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시장에 개입해야하는가?

관리자
발행일 2011.12.07. 조회수 14003
칼럼






지난 14일자 칼럼에서는 2차대전 이후의 서독의 질서자유주의를 보았다. 오늘은 2차대전 이후의 선진국 전체의 흐름이었던 복지국가에 대하여 알아보자.



 



복지국가와 혼합경제



2차대전 이후부터 신자유주의 시대가 시작된 1980년경까지 선진국들은 복지국가를 지향하였다. 복지국가란 적극적인 정부개입으로 시장의 실패(빈부격차, 불황과 실업, 환경파괴, 독과점 발효 등 자유방임의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병폐들. 시장 실패의 자세한 내용은 칼럼 "시장의 실패" 참조)를 상당한 정도로 시정 혹은 완화시킨 국가를 말한다. 복지국가는 특히 공공복지제도인 사회보장제도를 적극 실시하여 빈곤의 추방과 국민들의 경제생활의 안정을 추구한다. (☞ "시장의 실패" 기사 바로가기)

 



복지국가를 비롯하여 현대의 모든 경제는 혼합경제이다. 혼합경제란 자본주의경제와 사회주의경제가 혼합된 경제를 말한다. 모든 경제에서 정부부문(중앙 및 지방정부, 공기업이나 공공연금과 같은 정부산하 기관을 모두 합한 공공부문)은 사회주의적 요소이다.



정부의 재산은 사유재산이 아니라 국가 공동의 재산이며 정부의 경제활동은 정부의 계획과 지시라는 사회주의적 방법에 의하여 운용되기 때문이다. 혼합경제에서 자본주의경제와 사회주의경제(정부부문)의 혼합비율은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 서유럽국가, 일본, 우리나라 등은 자본주의 경제의 비율이 높고 붕괴된 소련과 동구라파 경제들, 현재의 북한과 쿠바 등은 사회주의 경제의 비중이 더 높으나 모두 혼합경제이다.


 



경제 전체에서 정부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총 국민소득 중에서 정부부문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 비율을 보면, 일반적으로 서유럽 복지국가들은 40퍼센트 대이며, 미국과 일본, 한국 등은 30퍼센트 안팎이다.

 



서독도 적극적인 공공복지정책을 실시하였기 때문에 다른 선진국들처럼 복지국가이지만, 지난번 칼럼에서 본 것처럼 질서자유주의에 입각한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독특한 경제정책을 실시하였기 때문에 다른 선진 복지국가들과 부분적으로 다르다.



구미의 다른 국가들은 불황과 실업 극복을 위하여 단기적인 총수요확대정책(통화 증발과 정부 지출의 확대)을 수시로 채택한 데 비하여 서독은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하여 단기적인 총수요확대 정책을 삼가하고 엄격한 통화관리정책을 꾸준히 실시하였으며 다른 나라에 비하여 독과점규제에 힘을 쏟았다. 총수요확대정책은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케인즈(John M. Keynes)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19세기에 구미에는 산업자본주의가 정착되어 자본주의가 확립됨에 따라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결함인 시장의 실패도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빈부격차의 확대와 불황이 그 대표적인 문제이다. 산업혁명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까지 노동자계급은 대체로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빈부격차는 확대되었다.



19세기 말까지도 유럽 도시노동자들은 상하수도 시설이 없어 분뇨가 도로에 뒹구는 열악한 주택가에서 비참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19세기 말에 등장한 것이 앞서 본 영국의
사회적 자유주의였고, 이들의 주장에 따라서 빈곤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사회입법(노동자 보호법과 사회보장제도)이 서구에서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일부 도입되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전까지는 아직 복지국가라고 부르기에는 선진국들의 경제개입은 일부에 그쳤다.









대공황



선진국에서 정부의 경제개입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계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대불황의 발생이고, 둘은 정부의 경제개입을 지지하는 새로운 경제학의 등장이다. 불황은 분배문제와 달리, 노동자계급만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에게도 매우 고통스러운 문제였다.



앞의 칼럼16에서 본 바와 같이, 1825년에 영국에서 최초의 불황이 발생한 이후, 약 10년을 주기로 발생한 불황은 회가 거듭될수록 정도와 기간이 점차 확대되어 1873년에는 무려 20년이 넘게 지속된 '대불황기'가 발생하였다. 이 대불황기를 계기로 구미에서 자유방임 경제정책은 퇴조하고 보호무역주의가 부활하기 시작하여 소위 제국주의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대내적으로는 독점자본의 팽창(불황기에는 소 영세기업들이 몰락하고 소수의 대자본이 성장한다), 대외적으로는 무력을 이용한 식민지 확대와 그로 인한 열강간의 전쟁이 제국주의시대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가 대불황기로 인해 완전히 붕괴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불황은 임금과 상품가격이 과다하게 높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고, 불황과 실업이 계속되면 임금과 가격이 하락하여 불황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고, 자유무역은 모든 나라에 이익을 준다는 믿음을 여전히 버리지 않았다. 정부도 대외적으로는 보호무역정책을 실시하였지만, 대내적으로는 경제개입 정책을 별로 시행하지 않았다.

 



아직 남아 있던 시장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붕괴시킨 것이, 1929년 10월 미국 뉴욕시의 증권시장이었던 '월가'(the Wall Street)의 주식가격 폭락으로 인해 촉발되어 2차대전 발발 때까지 10년 이상 지속된 대공황이었다. 1929년 10월 23일 수요일에서 29일까지 1주일 동안 주가가 약 30% 급락하였다. 그러나 월가의 주가하락은 이때 갑자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해 9월 초부터 이미 시작되었었다.



주가지수인 '다우 존스 주가지수'가 9월 3일 381.17에서, 10월 23일에는 326.51로, 10월 29일에는 230.07로 하락하였으며 약 3년 후인 1933년 2월 말에는 최저치인 50.16에 도달하였다. 약 3년 반 만에 주가가 1/8토막으로 폭한 것이다.



이번의 대공황은 그 이전의 불황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공황의 피해가 가장 컸던 미국의 경우, 1929년에서 1932년 사이에 국민소득과 고용과 공업생산이 모두 거의 반으로 격감하였다.



이 기간에 미국의 국민소득은 46%, 고용은 62%, 공업생산은 54%의 수준으로 각각 감소하였다. 선진국 중 가장 정도가 약하였던 프랑스는, 같은 기간에 국민소득은 84%로, 고용은 81%로, 공업생산은 70% 수준으로 각각 하락하였다. 이런 심각한 대공황이 발생하자 하이에크와 같은 극소수의 자유방임주의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경제학자와 일반인들은 시장경제와 자유방임정책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케인즈 경제학의 등장



선진국에서 개입주의가 부활하게 된 두 번째의 요인은 새로운 경제학의 등장이다. 근대 주류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를 신뢰하였다. 시장경제가 생산과 고용에서는 효율성을 발휘하므로 정부는 가능한 한 경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스미스 이래의 근대경제학의 기본입장이다. 이런 경제학자들의 믿음을 바꾼 것이 케인즈(John M. Keynes)의 거시경제학과 사무엘슨(Paul Samuelson)의 공공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이론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불신을 최초로 설득력 있게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1936년에 출판된 케인즈의 <일반이론>이었다. 스미스의 <국부론>,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더불어 역사를 바꾼 3대 경제학 저서이자, 거시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이론경제학 분야를 탄생시킨 이 책은, 종전의 고전학파의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두 가지의 획기적인 새로운 주장을 담고 있었다.



첫째, 시장경제에서는 일반적으로 투자가 저축보다 적어서 상품에 대한 총수요가 부족하며 이로 인해 불황과 실업이 일반적인 현상임을 이론적으로 주장하였다.



저축이란 돈을 안 쓰는 것이므로 저축만큼 상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게 되는데 이를 상쇄시켜 주는 것이 기업의 투자이다. 투자가 저축을 충분하게 상쇄시켜 주어야 불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업들의 경기전망이 나빠지면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그 결과로 저축보다 투자가 적게 되어 불황이 발생하고 불황이 한 번 발생하면 미래에 대한 기업들의 전망이 더욱 나빠져서 불황은 더욱 악화된다고 케인즈는 설명하였다. <일반이론>의 출판으로 비로소 경제학자들이 불황과 실업이 왜 발생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둘째로 이러한 설명에 근거하여, 상품시장에서의 수요부족과 그에 따른 불황과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통화발행을 통해 조달한 재원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하여 각종 공공사업을 벌려서 총수요를 증대시켜야 한다는 정책제안이다.



이를 위해 케인즈는 정부가 금이나 은의 지불준비금이 없더라도 정부의 정책적 판단만으로 통화를 찍어낼 수 있는 관리통화제도의 도입을 주장하였고 모든 선진국들이 이를 채택하였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 선진국들이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이나 은만큼만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본위화폐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본위화폐제도는 통화남발을 막아서 물가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으나 반면에 정부가 필요할 때 통화발행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반대로 관리통화제도는 정부가 통화증발을 통해 총수요를 증대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반면에 통화남발로 인한 인플레가 발생하기 쉽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때문에 관리통화제도가 채택된 이후의 현대 경제에는 인플레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이 때문에 하이에크, 프리드먼과 뷰캐넌과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은 케인즈를 인플레의 원흉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잘못된 두 가지 통념



일반적으로 잘못 알려진 두 가지의 오해를 지적하고 넘어가자. 하나는 케인즈의 이론이 나옴으로써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이 채택되었다고 하는 일반적인 통념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케인즈가 주장한 총수요확대정책의 대표적 예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실시한 뉴딜정책(the New Deal)인데, 이 정책은 케인즈의 <일반이론>이 출판된 1936년 이전에 이미 채택되었었다. 뉴딜정책을 실시하기 위한 법들이 모두 <일반이론>이 출판되기 전인 1933년부터 35년간에 제정되었다.



케인즈의 이론이 나오기 전에 이미 불황의 탈출을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지출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언론계와 정계에서 널리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케인즈가 한 일은 이러한 생각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고 나아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던 경제학자들을 설득함으로써 개입주의가 수십 년간 지속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눈앞의 사실보다 자기가 배운 이론을 믿기 때문에 현실이 아무리 변하여도 이를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경우가 보통이다. 보통사람들보다 시대를 앞서 가지는 않더라도, 동료경제학자들보다는 한 발 앞서 가면 위대한 경제학자가 될 수 있음을 케인즈는 보여 준다.





또 하나의 오해는 뉴딜정책의 효과에 관한 일반적인 오해이다. 현재 많은 경제학 교과서가, 미국이 뉴딜정책 덕분에 30년대의 대공황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뉴딜정책이 실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40년 2차대전이 발발할 때에도 미국은 약 20%의 높은 실업률을 여전히 갖고 있었고, 2차대전이 발발한 다음에야 비로소 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즉 뉴딜정책이라는 대대적인 통화발행과 재정지출의 확대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공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민간경제의 회복 없이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만으로는 경제가 완전히 회복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사무엘슨의 공공경제학과 신고전학파종합







케인즈가 정부의 경제개입을 지지하는 새로운 거시경제학을 제시한 반면에 2차대전 이후 선진국의 주류경제학을 이끈 미국의 사무엘슨(Paul A. Samuelson)은 공공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미시경제학을 개척하여 정부의 경제개입의 필요성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였다. 공공경제학이란 정부부문의 경제활동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응용 미시경제학이다.



사무엘슨은, 시장경제에는 빈부격차와 독과점, 불황에 더하여 공공재의 공급부족과 외부효과라는 또 다른 시장의 실패 요인이 존재하며, 이의 해결을 위한 정부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밝혔다. 공공재란 무상 도로나 소방서, 국방, 치안, 행정과 같은 정부의 서비스처럼, 사회가 공동으로 생산하여 공동으로 소비하는 재화를 말한다. 공공재는 시장에서 개별적으로 돈을 받고 팔 수 없으므로 시장에 맡기면 생산이 부족해진다. 외부효과란 외부불경제와 외부경제를 말한다.



외부불경제란 환경오염과 같이 합당한 금전 지불 없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말하며, 외부경제는 무상의 공공도로나 가로등, 기초과학과 같이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남에게 주는 이익을 말한다(시장의 실패에 대해서는 칼럼12 참조). 시장에만 맡기면 외부불경제는 과다하게 생산되고, 외부경제는 생산이 부족하게 된다. 따라서 공공재의 생산과 외부경제의 생산 장려, 외부불경제의 규제는 정부가 담당하여야 한다.


 



2차대전 이후에는, 케인즈의 거시경제학, 그리고 사무엘슨이 발전시킨 공공경제학으로 보완된 새로운 경제학이 선진국의 주류경제학이 되었다. 이런 2차대전 이후의 수정된 경제학을 사무엘슨은 신고전학파종합(the neoclassical synthesis)라고 불렀다. 이 경제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지만,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시장의 실패가 시정된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개입주의경제학이다. 2차대전 이후에 복지국가를 지향하여 등장한 이러한 선진국들의 개입주의 경제정책을 과거의 중상주의와 대비하여 신중상주의라고도 부른다.





2차대전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약 30년 동안 대다수 선진국들은 신고전학파종합의 주장에 따라서 복지국가를 건설하여 전례 없는 물질적 번영과 사회적 안정을 누렸다. 과거와 같은 대공황이나 세계대전도 없이 절대 빈곤도 거의 퇴치하여, 대다수 일반 대중들은 안락하며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선진국들의 이러한 장기번영에 케인즈 경제학과 신고전학파종합이라는 현대 경제학과 정부의 적극적 개입정책이 기여한 공헌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복지국가의 개입주의도 양날의 칼이었다. 한편으로는 장기번영을 달성하였으나,
다른 한 편으로는 정부가 점차 비대하여져서 정부의 무능, 비리와 횡포라는 국가의 실패가 크게 증대하여 이를 비판하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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