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 단순 폭행․협박을 중형으로 가중처벌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철회하라

관리자
발행일 2010.06.08. 조회수 1738
사회

- 의사 멱살 잡으면 대통령 멱살 잡은 것보다 중형 처벌!
-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도 공소제기 가능!
- 폭행, 협박 예방 효과 없고 응보적 수단으로 악용 위험!
- 중형 처벌보다 의사 친절, 병원 서비스 개선이 우선!


민주당 전현희 의원과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은,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에 대한 단순 폭행, 협박이나 이를 교사, 방조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해서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개정안(제12조 2항 및 제87조 1항)을 각각 대표발의 했고 지난 4월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제 6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환자에 대한 진료와 치료가 이루어지는 의료기관에서 의료인에 대한 폭행, 협박을 예방해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에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인에 대한 폭행, 협박을 예방(豫防)하는 효과는 거의 없고 오히려 의료인을 폭행, 협박한 환자나 환자가족들을 가혹하게 처벌하려는 응보(應報)적 효과일색이다. 더욱이 환자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서 피해 당사자가 될 환자나 환자가족들과 공청회, 간담회 등의 사회적 논의과정을 제대로 거치지도 않고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시킨 것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전현희 의원과 임두성 의원은 의료법 개정안 제안이유에서 ‘최근 의사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등 응급실뿐만 아니라 진료실 내에서도 우발적으로 의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빈번이 발생하기 때문에 중형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이러한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안 된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예로 들면서까지 의료인 폭행, 협박 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형벌규정을 구태여 신설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흉기를 휴대하고 폭행, 협박하는 경우에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제3조 제1항에서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는 등 이미 가중처벌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은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경우뿐만 아니라 상습적으로 또는 단체, 다중의 위력을 이용해 폭행, 협박하는 경우까지 중형으로 가중처벌하고 있다.(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제2조 제1항․제2항, 제3조 제1항․제3항)


그렇다면 이번에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은 한사람이 혼자서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지 않고 딱 한번 의료인을 폭행, 협박한 경우에만 적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량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서 중형이다.


사람에 대한 단순 폭행, 협박죄는 각각 2년 이하의 징역과 3년 이하의 징역이고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는 동일하다. 그리고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이다.(형법 제260조 제1항․제3항, 제283조 제1항․제3항) 단순 폭행, 협박죄를 이렇게 경하게 처벌하는 이유는 폭행, 협박의 ‘우발성’ 때문이다. 폭행, 협박은 순간적인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러한 경우 사후 화해, 합의를 통해 원만한 해결을 유도하기 위해 반의사불법죄로 규정한다. 그래서 외국원수, 외국사절에 관한 폭행, 협박죄의 경우에도 각각 7년 이하의 징역, 금고와 5년 이하의 징역, 금고라는 중형으로 처벌하지만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해 사후 원만한 해결을 유도하고 있다.(형법 제107조 제1항, 제108조 제1항, 제110조)


그런데 이번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인에 대한 폭행, 협박죄를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병원에서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모가 홧김에 의사의 멱살을 한번 잡았다고 경찰이 와서 바로 체포하고 5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한다면 이게 과연 합리적으로 제정된 법률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번 의료법 개정안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직무집행중인 공무원을 폭행, 협박하면 공무집행방해죄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형법 제136조). 그렇다면 직무집행중인 대통령의 멱살을 한번 잡으면 5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데 병원에서 의사의 멱살을 한번 잡았다고 5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는 것이다. 의료법 개정안에 의하면 직무집행중인 대통령의 멱살을 잡았을 때보다 병원에서 의사의 멱살을 잡았을 때 더 중한 처벌을 받는다.


무엇보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우리나라 모든 환자나 환자가족들을 잠재적 중범죄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판례상 폭행죄는 멱살을 잡거나 때리는 시늉만 해도 인정된다.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나 환자가족들에게 한번 물어보라. 의사의 불친절, 불충분한 설명, 반말, 면담 회피, 의료사고 등으로 의사의 멱살을 잡고 싶을 때가 한 번도 없었는가? 많은 이들이 이러한 경험을 한번 이상 가지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환자나 환자가족들은 참는다. 병에 걸린 죄인이기 때문에, 혹시 의사나 병원으로부터 환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참는다. 이게 바로 현재 우리나라 의료현장의 현주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인에 대한 폭행, 협박 시 대통령보다 가혹하게 처벌하는 형벌규정을 신설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시킨 국회의원은 누구를 위한 국회의원인가? 어떻게 국회의원이 10만 의사를 위해 5천만 국민을 잠재적 중범죄자로 만드는 법률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먼저 의사의 불친절, 불충분한 설명, 반말, 면담 회피, 의료사고 등 환자의 불만이나 민원사항을 해결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인에 대한 폭행, 협박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그때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면 된다. 그러나 이것도 의료인에 대한 단순 폭행, 협박죄가 형법이 정한 형벌로 범죄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반면 의료법에 의한 가중처벌시 범죄예방 효과를 확실히 얻을 수 있을 때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아무튼 형벌의 가중처벌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특히, 이번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한 민주당 국회의원과 한나라당 국회의원 중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현희, 백원우, 임두성, 손숙미, 윤석용 의원에 대해서는 환자와 국민의 입장에서 너무나 섭섭하고 배신감마저 느낀다. 치과의사인 전현희 의원과 한의사인 윤석용 의원은 본인이 의료인이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백원우, 손숙미 의원까지 환자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의사 권위주의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의료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한 것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의정활동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 악법이다. 지금이라도 공동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을 철회해야 한다.


6월 상임위원회 개편으로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으로 어느 국회의원이 참여하게 될지 확실치 않지만 새롭게 구성된 보건복지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의료인에 대한 단순 폭행, 협박죄를 중형으로 가중처벌하고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해서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한 의료법 개정안을 부결시키거나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돌려보내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과정을 거치게 해야 할 것이다.



2010년 6월 8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암시민연대, 한국GIST환우회,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한국HIV/AIDS감염인연대 KANOS), 환자복지센터,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건강세상네트워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자세한 내용은 첨부자료 참조

[문의. 사회정책팀 02-3673-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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