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의 실패

관리자
발행일 2011.10.12. 조회수 6104
칼럼






 



이근식 경실련 공동대표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전번 글에서 정부와 국가의 실패를 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사회주의의 실패를 살펴보자.



정부가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 사회의 모든 면을 완전 관리하는 것이 사회주의이므로 사회주의의 실패는 국가의 실패의 극단적 형태이다. 자본주의의 성공에 대응하는 사회주의의 성공이 전연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예컨대 사회주의혁명이후 약 한 세대 동안의 쏘련, 중공 및 북한의 공업 발전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 이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필자의 무지 탓이기도 하지만 1990년대 초 소련과 동구 국가들의 사회주의 경제가 와해되어 그 이전의 공업 발전의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자기를 과학적 사회주의자라고 자신하였던 칼 마르크스는 사회주의가 실현되면, 노동자들의 빈곤, 인간소외, 불황, 실업, 등 자본주의의 모든 폐해가 사라지고 이 세상에 낙원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현실의 사회주의 국가에 나타난 것은 낙원이 아니라 생산성 하락, 권력투쟁, 권력에 따른 불공정한 분배, 공산당독재와 개인자유의 실종이었다. 사회주의국가에서 나타난 이러한 병폐를 사회주의의 실패(socialism failure)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경제가 생산성이 낮은 주된 이유는 근로의욕의 부족, 경쟁의 부재와 정보수집의 어려움이라는 세 가지이다. 이 중에서 근로의욕과 경쟁의 부족은 자명한 것이므로 생략하고 정보수집의 어려움을 보자. 사회주의에서 정부가 생산계획을 정확하게 세우려면 각 생산물 별로, 한 종류의 생산물 안에서도 수많은 각 모델 별로, 수요가 얼마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수요는 끊임없이 변하므로 정확한 수요 정보를 얻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자본주의경제에서는 앞서의 11번째 칼럼에서 본 바와 같이 판매량과 가격과 수익률의 변동이라는 시장기구의 신호등기구가 있어서 이에 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생산자들이 알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경제에서는 정부가 수요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야 하는데 정부가 이를 정확히 수집할 방법이 없다. 행정기관을 통해 보고받거나 아니면 과거 통계를 보고 주먹구구식으로 생산계획을 수립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엉터리 수요 예측에 입각하여 생산하다보니 필요 없는 물건들이 과다 생산되거나 필요한 물건들은 과소 생산되는 일이 대규모로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생산성 하락으로 인하여 실제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소수의 권력층을 제외한 다수 대중은 곤궁한 생활을 면하기 힘들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사유재산이 없어지므로 사람들 간의 갈등과 투쟁도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국가에서 재산을 목표로 하는 투쟁은 사라졌지만 권력을 얻기 위한 투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사회주의국가에서는 직업, 소득, 주택, 교육, 명예 등 개인의 행복에 중요한 모든 것을 권력이 결정한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에서의 권력을 향한 투쟁은 자본주의에서의 재산을 향한 투쟁보다도 더 치열하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권력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사회주의국가에서도 권력은 소수에게 편중되게 되고, 권력에 따른 개인 간 차별이 발생하게 된다. 권력에 따른 차등분배라는 사회주의국가에서의 분배는, 하이에크 말대로 인간이 의도가 개입된 차별이라는 점에서 시장경제에서의 분배보다 더 불공평하다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경제의 가장 큰 폐단은 개인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박탈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로, 사회주의경제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인 직업과 직장 선택의 자유가 크게 제한된다. 사회주의경제에서는 생산과 분배가 모두 중앙정부의 계획과 지시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중앙정부가 자신이 세운 생산계획을 실시하려면 모든 생산요소를 장악하고 이를 각 생산단위에 배분하여야 한다. 생산요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노동력이므로 사회주의경제에서는 노동의 배치도,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계획에 의하여 이루어 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경제에서는 직업과 직장 선택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제한되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사회주의경제에서는 자유를 제한하는 일당독재정치가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정부가 계획생산을 실시하려면 노동력, 곧 사람들을 완전 장악하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도전받지 않고 강력하여야 한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국가에서는 강력한 공산당 일당독재가 구축되어 개인의 자유를 크게 제한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집회, 결사, 언론의 자유와 같은 정치적 자유가 사회주의국가에서 허용되지 않고 있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언론의 자유의 부재는 특히 중요하다. 국가권력자들의 잘못을 예방하고 시정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이 언론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가 없었다는 것이 쏘련과 동구사회주의국가들이 망하게 된 가장 직접적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현재의 러시아와 중국도 동일한 위험에 처하여 있다고 생각된다. 권력자들의 횡포와 잘못을 방지할 언론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의 결합은 인류의 영원한 이상이다. 이런 생각에서 민주주의적 정치제도와 사회주의적 경제체제를 결합한 민주사회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이며 이의 실현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1980년대까지 많았다. 그러나 사회주의국가들이 대부분 와해되고, 사회주의국가들의 실상이 분명해진 현재의 눈으로 보면 사회주의경제와 민주정치제도는 양립이 어려운 것 같다. 사회주의경제는 계획경제이기 때문에 중앙계획당국은 생산수단만이 아니라 노동력(사람)까지 집중관리하여야 한다. 따라서 사람도 관리할 수 있는 권력의 집중이 불가피하다. 이처럼 권력의 집중이 이루어지는 사회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유도 존재하기 힘들고, 권력의 분산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하는 민주주의도 힘든 것 같다. 사회주의는 권력의 집중을 필요로 하고 권력의 집중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 그간의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나타났다고 생각된다. 특히 권력의 집중은 비판과 언론의 자유를 추방했고 이는 권력층을 비롯한 사회전체의 후퇴와 부패를 가져 왔다고 생각된다.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필자의 이런 부정적 평가에 대하여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사회민주주의국가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잘 보장되어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회민주주의는 우리나라에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사회민주주의와 다르다. 통상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같은 선진복지국가들의 정치경제체제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허나 이들 국가들의 경제는 사회주의적 요소가 가미되긴 하였지만 여전히 자본주의 경제이므로 이들 국가들의 경제체제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복지국가형 수정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복지국가형 수정자본주의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시장의 실패(빈부 격차, 실업, 독과점, 공해 등)를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정부역할이 존재하는 경제를 말한다. 이런 복지국가형 수정자본주의를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용법이다. 사회주의경제란 복지국가형 수정자본주의가 아니라 공유재산제도와 국가에 의한 계획경제가 결합한 경제 곧 자본주의와 대칭되는 경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사회주의국가인 소련이 망하기 150년 전인 1870년대 초에 일찌기 밀(J. S. Mill)은 사회주의국가가 건설되더라도, 인간들의 낮은 윤리수준 때문에 생산성하락과 권력투쟁이 발생하고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어 사회주의국가가 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놀라운 혜안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주의사회는 분명 우리의 이상사회이지만, 욕심 많고 시기심 많고, 다른 생명들을 돈과 맛과 재미를 위해 마구 살육하는 죄 많은 인간들이 현세에서 이루기 힘든 꿈이라고 생각된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모두 불완전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다소 더 낫다고 생각된다. 경제적 평등의 면에서는 사회주의가 조금 더 낫지만 자유와 풍요의 면에서는 자본주의가 훨씬 더 우월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이 평등인데, 현실의 사회주의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권력에 의한 차등분배를 보면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나은 사회라고 보기 힘든 것 같다. 사회주의경제는 개인의 자유와 양립하기 힘들며, 다른 대안을 현실에서 찾기도 힘들다. 시장과 자본주의의 실패라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정부개입으로 자본주의의 실패를 시정ㆍ축소한 복지국가형 수정자본주의경제가 현실적으로 최선의 경제체제라고 생각된다. 복지국가형 수정자본주의경제란 자본주의경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정부라는 사회주의부문을 혼합한 경제를 말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혼합비율을 얼마로 하느냐는 국가마다 다를 것이다.



현재 여러 국가들의 재정파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신자유주의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정부는 정부의 실패와 국가의 실패라는 또 다른 폐단을 야기하므로 정부와 국가의 실패를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 사회적 장치를 찾아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근래 들어 시장도 정부도 아닌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가 유럽을 중심으로 많이 거론되고 있다. 이윤이 아니라 사회적 공헌을 주 경영목표로 하는 사회적 기업, 민간 비영리단체, 협동조합의 셋이 사회적 경제의 주 구성요소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근식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메일보내기



 



※ 이 글은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2011년 10월 0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첨부파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