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문화탐험 오늘의 현장” 모니터 보고서

관리자
발행일 1999.10.11. 조회수 2868
사회

I. 들어가며


문화는 이제 우리사회의 지배담론이 되었고 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문화를 논한다는 것이 일종의 사치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문화란 예술과 같은 고급스러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 삶의 모습이 그대로 문화일 수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자체가 문화공간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바꾸어줄 만한 프로그램이 신설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KBS2 ‘문화탐험 오늘의 현장’이 바로 그것인데 말만 무성할 뿐 정작 실체는 찾기 어려운 껍데기 문화환경 속에서 올바른 문화의 길잡이가 될만한 프로그램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니터를 하고자 한다.


II. 분석대상 및 분석기간


● KBS2 문화탐험 오늘의 현장 (월~금, 저녁 8시 25분~8시 50분)


● 1998년 10월 22일 ~ 1998년 11월 6일 총 10회분


III.  분석결과


1. 만화에서 오페라까지 - 소재의 다양화


본 프로그램은 다양한 문화공간과 문화영역을 소개한다. 바스키아의 미술세계나(‘바스키아 낙서에서 예술로’ 10월 22일 방영) 오페라 리골레토에 대한 해설에서부터(‘재미있게 보기, 오페라 리골레토’ 11월 3일 방영) 만화‘힙합’의 김수용씨까지(‘문화인물, 만화가 김수용’ 10월 30일 방영) 소개하는 작품과 작가의 범위가 다양하다. 또한 청주여자교도소 재소자들의 음악회 소식이나(‘문화읽기, 갇힌 자들의 노래-청주여자교도소’ 11월 2일 방영) 삼성학교 청각장애아들과 타악기 연주가 최소리씨의 협연등(‘현장음악회-최소리’ 10월 30일 방영) 쉽게 접하지 못하는 그늘진 곳의 문화소식까지 담아내고 있다.


또한 그 제목에 걸맞게 오늘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화계소식들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을 움직이는 힘展’(10월 22일 방영), 윤이상 선생 출판 기념회(‘나의 남편 윤이상’ 10월 22일 방영), 서울 시립미술관의 도시와 영상전(10월 23일 방영), 선재 아트센터의 오디션 소식(‘발굴 문화현장, 마구잡이 오디션’ 11월 5일 방영), 인도네시아와 태국 학생들의 한국문화체험(‘한국을 느끼고 싶어요’ 11월 5일 방영) 등이 그 예이다.


이렇듯 다양한 소재를 다룸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문화에 대한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임과 동시에 이점이 바로 「문화탐험, 오늘의 현장」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라 할 수 있다.


2. 일상인을 문화주체로 - 나도 평론가


나도 평론가 코너는 길을 지나가던 시민들을 모두 뛰어난 예술가의 작품을 평론할 수 있는 평론가로 만들어 준다. 즉, 박수근 화백의 ‘나무와 두 여인’이나(10월 26일 방영) 마티스의 ‘콜리우르의 열린 창’(11월 4일 방영) 등 작품성은 뛰어나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들을 자유로운 시선으로 느끼고 말하게 한다.


자유롭게 제목도 붙이고 이미지를 새로 구성하기도 하면서 그림이란 보는 이들에 따라 그 해석이 충분히 다를 수 있으며 그러한 평론에 어떠한 잣대도 들이대지 않음으로써 열린 시각으로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직업평론가의 해설이 곁들여지기는 하지만 나중에 평론가상을 받는 시민의 평론이 그것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닌 점으로 미루어 일상인들의 평범한 감성과 시선을 높이사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러한 측면이 너무 강조되다보니 전혀 엉뚱하고 장난스러운 평론이 상을 받기도 한다. 마티스의 그림을 숙취와 연관시킨 학생이 바로 그 예인데 개인의 개성적인 시각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전혀 엉뚱하고 진지하지 못한 평론에 대해서는 유머 그 자체로 넘겨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 코너의 원래 의도인 ‘쉽게 이해하기’가 자칫 ‘멋대로 이해하기’로 변질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3. 따뜻한 시선과 배려가 담긴 문화의 현장


청주여자교도소 재소자들의 음악회 소식은 사회에서 격리되고 버림받은 이들을 문화의 중심인물로 부각시켜준 코너였다. 화면에서 보여진 중형을 선고받은 이들의 가족상봉장면이나 가슴아픈 뉘우침은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에 대한 시선을 따뜻하게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이와 비슷한 감동은 ‘권진원의 현장음악회 - 천안개방교도소’편(10월 28일 방영)에서도 전해질 수 있었다.


또한 ‘현장음악회 - 최소리’편은 그 설명에서 장애아들에 대한 배려를 느끼게 한다. “삼성학교 아이들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면에서 다른 아이들과 약간은 다르다.”라는 표현은 장애아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을 거둠으로써 그들을 또 하나의 중심에 올려놓았으며 수화 뮤지컬 소식(‘발굴 문화현장, 마음으로 듣는 수화뮤지컬’ 11월 9일 방영)은 “장애인과 정상인”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을 함으로써 장애는 비정상이라는 인식을 허물었다.


4. 일상의 문화적 의미


우리는 문화의 영역에서 우리의 생활공간이나 생활자체를 배제시키기가 쉽다. 문화, 특히 대중매체에서 따로 소개하는 문화란 그것을 위해 특별히 시간을 투자하고 행위를 하고 감상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 그 자체가 문화일 수 있으며 생활인으로서 우리가 그대로 문화의 주체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본 프로그램은 천호동 골목길, 스티커사진, 롯데월드 등에 각각의 문화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 ‘다시 보는 골목 - 천호2동 461번지’편(10월 28일 방영)은 주민들의 아름다운 골목 만들기가 단지 깨끗한 골목에 그치지 않고 열린 골목, 훈훈한 골목을 만듦으로써 생활문화의 변화를 가져왔음을 보여주었다.


‘문화읽기-롯데월드’편은 소비사회에서의 질곡되고 고립된 문화를 보여주었다. “1. 그곳은 가진 만큼 행복하다, 2. 그곳은 가공과 허구의 세계다, 3. 그곳은 나만이 존재할 뿐 우리는 없다”라는 이 세 가지 테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일상의 문화가 얼마나 허무하고 일회적인 유혹에 그치지 않는가를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카메라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온 듯한 부모의 얼굴, 백화점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노인의 지친 모습, 입장은 하지 못한 채 구경만 하고 있는 아이의 힘없는 표정을 담고 있다. 무심히 넘겨버리기 쉬운 일상의 문화를 비판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문화의 명암 - 스티커 자판기’편(11월 6일 방영) 역시 도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스티커자판기가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개성표현과 갑갑함에 대한 일종의 분출구의 의미가 있음을 그들의 입을 통해 보여준다. 


5. 문화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본 프로그램은 위에서 제시된 감동적인 내용이나 문화계소식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문화계진단 - 미술품 경매’(11월 4일 방영)를 통해 미술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고 있으며 ‘문화읽기 - 생활 속의 문화, 아트상품’(11월 3일 방영)에서는 미술가들의 작품활동에 있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얼마나 큰 장애를 주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바스키아 편에서는 “만약 바스키아가 지금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면 화장실 벽에 낙서를 하고 있거나 미대에 가기 위해 입시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나레이션을 통해 우리나라 획일화된 미술교육을 비판하였다. 이러한 압축적인 비판성은 이 프로그램으로 하여금 짧은 시간 안에 문화계소식을 알리는 정보프로그램과 차별성을 갖게 한다.


6. 눈높이에 맞는 문화의 이해


청소년 특집(11월 6일 방영)은 「문화탐험 오늘의 현장」이 문화주체에 대해 그들의 시각을 그대로 이해하고 담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영파여중 방송반 아이들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문화개방에 대한 고민들은 “요즘 아이들이란…”이라고 쉽게 말해버리는 기성세대들의 생각이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부족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스티커 사진을 통해 아이들의 갑갑함과 개성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을 읽을 수 있었으며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어들이는 어른들의 얕은 상술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7. 저녁 8시 25분, 힘겨운 시청률경쟁


그러나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보는 이들이 없다면 공영방송사의 구색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 저녁 8시 25분은 타 방송사의 일일 연속극이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시간이다. 드라마의 중독성으로 인해 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문화탐험으로 끌어들이기는 역부족일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진정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면 편성에 대한 재고가 있어야 할 것이다. 9시 뉴스가 끝나고 드라마가 시작하기 직전인 9시 30분경으로 편성을 한다면 10시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까지 볼만한 프로가 없어 채널을 돌리고 있는 이들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며 주시청자층으로 예상되는 20-30대들이 시청하기에 적절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V. 결론 및 제언


「문화탐험 오늘의 현장」은 모니터 결과 주로 긍정적인 측면을 나타냈다.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어렵지 않은 문화의 이해를 이끌어 내는 길잡이로서 앞으로도 많은 기대를 해본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시청률경쟁에서 사장되어 버리는 프로그램이 되지 않을 까하는 우려가 크다. 우리는 좋은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에서 밀린다는 이유로 폐지되어버리는 예를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주 5회 동안 매일 3-4가지 테마를 다루다보면 자칫 소재가 고갈되어 단순한 문화계소식을 전하는 단신프로그램이 되지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문화탐험 오늘의 현장」은 앞으로 문화적 욕구가 큰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사랑받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이리라 기대하며 보고서를 마친다. <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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