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국민 염원 왜곡하고 의사특례법으로 전락시킨 책임져야

관리자
발행일 2009.12.30. 조회수 1715
사회

의료사고 피해 구제를 위한 20년의 국민 염원을 왜곡하고  의사특례법으로 전락시킨 국회와 정부에 책임을 묻는다.


20여 년 동안 국회에서 표류되어 온 의료분쟁조정과 피해구제를 위한 제정법이 29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상임위를 통과한 제정법은 이 법의 핵심 골격이자 법제정의 실효성을 판단하는 주요 근거인 입증책임전환의 명시적 규정을 회피하고 의료사고의 제반사항을 객관적으로 조사, 감정하는 별도의 기구(의료분쟁조정중재원) 설치로 대신하였다. 그럼에도 형사처벌특례를 허용하고 의료배상공제조합의 설립을 임의화하고 무과실보상을 허용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정부와 국회의 직무유기로 인해 환자 측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채 의료인 측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법안으로 전락하였다. 더욱이 국회가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지 불과 하루도 안 된 시점에서 상임위 통과를 강행하더니 30일에 법사위원회를 거쳐 31일 본회의 상정을 앞두는 등 졸속 추진 강행을 거듭하며 여론수렴의 과정을 왜곡시키고 있다.


경실련은 의료분쟁조정과 피해구제를 위한 제정법이 의료사고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오랜 염원이자 20년 만에 처리하는 것임에도 국회가 수십 년 동안 반복되어온 피해자들의 고통을 적극 대변하고 이를 항변하기 위해 강력한 태도를 견지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국민들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면서까지 법처리를 하려는 취지가 무엇인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이번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이 피해자들에게는 신속한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고 의료진들에게는 안정적 진료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기반마련이라는 애초의 법제정의 목적과 취지와 달리 환자들에게만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하는 법안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에 경실련은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안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의료사고 피해구제를 위한 국민의 염원을 왜곡하고 의사특례법으로 전락시킨 국회와 정부에 책임을 묻고자 한다. 아울러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에 책임있는 행동을 요청하며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힌다.


첫째, 그동안 의료기관 현장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는 환자, 의료인 양자 모두에게 많은 고통과 피해를 안겨주었지만 이를 중재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관련 법률이 없어 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과 분쟁의 악순환이 계속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사고와 분쟁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신속한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법제정의 필요성은 다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미 경실련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7월15일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제정을 위한 국민청원안(박은수 의원 소개)을 국회에 제출하였고 청원안은 최영희의원 대표발의안(의료사고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과 심재철의원 대표발의안(의료분쟁 조정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과 함께 법안심사소위에 회부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상임위를 통과한 소위 대안은 이 3개 법안의 장단점을 수정한 대안이 아니라 법안심사소위 논의 전부터 복지부가 만들어 국회에 제출한 정부안으로 해외환자유치를 위해 다급해진 정부의 태도와 입법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정부안에 들러리 역할을 자임한 국회가 빚어낸 합작품에 불과하다.


둘째, 입증책임전환 규정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 의료사고로 인한 민사소송에서 환자 측의 입증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추세이고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등에 관련한 규정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취지의 타당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어 왔다. 의료사고의 원인과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일은 의료행위의 전문성 및 밀실성을 특성으로 하고 진료기록도 의료기관에서 기록한 자료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에서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나 그 가족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의료의 전문적이고 특수한 영역을 고려해 입증의 어려움으로 실체적 진실규명과 적절한 피해보상을 받기 불가능했던 문제 때문에 전문가인 의료인이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하도록 바꾸는 것이 형평의 원칙에 부합하다는 것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입증책임전환에 대한 명시적 규정은 외면한 채 없이 오직 의사들에게 유리한 형사처벌특례만을 허용한 것이어서 형평성이나 무기대등의 원칙을 훼손하고 현재의 의료인과 환자의 불균형적인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셋째, 수술실이나 중환자실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사후적으로 진료기록지를 통해 확인하게 되지만 밀실성을 전제로 한 수술실 등에서의 진료기록상의 내용만으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실제 해당 의료인이 아니고는 수술실이나 중환자실에서의 의료행위의 전 과정을 파악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한 독자적인 감정기구라 하더라도 입증책임에 대한 명시적 규정 없이는 의료행위를 둘러싼 과실 유무와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내용의 한계가 너무도 명백하다. 더욱이 의료소송과정에서 감정의 편파성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한 독자적인 감정기구의 구성만으로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감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상임위를 통과한 이번 법안은 의료사고의 실체적 진실은 규명하지 못한 채 의사에게 면제부만 주는 반면 조정과정을 통한 환자들의 피해구제의 실익과 실효성은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넷째, 그동안 의료계는 형사책임특례를 주장하는 논거로 형사처벌 부과시 의료인의 위축으로 인해 방어적 의료행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 의료인이 의료사고의 위험에서 벗어나 환자진료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고 과잉검사, 위험환자의 기피 등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그 이익이 모든 국민에게 미치기 때문에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특례는 평등권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의권이 위축될 정도로 의사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하는 사례는 거의 없으며 실제 이익이 모든 국민에게 미친다는 것만으로 의사에게만 특례를 인정하는 것은 타 부문과의 형평성 문제를 고려할 때 타당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사책임특례를 도입하려면 입증책임전환규정이 반드시 들어가야 균형이 맞는다. 그런데도 이번 상임위를 통과한 제정법과 같이 입증책임을 전환하지 않아 환자에게 손해배상권리가 원칙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형사책임특례를 인정하는 것은 결코 법의 논리와 균형에 맞지 않는 것으로 의료계의 기득권 보호에만 급급한 것에 다름 아니다.


다섯째, 무과실 보상책임에 대하여는 과실 입증이 어려운 경우 불가항력적인 사고로 결정하기 쉽고, 그러한 경우 악결과가 중함에도 불구하고 입증을 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무과실 보상으로 도피하려는 경향에 대한 대비책이 없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에 경실련은 다시한번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지금이라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처리를 보류하고 법제정의 취지에 부합하고 법리적으로 균형적인 제정법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책임있고 현명한 행동을 보여주길 간곡히 요청한다.


[문의: 사회정책팀 02-3673-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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