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박정희가 산 노무현을 물리치다

관리자
발행일 2004.04.21. 조회수 668
칼럼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필자는 중증 개혁병 환자다. 개혁피로증에 개혁무용론이 판치며 개혁은 그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현실속에서 혼자만 소리높이 개혁을 외치고 있다. 필자에게만 한국경제의 신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탓일까? 과거의 개혁은 잘못된 개혁이며, 그 개혁이 성과도 없이 좌초한 것은 파괴적 개혁의 결과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필자는 새로운 창조적 개혁을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나라도(!)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개혁을 요구해온 이론적 근거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한다.




 


  그녀는 당당했다. 그녀는 아버지 박정희의 인권탄압을 담담히 인정했다. 지금까지 박정희 지지자들이 애써 외면해 온 질문에 대해 박정희의 딸이 아버지의 과오를 인정하고, 그 과오마저 고쳐서 아버지의 진실을 다시 한번 인정받고 싶다는데 더 이상 박정희의 과오를 들먹거리는 것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들어버렸다. 그녀의 나직한 목소리는 저항할 수 없는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무너져가는 난파선의 선장이 되자마자 그녀는 준비된 대표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수구부패정당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비례대표 인선을 통해 개혁적 보수정당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한편 거센 당내의 반발에 대해서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밀어붙이는 카리스마를 발휘하였다. 종교인들을 찾아 참회의 절을 올리자마자 전국을 순회하며 아줌마, 할머니들의 열광적 환영을 이끌어 내고, 악수를 많이 해 부르튼 손을 붕대로 치감고는 밀려드는 억센 손들을 피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에서, 자애로운 여성상으로 추앙받던 그녀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영부인을 대신하며 몸에 밴 품위가 발휘된 것일까?



 


  그녀에 대한 열광적인 환호가 더해갈수록 그녀의 존재를 애써 부인하던 한나라당 수뇌부의 잘못된 선택이 더욱 부각되었다. 그녀의 충고를 따랐다면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박정희의 망령이 완벽하게 되살아났다는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되살아난 박정희의 망령


 



  김종필 총재가 물러났다. 이로써 삼김시대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박정희의 망령이 되살아 난 것이다. 박정희는 보릿고개를 넘기게 해 주었고 밥을 주었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으로 한국인의 뇌리에 남겨져 있다. 그녀는 그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국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시찰하고 돌아온 아버지 박정희가 식욕을 잃고 상념에 잠겼다는 일화를 끄집어냈다. 아버지 박정희는 그렇게 고민하고 노력해서 밥을 먹여 주었는데, 개혁한다고 목소리만 높였던 그 후의 대통령들은 도대체 무엇을 이룩했는가라는 것을 함축한 고도의 언어술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실로 잔인하리만치 섬뜩한 개혁에 대한 조롱이었다.


 



  희한한 대통령 노무현은 이번에도 승리했다. 그는 언제나 별로 한 일도 없이 50% 이상 국민의 지지를 얻어낸다. 그에 대한 기대로 지지도가 한참 올라가면 여지없이 하릴없이 지지도를 까먹어 20%대에서 헤매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다시 모든 것을 다 내던지는 승부수를 통해 승리를 쟁취한다. 이번에는 총선 올인이라는 승부수도 제대로 통하지 않자 야당의 비위를 슬슬 건드려 탄핵을 쟁취(?)해 일거에 판세를 바꿔버렸다. 의도하지 않았다면 정말 억세게 운 좋은 지도자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강적을 만났다. 법보다 밥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고 해서 탄핵소추법정에서 볼쉐비키 혁명가들과 같은 반열에 오르는 광영(?)을 누리기도 했지만, 막상 당사자인 대통령 노무현은 밥과 관련해서는 지도그리기밖에는 한 일이 없다. 도저히 밥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지도만 일년내내 그리다가 지지도를 다 까먹었고, 돌아와도 아마 지도만 그릴 것 같은 그에 비해 실제로 밥을 주었던 기억 속의 지도자 박정희의 망령은 벅찬 상대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고향 부산에서 패퇴했다. 죽은 제갈공명이 천하의 사마중달을 물리친 것처럼.




  밥을 주는 개혁으로




  박근혜 대표의 카리스마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야당이 수구부패적 요소를 얼마나 잘 척결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행운의 사나이 대통령 노무현을 위해 야당이 또 얼마나 극적인 실수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이 모든 국민적 열망은 곧 절망으로 덮일 것이다. 김영삼정부가 그랬고, 김대중정부가 그랬듯이 한 2년 빚 얻어 잔치벌이다가 다음 선거가 돌아올 때쯤이면 서민들의 눈물 앞에서 핑계대기 바쁜 나날을 보낼 것이다.




  중달은 한번은 허깨비에 속아 패퇴했지만 곧 천하를 제패했건만... (2004.4.19)



 


(이 글은 경실련의 공식적인 견해와는 무관한 필자 개인의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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