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뉴스보도

관리자
발행일 2002.07.10. 조회수 2709
사회

Ⅰ. 들어가며

 

지난 6월, 한반도는 새로운 도전과 축제의 장으로 유례없는 열광의 시기를 보냈다. 연이은 월드컵 한국전 경기 결과와 국민들이 보여준 열광적인 모습은 우리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대의 기록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에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냉철해야할 우리의 언론이 보여준 모습은 과연 어떠했는가. 국민들의 고조된 관심과 열기를 호기삼아 경쟁적으로 월드컵관련 내용으로 도배하기에만 급급하여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로막지는 않았는지. 월드컵을 즐기는 사람들조차 방송 프로그램, 특히 뉴스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며 “해도해도 너무한다”라는 어이없는 탄식을 자아내게 하면서까지 무엇을 지키고자 했는지. 뿐만 아니라 지난 6월 13일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언론의 월드컵 열기에 묻혀 최저의 투표율만을 우려하면서도 사실상의 지방선거 관련 정보 전달에 소극적으로 임하여온 우리의 언론이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하는데 기여(?) 하였다는 지적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뉴스는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한다. 즉 어떠한 뉴스와 사건을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월드컵 기간동안 우리의 방송뉴스가 보여준 모습은 적어도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뉴스의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감정을 앞세워 국민의 눈과 귀를 가로막고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는데 또 한번 기여(?)하는데 불과하였다.


이에 경실련 미디어워치에서는 월드컵기간동안 각 방송3사의 메인뉴스를 모니터, 분석하여 지상파 방송뉴스가 보여준 보도행태의 문제점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고 이후 동일한 문제점이 재발되지 않도록 방송사와 뉴스제작진의 반성과 각오를 당부하고자 한다. 이제 비록 월드컵이 끝난 시점이라 해도 월드컵 기간 중에 보여주었던 우리 방송뉴스의 문제점에 대해 점검해 보는 것은 이후 국가적인 대행사관련 보도나 중요한 뉴스를 다룸에 있어 보다 성숙한 방송뉴스의 역할과 보도태도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Ⅱ. 분석대상 및 기간

 

․분석대상: 지상파 방송3사 메인뉴스
․분석기간: 6월 10일 미국전이 있었던 날부터 6월 16일까지 일주일간과 한국전이 있었던 3일간 -18일(대이탈리아전), 22일(대스페인전), 25일(대독일전)-

 

Ⅲ. 분석내용


1. 월드컵 외엔 뉴스거리가 없다.


모니터 기간동안 뉴스를 찾아서 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축구 중계 사이에 편성된 메인 뉴스들은 8시뉴스, 9시뉴스 그 타이틀에 맞지 않게 시간이 변경되었고 또 뉴스 대부분의 내용이 월드컵과 관련된 것이어서 스포츠 뉴스인지, 월드컵을 위한 특집방송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뉴스 시간인지 조차 구별하기 힘들었다.


또한 뉴스 방송 시간도 짧게는 15분(내용 11꼭지, SBS6월 16일)이고 길게는 2시간여(내용 75꼭지, MBC 6월 14일)동안 진행되어 방송사의 임의적인 고무줄 편성으로 메인뉴스에 대한 기대와 신뢰성을 떨어뜨렸다. 그중 각 방송사별 뉴스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공통점은 한결같이 월드컵 관련 보도로 일관하였다는 점이다.

 


6월 13일 지방선거 이전까지는 각방송사가 70%에 근접하는 월드컵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더군다나 월드컵 관련 보도는 대부분 앞부분에 보도되어 그 비중이 더 크게 느껴졌다. 지방선거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월드컵 보도에 열을 올렸는데 SBS는 86%, KBS, MBC는 각각 82%, 80%에 이르는 월드컵 관련 보도들로 채워졌고 이후 18일, 22일, 25일 우리나라의 경기가 있는 날의 각 방송사의 메인 뉴스는 SBS는100%, KBS는 94%, MBC는 96%로 공중파의 메인 뉴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월드컵 기간 중에 범죄 및 사건사고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사건사고 마저도 월드컵 열기속에 묻혀 버리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 6월 13일 월드컵과 지방선거 뉴스 속에서 여중생 두명이 미군장갑차에 치어 사망한 사고가 있었으나 이 소식을 전한 것은 단지 MBC 뿐이었다. 6월 15일에도 고속도로 충돌사고로 30여명이 사상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하여 뉴스 속보까지 방송되었지만 정작 메인 뉴스에서는 월드컵 뉴스에 가려버렸다. 또한 통일의 염원을 담은 6.15 2주년 역시 각 방송사 뉴스에서 1-2꼭지에서 의례적으로 다루어졌을 뿐이었다. 6월 16일 KBS에서는 “월드컵 속 파업”이라는 제목으로 현대자동차의 부분파업을 보도하면서 월드컵 기간중에 웬 파업이라는 식의 냉소적인 분위기로 보도하였고, 또 MBC에서 6월18일 현대자동차 파업이 타결되었다는 것을 파업이 타결되고 휴무로 단체 응원에 나섰다며 월드컵 응원의 열기를 높이는 뉴스거리로 보도하여 국민들의 모든 이성적 판단을 월드컵관련 뉴스만으로 고정시키게 만들었다.

 

다음에는 모니터 기간 중 월드컵 이외의 다른 뉴스거리를 살펴보았다.


IMF때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박세리 선수의 승전보도도 더 이상 감격스럽지 않았고, 탈북자들에 대한 관심도 사라졌다. 아버지가 아들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아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살해한 사건, 그밖에 많은 사상자를 낸 교통사고도 그리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월드컵 이외에 다른 뉴스는 정보의 가치조차 없는 듯 보였다.


2. 지방선거에 대한 무관심 유발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우려하고 근심하던 방송은 사실상 국민들에게 정치적 무관심과 지방선거의 불참을 초래한 원인이기도 했다. 선거관련 보도에서조차 후보자들이 붉은 악마들과 함께 월드컵 경기 응원에 나섰다며 관중석에 있는 후보들, 거리응원에 나선 후보들의 모습을 비취곤 하였다.


모니터 기간 중 선거일 직전까지의 지방자치선거 관련 보도의 비율을 살펴보면, SBS는 19.6%, KBS는 10.5%, MBC는 17%로 나타났다. 이에 비하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48.8%라는 투표율이 전혀 낮은 것만은 아닐지 모른다.


더군다나 지방선거 관련 보도 중에서도 SBS는 6월 10일 선거관련 보도 2건 중 하나로 “정치권도 응원전”이라는 제목으로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을 주축으로 하여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우리나라 대표팀의 미국전 경기를 응원하는 모습을 보도하였다. KBS도 “정치권 필승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안정환의 골장면과 함께 각당 후보들의 응원 모습을 전했다. MBC도 이날의 단 하나의 선거관련 보도가 “정치권도 한마음”이라는 제목으로 후보들이 응원하는 모습을 전했다. 고작 선거관련 뉴스라고 편성한 것이 후보들의 응원모습이라니, 이것은 연예정보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축구 응원하는 모습을 다루는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는 내용이었다.

 

3. 시청자를 우롱하는 과잉보도- 양적 경쟁으로 인해 부실해진 뉴스

 

[한국전이 있는 날의 KBS, MBC의 월드컵 관련 뉴스의 수]

 

한국팀의 경기가 있는 날은 KBS와 MBC는 마치 뉴스 늘리기 경쟁에 나선 것 같다. 6월 10일 KBS에서 52꼭지로 월드컵을 집중 보도하자 다음 6월 14일 포르투갈 경기 때는 MBC가 지난번 뉴스에 비해 거의 배에 이르는 양적 팽창을 감행하였다. 두시간에 육박하는 뉴스 시간에 경기 하이라이트를 반복 보도하고 “봐도 봐도 또 보고싶은” 화면이라며 골장면을 반복적으로 내보내었는데 수십번에 이르는 반복화면, 슬로우 화면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질리도록 만들어 버렸다. 특히 경기 관전평과 응원전에 대한 보도는 그야말로 양적 경쟁의 재탕의 연속,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각 꼭지에서 보도되는 내용도 천편일률적이다. 경기 하이라이트, 선수소개, 그리고 응원모습, 특히 골장면과 같은 뉴스 꼭지에서 각 방송사간 뉴스에 차별성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특정일 같은 뉴스 시간대에 동일한 뉴스 꼭지를 재반복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똑같은 뉴스 제목에 똑같은 기사 내용, 거기다가 기자만 바꿔 목소리만 다르게 나오는 보도행태는 월드컵의 열기를 빌미로 시청자를 우롱하는 방송사의 횡포에 다름 아닐 것이다.

 

또한 유사한 내용의 뉴스를 꼭지 제목을 다르게 표현하여 똑같은 화면을 반복하여 보여주는 보도행태 역시 방송 3사의 공통점이었다. 특히 6월 22일 스페인전에 대한 MBC 뉴스에서 “젖먹던 힘 다했다.”, “이 악물고 뛰었다.”라는 기사제목에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선수들이 열심히 뛰었다는 내용을 기사제목만을 달리하여 연이어 보도하는 것에 불과하였다.
6월 25일 독일전을 다루는 뉴스인 “빠른발 못살렸다.”, “중원장악못했다.”, “공중전에 진땀”, “피로쌓여 못뛰었다.”의 연속 뉴스내용에서는 연이은 혈전의 피로로 인한 체력부담으로 빠른발 못살려서 스피드가 떨어졌고 또 체력부담으로 중원장악못했고, 체력이 떨어져 공중전도 힘들었고, 마지막으로 다시 확인하듯 피로 쌓여 못 뛰었다는 내용으로 뉴스를 채워 단지 뉴스의 분량을 채우기 위해 똑같은 내용을 말만 바꾼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4. 승리에 도취된 뉴스


한편 한국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마어마한 물량공세로 뉴스를 보도하는 방송3사의 뉴스 내용은 거의 똑같은 포맷 즉, 경기 하이라이트, 수훈선수소개, 경기분석(골장면 재방송), 응원현장소개, 외신들의 반응, 기타 등으로 진행되었다.


 

한국 경기 중심으로 뉴스가 구성되었고 다른 경기는 12%라고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우리의 16강 진출과 관계 있는 포르투갈, 미국, 폴란드의 경기였고 또 다른 경기는 일본관련 경기, 또 16강 이후에는 우리와 맞붙을 팀에 대한 뉴스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하이라이트는 7%라 하지만 이는 아무런 기사 내용없이 그저 주요 화면과 오락프로그램에서나 보아왔던 커다란 자막과 함께 내보내는 것이고 경기관련 거의 전 화면이 하이라이트 화면을 재편집, 반복하여 그대로 방송하는 것이었다. 경기분석 역시 분석적인 내용은 거의 없고 하이라이트의 내용에 수비와 골키퍼 그리고 공격수에 초점을 두어 전달하는 것이어서 사실상은 하이라이트의 기사내용과 차이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취재보도 경쟁에서 가장 경쟁이 심한 부분은 전체 기사 중 51%를 차지하는 응원현장의 소개일 것이다. 전국을 연결하며 거리 응원전을 보도하고, 또 심지어 섬, 교도소, 양로원, 병원, 장례식장, 결혼식장, 고아원, 세계 각지의 교포들, 술집, 지하철, 최전방부대, 공군부대, 심지어 분만대기실까지 전국의 생생한 응원현장을 전한다며 상상치 못했던 곳까지 소개하고 나섰다. 매 경기마다 이러한 응원현장을 전하는 것은 마치 누가 더 예상치 못한 곳을 취재하는지 내기라도 하는 듯 호들갑스럽기까지 하다.


여중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치어 사망하고, 교통사고가 나서 30명의 사상자를 내고, 지방선거가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하고, 아들이 아버지와 할머니를 죽인 사건사고는 이런 월드컵의 전국적인 응원 모습에 가려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것이다.


흥분, 감동, 축제, 환희 등의 제목으로 포장된 “기쁨”의 뉴스만을 전하려는 자화자찬의 모습들 속에서 축제의 후유증은 한낱 단신에 불과하다. 이러한 응원 속에서 지난 6월 14일 포르투갈 전에서 흥분한 군중들이 음주 후에 여러 사고를 내어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보도는 있었지만 방송 어디에서든 국민에게 “정신차리자”고 하는 방송은 없었다. 오히려 6월 15일 KBS의 뉴스는 이런 각종 사고를 전하면서 “너무 기쁜 나머지”라는 제목으로 그저 이러한 사건은 기뻐서 그런 것이라며 사건의 본질을 축소시키거나 간과하며 국민들의 흥분된 감정과 축하의 모습들을 소개하는데 급급하였다.


KBS는 사고에 대한 미력의 소개나마 있었지만, SBS, MBC는 아무런 지나친 응원에 대한 사고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트럭에 사람들을 가득 태운 채 질주하는 차들, 버스 위에 올라가서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응원단들, 위험한 불꽃 놀이를 하는 사람들, 심지어 두 개의 버스사이에서 양다리를 벌려 서서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위험하게 달리는 도로의 차들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비춰주고 있다.


한편 KBS의 6월 16일 뉴스에서는 "즐거운 함성 ‘소음’"이라는 제목으로 응원 현장의 소음을 측정하였다. 소음전문가의 의견은 “고막에 손상을 가져올 정도”라는 위험성을 지적하였만 뉴스보도는 이런 어마어마한 소리를 낼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초점을 맞췄다. 또 한국 승리의 비결은 이 함성에 숨어있다며 앞으로의 경기에서 이러한 열광적인 “소음”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기도 하기도 하였다.

지난 18일 이탈리아 전에서는 2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100명에 이르는 각종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22일 스페인전에서는 5명이 사망하고 2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지만 이건 단순히 월드컵 열병의 단순 희생자로 간주하여 큰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였다. 정말 국민이 월드컵의 열기에 환호할 때 뉴스는 더 뜨거운 열기에 빠져줄 것을 강요하는 것만 같다.

마찬가지로, 지난 6월 22일 4강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도 안전사고에 대한 보도내용은 응원하다 다친 것은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었고 오토바이와 부딪혀도 큰 불상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월드컵 기간동안의 방송3사 뉴스는 경기장 현장에서 그리고 시청과 온 거리, 또 TV를 시청하며 경기를 본 국민 개개인들이 체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채 뉴스시간만을 늘리고 반복을 거듭하는 방식으로 국민들을 매몰시키면서 정보없는 피폐한 뉴스로 전락하고 말았다.


5. 지나친 시간 경쟁으로 방송사고 수준의 미완성 뉴스 보도


경기가 끝난 후 곧바로 뉴스를 보도하면서 방송사고에 준하는 여러 미완성 내용들이 속출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나 외국 현지인 인터뷰에서 자막없이 인터뷰 화면만을 방송하거나 인터뷰 화면이 갑자기 없어지는 등 미완성의 내용들이 자주 발견되기도 한다. 특히 히딩크의 인터뷰의 경우는 매우 관심이 높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자막을 표기하지 않아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을 전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MBC는 포르투갈 경기 후에 “김남일 못뛴다”라는 제목으로 김남일 선수가 조별 리그전의 경고 누적으로 이탈리아 전에 출전할 수 없다고 보도하면서 조별리그에서 경고 1회면 그 경고가 삭제되지만 2회이면 한 회 출장 정지를 받는다고 상세하게 설명을 하였다. 하지만 실제는 김남일 역시 경고 1회로 이탈리아전 출전에는 별 문제가 없었고 이에 대한 확인 해명 기사를 다음날인 15일 단신으로 보도하였다. 그리고 이 “김남일 못뛴다”라는 오보성 보도는 인터넷 VOD에서조차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게 삭제되어 있다.

 

방송은 아니지만 신문보도에서도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지난 19일 몇몇 스포츠신문이 이탈리아와의 한국전에서 이탈리아가 연장전까지 가서 2:1로 승리하였다는 헤드라인 기사의 신문을 지방에 배포하였던 것이다. 이는 마감시간에 임박하여 당시 연장전에 들어간 것을 보고 기자가 2:1로 질 경우의 기사를 적었는데 편집과정에서 이를 검토하지 않고 바로 인쇄하여 이런 실수가 일어난 것이었다. 당시의 기사가 패배에 슬퍼하는 모습의 사진들과 정말 사실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 너무나 구체적이고 생생한 내용들이어서 그동안 저널리즘 뒤에 가리워진 우리 언론의 어두운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6. 간접홍보 = 월드컵 관련 상품 및 기업의 간접홍보


신중하지 못한 뉴스보도의 또 다른 모습은 난무하는 기업들의 간접 홍보 노출이다.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이번 붉은 악마의 공식 스폰서인 SK의 경우는 광고의 화면과 뉴스에서 보도되는 대형 태극기의 화면이 일치되기도 하였고 붉은 악마의 현수막에 SK의 로고가 여러 차례 노출되기도 하였다. 시청앞의 응원을 주도한 것도 SK가 후원하는 붉은 악마인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긴 하지만 시청의 응원 열기를 보자고 하면서 시청 앞의 대형 현수막에 써있는 SK의 기업로고와 광고 이미지를 언제든 볼 수 있는 것처럼 카메라에 담았다. 또한 대표팀 유니폼의 제작사인 나이키도 응원인파들의 의상에서 수차례 노출되기도 하였고 두건에서 FILA의 로고 등 스포츠 용품 관련 로고들이 여과없이 노출되었다. 무료음식점과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는 것을 보여주면서 아이스크림 상표를 여과하지 않은채 그대로 보여주었다.(월드콘 6.15일 MBC)
또한 승리를 자축하며 무료 혹은 할인 이벤트를 펼치는 상점과 식당의 상호를 그대로 노출시키는가 하면, 우리나라 선수들의 선전에 EF 소나타는 선수들에게 그랜저 XG를 감독에게 포상하기로 한 현대자동차나 순금40돈의 축구공을 주기로 한 ‘골드인월드’라는 업체가 뉴스에서 홍보되기도 하였다.(6월 15일 KBS, MBC)


또 선수들에게 3억원의 종신보험을 들어주겠다는 교보생명, 히딩크에게 2006년까지 First Class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대한항공,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승률을 어떻게 보고있는지를 알려주는 명목으로 영국의 유명 축구 도박회사(래드 부륵스 등)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단지 마피아적인 모습이 아닌 도박사라는 잘 갖춰진 사무실에서의 인터뷰는 회사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하였고 또 사이트(Ladbrokes.com)까지 노출시켰다. 축구 베팅이 인터넷으로 이뤄지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뉴스에서 확실한 광고를 해주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도 유명 사이트의 경우 한국어 서비스를 시행하였고 이런 축구 베팅에 들어간 우리나라의 외화도 몇억대를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 바, 외국에서 보는 우리나라의 승률을 보도한다는 명목으로 외국 축구 도박사이트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것은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월드컵은 프로스포츠 선수들이 기량을 펼치는 대회로 가장 상업화된 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FIFA도 지나친 상업주의적 행태로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으나 이런 지적에 앞서 뉴스에서 노출되는 기업과 상품에 대한 홍보는 자본의 상업주의적인 의도나 모습들을 무의식속에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Ⅳ.결론에 대신하며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렸던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월드컵은 끝났지만, 연일 보도되는 월드컵 평가에서 이변의 월드컵, 역대 최고의 월드컵 등 한국인의 승리를 자축하는 뉴스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뉴스뿐 아니라 다수의 오락프로그램, 연예정보프로그램, 오전시간대 주부대상 프로그램에 이어 토론, 교양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온통 월드컵과 관련한 유사한 내용이 경쟁적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중 일부는 신념과 투혼으로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한반도를 하나로 뭉치게 했던 힘을 향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장을 마련하였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는 단지 기존 우리의 방송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의 연장선에 불과하였다. 즉 스타급 연예인을 무기로 하고 그들을 만능엔터테이너라는 이름으로 온갖 프로그램에 주요한 내용으로 채워나가던 것을 대신하여 월드컵의 하이라이트 장면과 스포츠 선수들로 그 파트너를 바꾼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느낌은 과장된 것일까.

 

이러한 가운데에도 뉴스만은 정도를 걸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승리에 도취되고 세계를 놀라게 한 붉은 악마의 응원에 감격하여 자화자찬의 어구로 가득했던 뉴스나 국민들이 듣고 보았던 수준의 내용을 반복하여 보여주고 이미 보여준 화면을 다시 편집하여 멘트만 따라하는 앵무새같은 뉴스는 월드컵을 즐기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하였다. 때문에 이러한 인식의 전제없이 월드컵 증후군을 벗어나기 위해 국민들에게 치료법을 소개하는 식은 아마도 월드컵이라는 흥행요소로 방송을 확대 재생산해왔던 방송사들의 월드컵 증후군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만을 낳을 뿐이다.

월드컵기간동안 무수히 많은 월드컵 관련 뉴스에서 일반적인,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내용을 잘 포장하고 몇가지 첨가제를 넣어 적절히 요리한 결과물을 보도하기에 급급했던 뉴스들이 과연 어디까지 포장과 첨가제만을 가지고 월드컵의 신화를 남발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시 이와 같은 보도행태를 반복한다면 2002년 월드컵 그 이상의 어떤 열기와 열광의 도가니에 휩싸인다 해도 더 이상 용납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국민은 적어도 두 번 속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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