가 승인하지 않았다.


 


인도주의가 상호신뢰 형성 기본


 


북한에 산모용 필수 의약품과 의료소모품을 보낸 후, 그 전달여부와 사용처, 향후 지원 방향을 협의할 계획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인명진 목사, 영담 스님 등 지도자들의 방북 신청마저 불허되었다. 도대체 말로만 '신뢰' 관계가 이뤄질 수 있다면야 모르겠지만 백 마디가 불여일선(不如一善)이 아니던가. 수많은 세월 켜켜이 쌓여 온 남북간의 오해와 갈등 불신을 풀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고 서로 돕되 가장 시급한 배고픔과 굶주림 문제부터 도와주려는 인도주의적 자세가 기본이다.


 


처음부터 정부당국이 전면에 나서기가 곤란하면 인도주의적인 민간끼리의 교류와 협력을 선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부가 개입하더라도 비정치적인 이산가족 상봉이라든지 문화, 예술, 체육, 과학, 사회, 경제 협력문제부터 시작하여 종국적으로는 정부 간의 정치, 군사, 핵, 평화통일 문제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보편적인 평화 프로세스이고 신뢰 프로세스이다.


 


남북한 간에 긴장이 고조되는 동안 중국은 북한의 주요 광산과 항구, 통신, 교통, 산업 등 인프라 부문까지 석권하였다. 북중경협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황금평 일대의 북녘 땅과 중국을 잇는 신압록강대교 마저 완공을 앞두고 있다. 말만 번드레한 '비핵개방 3000' '신뢰프로세스'가 난무하는 가운데 남북관계는 지지부진하다.


 


이제 박근혜 정부 4년 4개월 남은 임기동안 큰 성과를 내려 서두를 것이 아니라, 이 같은 믿음(신뢰)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일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천리 길(평화통일)을 가려는 사람일수록 한 걸음 한 걸음 신뢰를 쌓아가는 꾸준한 노력 외에는 왕도(王道)가 따로 없다. 남북관계에 백해무익한 국내 정치권의 NLL 논쟁과 정상 대화록 논란은 제발 접어야 한다. 교류협력을 가로 막는 MB의 5·24 조치 역시 우리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깨끗이 백지화해야 한다.


 


누누이 강조하거니와 서로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는 일부터 복원하고 인류의 보편적 인도주의 기아문제를 도와가야 신뢰가 생긴다. 배고픈 어린이와 노약자를 돕는 문제를 가지고 '퍼주기' 운운하는 악담에 휘둘려서도 아니된다. 금강산 평화관광 재개 문제를 놔두고서 DMZ 세계 생태·평화 공원 건설을 주장하는 것 역시 일종의 위선행위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 오찬을 하며 북한 어린이들의 참상을 전하는 사진을 보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북한 청소년들의 키가 우리보다 10센티는 더 작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어린이들에게 영양 식량을 지원하겠다는 민간단체의 인도주의적 선행을 막는 것은 '퍼주기' 운운보다 훨씬 더 가혹한 위선이다. 감동을 수반하지 않는 남북 공동사업은 사상누각이며, 신뢰를 불러들이지 못하는 대북정책은 안하는 것만 못하다.


 


식량·농업 공동 협력사업 재개해야


 


진정 한반도에 '신뢰 프로세스'를 정착시키려면 인도주의적 교류 협력사업부터 시작해야 옳다. 식량·농업 공동협력 사업을 다시 열어야 한다.


 


조건 없는 배려와 나눔 정신이 선행되고, 그 다음 고기 잡는 방법과 수단의 제공, 격의 없는 '대화의 장' 마련이 신뢰 프로세스를 여는 열쇠이다. 그야말로 "미워도 다시 한 번" 미운 새끼에게 젖 한 번 더 물리는 인내와 관용이 선결조건이다.


 


※본 칼럼은 내일신문 창간 20주년 기념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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