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 정말 언론재갈법인가요?

관리자
발행일 2021.10.06. 조회수 7252
칼럼

[월간경실련 2021년 9,10월호-시사포커스(2)]

정말 언론재갈법인가요?


- 언론중재법 처리 과정을 통해 본 언론중재법의 필요성 -


이하람 정책국 간사



나는 변태다. 이슈에 대한 성명이나 보도자료를 배포하거나 토론회, 공청회 등 행사를 진행하고 나면 항상 ‘공공병원 경실련’, ‘부동산 경실련’, ‘보장 률 경실련’ 등 이슈 키워드와 경실련을 합쳐 검색해보는 편이다.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게 보도되고, 일반 시민들의 반응이나 의견은 어떠한 지 살핀다. 그러다 보면 함께 고생한 동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아쉬운 결과를 접하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이슈에서 많은 관심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조금 변태(?) 같지만 즐기는 편이다.

사실 몇 개월 시민단체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점은 시민단체는 언론과 친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과장되게 이야기하면 언론은 시민단체의 입이 되어준다. 언론보도에 우리들이 준비한 모든 내용이 담기지는 않지만, 한 줄의 보도만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최근 언론 관련 법안인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 처리를 두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고 있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 에 관한 법률」은 언론사 등의 언론보도 또는 그 매개로 인하여 침해되는 명예나 권리, 그 밖의 법익에 관한 다툼을 조정·중재하는 등 실효성 있는 구제 제도 확립함으로써 언론의 자유와 공적 책임을 조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로 줄여서 ‘언론중재법’이라고 한다.

지난 7월 27일 언론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피해 구제 강화를 목적으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상정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종합한 개정안이 문화예술법안소위를 통과하였고, 8월 10일 상정되었으며 8월 19일 대안이 가결되어 8월 24일 법사위에서 개정 가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3시간의 사투 끝에 8월 25일 새벽 4시경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그렇다면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언론중재법 개 정안은 악법인가?

8월 23일 경실련의 입장을 발표하기 전에는 사실 내부에서도 언론중재법에 대한 의견이 매우 다양하였다. 상근자, 변호사, 교수 등 많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해당 법안에 대한 의견이 매우 다양하여 의견수렴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언론 피해에 대한 배상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21조>와 <민법 제764조>에는 오보나 고의 적 조작 보도로 인해 명예와 같은 인격권이 침해되었을 경우 명예를 다시 회복시키는 등의 구제 방안이 부족했고, 금전적으로도 실질적인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행법을 개정하여야 한다는 취지에는 모두 공감했다. 그래서 언론중재위원회의 위원 정원을 확대하고 위원 추천 등의 규정을 보완(제7조 및 제8조)하며 정정보도 청구기간의 확대(제14조), 정정보도 청구방법 다양화(제15조), 정정 보도의 규격 지정(제15조) 등의 개정 내용에 대해서는 적극 환영하였다. 다만 신설된 기사열람차단청 구권(제17조)의 경우 정정보도나 사실관계의 재확인이 아닌 기사 삭제, 열람차단 조치를 통해 표현물의 유통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그리고 상당성의 원칙을 침해할 소지가 있어 반드시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렇다면 신설된 기사열람차단청구권 조항만 삭제된다면 언론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언론 에서 ‘언론재갈법’이라며 해당 법안의 처리를 반대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① 징벌배상제 도입

먼저 언론에 징벌배상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개정안 제30조의2 제1항에 따르면 법원은 언론 등의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라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또는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 배상액을 정할 수 있게 되었다. 즉,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를 한 언론사는 소액의 금전적 배상이 이루어졌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징벌적’ 손해배상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언론에 징벌배상은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에 한해 적용된다. 단순 과실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 제기의 남발, 제도의 남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허위 조작 보도는 명예와 같은 인격권을 침해하고, 인격권의 침해는 어쩌면 회복할 수 없는 손해라는 점에서 언론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강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징벌배상을 도입하는 것은 타당하다.

② 불명확한 고의·중과실 추정요건
언론에게 입증책임을 전환하기 위한 고의·중과실 추정요건(제30조의2 제2항)이 불명확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도 있다. 이 법은 ‘명백한 고의, 중대한 과실’을 ①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 ②허위·조작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 ③정정보도·추후보도가 있었음에도 정정보도·추후보도에 해당하는 기사를 별도의 충분한 검증 절차 없이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 ④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자료를 조합하여 새로운 사실을 구성하는 등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라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이 명시한 추정요건은 추상적이고 모호하여 명백한 고의와 중대한 과실에 대한 판단이 어렵고 언론의 자유를 규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미 타 법에서 중대한 하자, 명백한 하자 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불법행위를 규정하고 이에 대한 판단은 사법부에 맡기고 있다. 따라서 언론중재법 역시 추정요건을 삭제하고, 판단을 사법부에 위임하는 것이 옳다.

③ 입증책임의 전환

개정안은 추정요건을 규정하여 소송이 발생한 경우 가해자인 언론사가 불법한 행위가 없었다고 입증하게 만들었다. 현행 민법은 불법한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소송을 제기하는 자에게 있다고 정하고 있다. 즉, 피해자가 입은 피해에 대한 증명을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뜻이다. 최근 일부 법률에서 입증 책임을 가해자에게로 전환하고 있지만 이는 기업과 개인 간의 정보 격차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언론은 기업과 다르다. 기업처럼 보도한 사실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지도, 과점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입증 책임을 전환하여 언론사에게 불리한 법적 지위를 부담시키는 것은 언론사에게 소송을 피하기 위한 보도만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과 다름이 없고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행위이다.

돌아가서, 지난 8월 23일 성명을 작성하고 또 변태처럼 ‘언론중재법 경실련’을 검색했다. 어떻게 보도되었고, 어떤 반응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검색 결과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언론중재법은 언론으로 인한 피해자 구제를 위해 만들어진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해당 법안이 피해자 구제에 얼마나, 어느 정도의 효과성을 거둘 수 있을지를 중점으로 한 보도가 아닌 ‘언론사가 볼 피해’에 집중된 기사만이 쏟아져 나왔다.

작성한 성명에 대한 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성한 성명을 요약하자면 ‘언론중재법의 도입은 찬성 하나, 고의중과실 추정요건, 기사열람차단청구권 같은 독소조항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해당사자 간 숙의를 통해 합의안을 만들어 차근차근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론중재법의 도입은 찬성하나’는 삭제된 채 ‘고의·중과실 추정요건의 문제, 기사열람차단청구권의 문제’만 보도되고 있었다. 그리고 편집된 내용만을 다루는 보도를 보며 생각했다. 이것이 ‘언론중재법이 필요한 진짜 이유이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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