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소통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향하여

관리자
발행일 2009.11.21. 조회수 367
칼럼

자유로운 소통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향하여


 



곽지웅(경실련 감사)


 


요즘 들어 신문 기사 사회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소통” 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통은 막히지 않고 잘 통한다는 의미입니다. 경영학 관련 서적에서도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많은 책들이 발간되어 있으며,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해 연구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소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서로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생각에서만 일방적인 해석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해 봅니다.



즉, 서로 간에 소통을 얘기하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의 모습은 소통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소통의 부재로 인하여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가 발생하고, 기업에서는 기업주와 소비자들 간의 문제가 발생하고, 국가에서는 국가를 운영하고 있는 소위 공무원이나 국회위원들과 국민들 간에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요즘 얘기가 많이 되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조금 더 미시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지역이기주의에 근거한 님비현상, 교육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문제들, 사회지도층이라는 분들의 갖가지 형태의 범법행위, 이 모든 것들이 다 서로간의 소통을 어렵게 하는 원인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서로 간에 소통하는 모습보다는 서로 줄다리기하는 무리들처럼 서로 반대편에서 내편으로 끌어당기기를 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언제 끝이 날지도 모르는 이 줄다리기에서, 처음부터 한 쪽이 져야지 다른 쪽이 이기는 이런 상황에서, 서로간의 소통이 이루지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소통을 어렵게 하는 요인들은 물론 한쪽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쉽게 해결이 가능할 것입니다. 잘못을 한쪽이 잘못을 인정하면 끝이 날 수 있는 상황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누가 잘못했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정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 서로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소통의 장애가 발생하게 되며,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각자의 주장을 되풀이하게 되면 소통은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우리사회의 모습은 이런 상황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서로간의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며 서로 상대방 때문에 현재의 이런 모습이 되었다고 계속 주장하는 이런 상황 하에서 어떻게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소득격차의 문제를 보고 생각해 보시지요. 예전에는 소득의 격차가 그다지 큰 사회문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30대 후반인 지금 지방에서 성장한 저에게 있어서 부모님의 소득수준이 제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던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나도 많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소득의 격차가 너무나도 큰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고, 우리 사회에 새로운 계층구조를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소득의 차이는 교육의 질의 차이를 가져오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이후의 세대에 있어서도 더 큰 소득의 차이를 발생시키고 있으며, 그러한 소득의 차이가 사회의 모든 이권을 독점하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기회의 평등을 외쳐도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기회의 평등은 소득의 차이로 인하여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의 잘못은 누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현재의 상황이 발생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도 없습니다. 따라서 누가 잘못했다고 특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누군가가 잘못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단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두 부류로 나뉘어 열심히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 간에 소통하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결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그럼 이런 상황의 해결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처음부터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이니 그냥 계속 줄다리기만 하도록 놔두어야 할까요? 당연히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야 되겠지요. 그렇다면 그러한 문제의 해결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생각은 유능한 심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유능한 심판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서만 판정을 할 수 있는 그런 심판이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그런 심판을 양성하지 못했으며 현재 심판의 역할을 하시는 분들은 유능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한쪽의 편에 서서 일방적인 판정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이러한 심판이 내린 판정에 대해서 다른 한쪽은 항상 반대를 하게 되고, 결국은 양쪽 모두 동의할 수 있는 판정은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루 빨리 우리 사회는 유능한 심판을 양성해야 합니다. 어떤 판정이 내려지더라도 양자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그런 심판을 양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의 판정에 불복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한 양자 간의 소통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 간의 자유로운 소통이 이루어지는 날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어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모두가 다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 우리가 될 수 있을 그날을 진심으로 기대해봅니다.


 


 


<약력>
현 경실련 감사
   태성회계법인 이사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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