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지현·홍민정 공동대표

관리자
발행일 2023.07.28. 조회수 42212
스토리

[월간경실련 2023년 7,8월호][특집.킬러문항과 사교육(1)][인터뷰]

“승자가 독식하는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지현·홍민정 공동대표 -


문규경 회원미디어국 간사



교육계가 ‘킬러문항’ 배제를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킬러문항’이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출제되는 문제 중에서 초고난이도 문제를 말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킬러문항’이 교육 당국과 사교육 업계의 보이지 않는 이권 카르텔의 산물이라고 밝혔습니다. 다시 말해, 학생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켜서 사교육비 지출을 증가시키는 원흉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킬러문항 방지법 캠페인을 비롯하여 한국 경쟁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온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지현·홍민정 공동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 월간경실련 구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홍. 안녕하세요. 월간경실련 구독자 여러분! 저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이자 상임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홍민정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구독자분들과 지면을 통해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갑고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 반갑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정지현입니다. 2010년부터 상근자로 활동을 하다가 2020년에 공동대표로 취임하여 홍민정 대표님이랑 같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영유아 자녀 2명을 키우고 있는 부모이기도 합니다.


Q. 한국의 사교육 시장은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이라고 표현할 만큼 거대한데요. 사교육이 지금처럼 커지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홍. 승자가 독식하는 사회라는 이유가 가장 큽니다. 공교육 안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 계속해서 경쟁해야만 하고, 그렇기 때문에 경쟁에서 유리할 수 있는 자원들을 사적으로 공급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초·중·고 12년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대입. 즉, 출신 대학에 따라서 소득 차이가 나고 승자독식의 경쟁 구조에서 살아남아 명문대 타이틀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을 하다보니 사교육이 끊임없이 투입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무한경쟁사회에서 사교육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고, 많이 투자한 사람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에 중독처럼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쟁 교육과 승자독식의 구조를 어떻게 해체할 수 있는가가 가장 큰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이러한 현상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교육 시장의 마케팅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변화무쌍 합니다. 교육 정책이 바뀔 때마다 거기에 발맞춰서 부모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한 사교육 마케팅을 만들어내고 있거든요. 개인이 개인의 자원을 활용해서 내 자녀에게 안전망을 만들어주려고 하는 이러한 흐름은 현재의 사회 시스템상에서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홍. 우리나라는 세컨드 찬스가 없습니다. 대학교로 인해 삶이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렵더라도 다시 노력해서 재기하거나 다시 새로운 꿈에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이 허용되지 않고 폐쇄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계층이 계급화되는 사회가 되고 있어서 불안 마케팅에 힘입어 사교육 시장은 커지고 있는 거예요. 불안의 또 다른 표현이 사교육 시장의 팽창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정. 최근에 만난 분의 사례를 들려드리면, 서른 살된 자녀가 캐나다로 공부를 하러 갔다고 합니다. 근데 자녀가 캐나다에 가서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 갔더니 서른 살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풍부하더라는 거에요. 한국에서 서른 살이라고 하면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굉장히 두려운 시기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데, 거기서는 한국에서처럼 쫓기듯이 살지 않아도 된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 다시 무언가를 배우고 싶을 때 기회가 열려있다는 것을 자녀를 통해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빠른 속도로 경쟁에 밀어넣고 있는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유아들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빨리 한글을 떼야 하고, 빨리 숫자를 떼야 하고, 빨리 영어에 충분히 노출을 시켜서 영어에 익숙한 아이로 만들어야 하는 이런 속도 경쟁을 하는 중이잖아요. 그래서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거기에 쫓기면서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세컨드 찬스가 없고 속도 경쟁하는 사회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제오늘 이야기했던 것이 아닌데 정부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본적 대책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고 일시적인 대책들만 제시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똑똑한 학생들을 잘 선발할 것인 가에만 초점을 두고 교육정책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Q. 수능 킬러문항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킬러문항 배제로 사교육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홍. 저희가 오랫동안 킬러문항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해왔어요. 대학별 고사에 대해서는 2011년부터 해왔고, 수능과 모의고사 관련해서는 2018년부터 했어요. 시작한 계기는 2019학년도 수능이었습니다. 그때 수능이 역사상 최악의 불수능이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비판이 많았고, 이런 식으로 출제를 할 거면 교육과정이 왜 있고 학교 공부를 왜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전부터 관행화돼 있었어요. 2019학년도에 가장 심했던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런 관행들을 도저히 용납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불수능 국가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어요. 공개모집을 했는데 10여명의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청구인으로 지원했습니다. 이렇게 소송을 한 3년 정도 진행을 했었는데, 그때 깨달았던 킬러문항이 허용되어서는 안되는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평가의 원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운 데서 배운 만큼 가르친 데서 가르친 만큼 평가하는 것이 평가의 대전제잖아요. 그런데 킬러문항은 변별을 위해서 그렇지 않은 문항을 내겠다는 거예요. 평가 원칙을 허물어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것이 불공정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그런 문항을 가르치지 않아요. 킬러문항을 많이 훈련하고 그런 것을 대비해주는 학원과 상품들이 있거든요. 어느 정도 정보력과 경제적 상황 그리고 거리상의 접근성이 있어야 그런 학원에 다닐 수 있고, 킬러문항 대비 사교육을 이용할 수 있는 학생들한테만 유리하게 돼 버리는 것이지요. 결국 어떤 무기를 장착하고 왔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불공정한 시험이 되어버린 겁니다.


세 번째는 사회적 신뢰가 회복 불가능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입 하나로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잖아요. 그런데 이 시험이 이렇게 불공정하다는 것은 사회적 신뢰도 문제하고 연결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회가 건강하게 존속하려면 킬러문항 자체는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사교육 경감을 차치하고서라도 배제되는 게 마땅한 것이고 이것이 평가의 원칙, 공정의 원칙, 신뢰의 원칙입니다.


그렇다면 킬러문항 배제가 사교육 경감 대책이 맞느냐고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요. 미미하지만 사교육비가 경감되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킬러문항을 대비하는 상품들이 계속 광고가 되고 팔렸단 말이에요. 재수학원 같은 곳들에서 킬러문항에 대비해서 문제를 계속 풀어보는 커리큘럼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사교육 상품들의 측면에서 보자면 미미하지만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끊임없는 경쟁 구조이고 승자독식의 구조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는 킬러문항이 나오든 나오지 않든 내가 1점이라도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경쟁은 계속될 것이고 사교육에 비용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 이번에 대통령의 발언으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면서 공교육을 벗어난 고난이도의 킬러문항 문제 현황과 실태들에 대한 분석결과들이 과목별로 많이 나왔어요. 언어 영역뿐만 아니라 탐구 영역도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영어 영역은 절대평가가 됐지만 고등학교 학생이 풀 수 없을 정도의 어려운 난이도로 출제하고 있다는 것을 영어학을 전공한 대학교수님이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문제가 환기되고 있는 것 자체는 정말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승자독식의 치열한 경쟁 구조 속에서는 사교육비 지출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데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생각하는 사교육 문제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요?

정. 가정에서 이제 아이를 하나 아니면 둘 낳는 추세니까 부모들이 한 명의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물가상승 등으로 인해 학원비가 오른 측면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어쨌든 이 치열한 경쟁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일시적인 대책과 같은 정책으로는 사교육비 지출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제시하는 정책에는 단기대책과 장기대책이 있습니다. 단기대책 같은 경우는 이번처럼 킬러문항을 내지 않도록 하는 킬러문항 방지법을 제정하는 일입니다. 장기대책은 근본적으로 이 학벌사회를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학벌주의에 대한 인식이나 문화를 바꾸고 또 동시에 대학 서열화를 해체하는 활동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단기대책과 장기대책을 균형있게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고, 대안들을 만들어서 발표하고 의제화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상대평가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들이 너무 복합적이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상대평가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청구했습니다. 작년 11월에 청구서를 제출했고 상대평가가 학생들의 수면권, 건강권, 교육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홍. 사교육비 증가도 문제지만, 사회적으로 봤을 때 문제는 공부 잘하는 끝판왕들의 선택지가 의대 밖에 없다는 거예요. 공부 잘하면 다 의대에 가야 하는 줄 아니까요. 길을 다양하게 열어줘야 하는데 하나의 길로만 너무 국한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입학보장제’나 ‘서울대 10개 만들기’든 대학 서열화를 완화하고 각자 적성에 맞게 잠재력을 최대치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고등교육체제가 굉장히 필요한 상황이에요. 대학은 다 갈 수 있지만,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한국 사회에서 되게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국가가 고등교육에 투자를 많이 하면 평가가 박했던 대학들도 충분히 교육력을 제고할 수 있다고 저희는 분석하고 있어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광주과학기술원(GIST)과 같은 대학들을 보시면 신생 대학이지만 국가에서 투자를 많이 합니다. 교수 한 명당 맡은 학생의 수가 교육의 질하고 연관이 되기 때문에 대학에 전폭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학생들에 대한 투자고 이 교육력으로 사회에 진출했을 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선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등교육의 질을 제고하고 학생들이 적성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전공이나 특성화의 기회를 열어주어서 대학 서열을 실제 교육 효과로 완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Q. 교육부에서 사교육 경감대책과 함께 공교육 경쟁력 제고방안도 발표를 했는데요. 정부에서 어떤 교육 정책을 펼쳐야 공교육이 강화될 수 있을까요?


홍. 정부가 발표한 공교육 경쟁력 제고방안을 보면 ‘학업 성취도 평가 확대, 자사고·외고·국제고 유지, 고교학점제 시행 시 1학년 공통과목은 상대평가’하겠다고 밝혔어요. 어떠세요? 이 방안들이 정말 공교육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정부가 발표하자마자 저희는 비판 논평을 냈습니다.


학생들은 지금도 충분히 많은 평가 속에 살고 있어요. 우리나라 평가의 문제는 평가 자체가 목적이라는 거에요. 평가는 진단을 위한 것이고 그래서 처방을 해줘야 하는 데 진단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학생들을 경쟁 붙이는 역할만 하고 있어요. 공교육 안에서 정말 처방이라는 것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계속 경쟁하고 사교육처럼 사적 투자에만 매몰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교육을 제고하려면 진단만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처방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고교학점제 시행 시 1학년 공통과목 상대평가 유지가 발표되자마자 학부모들이 고등학교 1학년 시험이 정말 중요해지고 여기서 다 변별이 되겠다며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3과 고1 사교육이 중요해지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생겼어요. 다 절대평가인데, 고1만 상대평가한다고 하면 거기에 변별력이 있고 대학들도 더 몰입하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사교육은 더 늘어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는 많은 나라에서는 다 절대평가를 합니다. 경쟁의 문제도 있지만 고교학점제의 취지상 학생의 선택권 보장이 굉장히 중요한데 상대평가를 해버리면 그런 선택이 어려워져버리거든요. 절대평가로의 전환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거듭 말씀을 드립니다.


세 번째는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유지되면 사교육이 정말 줄어들고 공교육이 제고될 것인가 인데요. 저희가 계속해서 희망 고교 유형별 사교육비 조사를 하고 있어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신경민 의원실이 조사해서 2020년에 발표한 자료가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전국단위 자사고 희망 학생이 일반고 희망 학생들보다 월 100만 원 이상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비율이 4.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진학을 위한 사교육도 있지만 입학해서 뒤처지면 안되니까 또 사교육비가 투입됩니다. 이게 공교육 제고 방안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요. 또 특정 전국단위 자사고의 경우에는 연간학비가 2900만 원이 소요됩니다. 자사고는 교육과정의 다양성이라는 취지로 설립되었습니다. 적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것은 모든 학생들이 받아야 하는 교육적 권리임에도 경제적 여건이 되는 소수의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 그 학교에만 혜택을 주는 것은 헌법적 가치에도 반합니다.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 잘 다니면서 적성을 찾을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게 공교육 제고 방안이어야 하는데, 과연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오히려 일반고로 전환해서 어떻게 고교학점제를 더 잘 시행할 것인가에 몰입해야 할 것입니다


정. 내 집 앞에 있는 학교가 가장 좋은 학교가 되는 것이 부모님들이 가장 원하는 정책이라고 생각해요. 멀리 있는 학교가 좋다고 하니 저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미리미리 사교육으로 준비를 하고 학교에 들어가서도 아이가 상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신 경쟁이나 입시 경쟁을 해야 하거든요. 초중고 12년을 거치면서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는 건데, 그런 경쟁 압박을 계속 만들어내는 정책이 아니라 정말 내 집 앞에 있는 어떤 학교를 골라서 가더라도 학교가 주는 양질의 교육을 내 아이가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들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정부 교육 정책을 보면 ‘산업 인재 양성’과 같은 단어들을 계속 쓰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산업계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고 여기에 포커스를 두고 정책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거든요. 어떤 부모님이 내 아이를 산업계 인재로 키우고 싶다고 생각할까요? 어떻게 하면 내 아이가 자기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고 건강한 내면을 가진 아이로 성장할 것인가 하는 소박하지만 이 시대에 실현하기 어려운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런 점에서 국가가 부모님의 시선에 맞추어서 교육 비전을 선포하고 그에 맞춘 정책들을 발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시민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Q. 사교육비로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이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정. 비용에 대한 접근도 중요하겠지만 정말 내 아이를 위해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을 때, 아이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사회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어서 아까 말씀드린 서른 살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천편일률적으로 국어, 영어, 수학을 잘한다는 기준으 로 존중받는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재능을 여러 방식으로 발현할 수 있고 다양한 삶을 선택해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최근에 듣고 굉장히 감명 깊었던 이야기입니다. 경북 문경에서 사과나무 농사를 짓는 농부분의 경험담인데요. 그분에게 어떻게 이런 맛있는 사과를 만들 수 있는지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 대답이 무엇이었을까요? 퇴비나 비료를 주지 않는 거였어요. 그렇게 하면 사과나무가 자기 힘으로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되고 어떤 비바람이나 태풍, 가뭄에도 크게 손상되지 않는 건강한 나무로 자란다는 것입니다. 결국 양분을 잘 흡수해서 맛있는 사과가 열리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농부가 이 원리와 원칙을 믿으면서 사과나무를 기다려주었던게 바로 맛있는 사과의 비결이었던 거지요. 지금 이 시대는 아이들에게 퇴비와 비료를 빨리 그리고 많이 주면서 얼른 자라서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자기 힘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열매를 맺으라는 요구에 시달리다가 나무가 상해버리는 것과 같은 현상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홍. 사교육비로 걱정하는 부모님들이 많다고 하셨는데, 사실 사교육비 걱정의 실체는 불안이고 내가 죽고 난 뒤에도 우리 아이가 행복하게 잘 살길 바라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지출입니다. 사회가 안정적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줄 수 있는 안전망과 시스템이 있다고 하면 그 불안이 완화될 것인데, 불안한 사회가 사교육비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만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하나는 아이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이 잔소리 안하고 아이를 믿는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인지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말합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늦은 나이에 얻은 막둥이들이 굉장히 인지능력이 좋다고 합니다. 그 원인을 분석했더니요. 늦은 나이에 얻은 막둥이 얼마나 예쁘겠습니까? 아이들에게 간섭하고 명령하고 지시하고 잔소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받아주었다는 것이에요. 오히려 아이들을 믿어주는 것이 아이의 발달과 성장에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어렵죠. 잔소리하게 되고 걱정되고 불안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건강한 이웃입니다. 저희 단체의 ‘요즘부모연구소’에서는 지역 모임이나 부모 커뮤니티, 동아리를 통해 내가 부모로서 진정으로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어떤 가치가 중요한지를 나누는 건강한 네트워크를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시는 부모님이라면 많은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아이가 점점 크고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요즘 들어 부쩍 단
체의 대표를 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요. 아이가 경쟁의 선두에 설 수 있도록 그래서 경쟁에서 다치지 않도록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것도 아이에 대한 사랑이지만 더 크게 봤을 때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같이 하자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지금은 불안한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교육비 지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불안을 자극하는 사회에는 공동체가 되게 중요합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우리가 공동체로서 같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 사회에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행동하면 좋겠습니다. 사적 영역에 갇혀 있지 않고 공적 영역으로 나와서 사교육걱정없는 세상과 함께 다 같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함께 하자는 제안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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