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함께하는 경실련운동을

관리자
발행일 2009.11.17. 조회수 402
칼럼

 


시민과 함께하는 경실련운동을



신철영(전 경실련 사무총장)


 


 


 시민운동이 어렵다. 현 정부가 시민운동에 호의적이지 않은 것도 하나의 원인이지만 그것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오히려 근본적인 위기의 원인은 운동 내부에 있다.


 


  지금은 ‘올바르고 힘 있는 운동’이 필요한 때


 나는 우리 시민운동을 3개의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제1기는 1989년 경실련 출범 이전의 시기이다. 군부정권이 지배하던 시기에 모든 민주화운동은 극도의 억압을 당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는 물리력이 서로 충돌하던 때였다. 최루탄과 곤봉에 대항하여 돌멩이와 화염병으로 거리에서 대치하고,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고문을 당하고 투옥되던 때였다. 합리성 보다는 물리력이 힘을 발휘하던 시기였다.


 제2기는 1989년 경실련 출범에서 지금까지의 시기이다. 한마디로 ‘말로하자’는 시기이다. 합리적 대안제시, 공공선의 추구, 평화적 방법, 정파적 중립 등으로 대표되던 시기였다. 올바른 말이 더 힘을 발휘하던 시기로 1994년 시사저널의 “경실련 군대보다 강하다”는 제목이 이 시기의 특징을 말해준다. ‘경실련’이 ‘재야와 민중운동조직’의 강한 조직력보다 영향력이 더 클 수 있었던 것은 그 시기에 맞는 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의 최고봉은 2000년 낙선운동이었다.


 그러한 시민운동의 영향력이 현저히 퇴조하고 있는 것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시민운동의 성공(즉, 민주화의 진전)이 바로 퇴조의 원인이다. 초기의 시민운동은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과제들과 씨름하며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부패척결, 정치개혁, 공명선거, 부동산투기 근절, 금융실명제 실시 등 대다수의 국민들이 고통을 당하던 과제들에 대한 합리적 해결책을 제시했던 것이 바로 시민운동이었다. 이제 민주주의의 진전과 함께 이런 과제들이 많이 사라졌다. 


 둘째, 다양한 시민운동 조직이 출현한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다양한 시민운동이 등장했으며 시민운동 단체끼리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반미시위와 친미시위, 촛불시위와 촛불반대시위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들이 서로 충돌하며 국민이익의 대변이라는 구심력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셋째, 인터넷의 발달 등 시민참여 조건도 변하였다. 촛불시위에서 보았듯이 과거의 시민운동과는 전혀 다른 운동이 커다란 힘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기존 시민운동들은 이런 조건변화에 그리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제3기는 지금부터의 시기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제3기는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어야 했는데 아직도 전면적인 전환을 못한 것에 시민운동의 위기가 있다. 나는 제3기를 ‘올바르고 힘 있는 시민운동기’라고 본다. 이제는 잘난 사람들이 나서서 올바른 이야기를 하고, 시민들이 박수를 치던 시기가 지난 것이다. 시민들의 힘을 모아서 올바른 주장을 할 때이다. 이미 지역에서는 이런 풀뿌리운동들이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제2기 시민운동에 익숙한 사람들이 새로운 운동을 위한 자기전환을 못하고 있는 데에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


 몇 년 전에 경실련이 도시가스 요금의 과다책정 등의 문제를 제기하여 가스요금 책정시 온도상승에 대한 보정계수를 도입하는 등의 개선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운동 과정에서 경실련은 구태의연한 운동방식 즉, 제2기 시민운동 방식으로 일했다. 


 당시에 만일 전국의 모든 경실련 사무실에 소수의 필수요원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동네로 나가서 간사와 자원봉사자 한사람이 동(洞) 하나씩 맡아서 각 아파트를 다니며 주민들에게 현행 도시가스 요금제 등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서명을 받아가며 일을 했다면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구체적으로 시민들이 당하고 있는 문제를 알리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시민교육이고, 경실련에 대한 홍보이며,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시민들과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회원을 확대하는 길이다. 중간 중간 시민들에게 정부나 가스회사의 반응을 알리는 것이 바로 시민의 힘을 모으는 길이다. 


 앞으로의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운동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 없는 시민운동’을 극복할 수 있다. 이렇게 활동하면서 경실련은 자기 지역의 주민들과 접촉을 강화하는 것이다. 최소한 매년 두 가지 과제는 이런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두 가지 운동을 제안한다. 


 하나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참여예산제 실현’을 위한 운동을 즉각 시작하자는 것이다. 참여예산제(Participative Budget)는 예산편성 과정에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운동이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1989년 부터) 이를 실시했던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리 시의 경우 전체 예산의 약 10% 정도를 참여예산제 방식으로 편성한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광주시 북구, 울산시 동구, 북구 등 여러 지역에서 이미 이를 실시하고 있다. 이 운동을 통하여 지역살림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길을 넓히고, 매년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 시민운동이 함께하여 시민들과 같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일회성 활동이아니라 계속 발전시킬 수 있는 운동이다. 


 전국의 경실련 조직들이 이를 2010년 지방선거에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정하고 실천하기 바란다. 나는 부천의 시민단체들에게 유효투표의 10% 정도인 3만 명(인구 87만명의 70%가 유권자, 투표율 50%로 가정)의 주민들이 참여하는 참여예산제 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치밀한 대안을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설명하면서 1) 나는 2010.6.2. 실시하는 지방선거에 반드시 투표한다. 2) 내년부터 참여예산제 실현을 약속하는 후보와 정당에게 투표한다.는 두 가지를 골자로 19세 이상 부천시민 3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자는 것이다. 목표는 모든 부천시장과 시의원 후보의 모두의 약속을 받는 것이다. 유효투표 10%면 선거에서 충분히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비정규직으로 통칭되는 계층은 우리사회의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다. 수입도 적고,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계층으로 우리 사회 양극화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다. 이 그늘을 없애야 경제정의, 사회정의가 실현될 것이다. 


 역사는 ‘목마른 사람들이 샘을 파야한다’ 것을 웅변하고 있다. 즉,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비정규직이 나서야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해법의 일부분일 뿐이며 종합적인 해결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양극화는 점차 확대될 것이고 사회불안은 가중될 것이다. 


 기존 노조조직들은 이 문제를 해결한 진정한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본다. 이들은 도리어 비정규직의 존재로 이익을 얻고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 광범한 미숙련 노동자들이 취업하고 있지만 직능별 노동조합(craft union) 중심으로 구성된 미국노총(AFL)이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었다. 이때 존 루이스(John Lewis)를 비롯한 일단의 노동운동가들이 산업별노조회의(CIO)를 조직하여 미숙련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 노동운동의 발전에 킁 기여를 하였는데, 그때와 비슷한 현상이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선 비정규직 노동자(청년실업자를 포함하여) 100만 명의 서명을 조직하자. 내년 지방선거, 2012년 4월의 총선, 2012년 12월 대선을 겨냥하여 비정규직 노동자 100만 명의 서명을 조직하면 된다. 1) 나는 이번 선거에 반드시 투표한다. 2)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약속하는 정당과 후보에게 투표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여 서명을 받자. 대신 경실련은 노사문제, (노동)경제학, 복지 등의 전문가들을 모아서 실현가능한 비정규직 문제 해법을 만들고 이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서명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운동에 찬성하는 광범한 세력을 모아서 전국적인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자기 문제의 해법을 알리면서 서명을 받는 일은 바로 정치교육이고 민주주의 교육이다. 어떤 정책을 내거는 후보와 정당에게 투표를 해야 내 삶이 개선될 것인지를 교육하는 것보다 더 구체적인 민주주의 교육은 없다. “지연, 혈연, 학연을 떠나서 투표하자.”고 백번 설교하는 것보다 <투표를 하는 것이 자기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구체적으로 알리는 것>이 더 효과적인 정치교육이고 민주주의 교육이다. 이 운동이 시작되면 온라인에서도 논의가 증폭되고 서명이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힘들어도 대다수 비정규직의 처지를 감안하여 오프라인 서명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100만 명 서명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100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고 계속하여 서명자들과 소통을 하고 있는 데도 이런 시민운동을 무시하는 강심장을 가진 사람은 우리 정부나 정치권에 절대로 없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각 정당과도 활발하게 소통하면서, 정책정당이 되라고 100번 주장하는 것보다 각 당이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도록 압박을 가함으로써 정당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고, 서명운동 과정 전체가 교육과 조직화 과정이며, 홍보가 될 것이다.


 부족한 줄 알지만 구체적인 제안을 하는 것은 실질적인 토론을 하자는 것이다. 시민운동의 위기를 추상적인 언술로 적당히 포장하지 말고 구체적인 해법을 찾기 위하여 토론하고 실천하자는 것이다.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즉각 뛰쳐나오지만 찬물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개구리는 조용하게 익어간다고 한다. 우리 시민운동이 개구리 신세를 면하려면 현재의 관성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방향은 시민들과 함께 일하는 것 즉, 시민운동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약력>
전 경실련 사무총장
    부천경실련 공동대표
    부천경실련 조직위원장, 집행위원장
    경실련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사무처장
    상임집행 부위원장
    조직위원장
    경기도협의회 운영위원장
현 Icoop생협연합회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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