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28_[현장취재]두 동강난 국론, 과연 어디로…

관리자
발행일 2003.03.18. 조회수 2340
정치


 


 

 "명분 없는 전쟁에 동참하는 것은 결국 세계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고 대한민국의 국치가 될 것이 뻔하다. 즉각 이라크전 파병안을 철회하라, 철회하라."


 "우리는 미국을 도와야 북한 핵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라크전 파병은 당연하다. 파병하라, 파병하라."


 3월 28일, 이라크전이 발발한 지 1주일이 지나면서 다소 혼란스런 상황이 연출됐다. 그래서 국회 앞이 뜨겁다. 한쪽에선 '파병반대'를, 길 건너 맞은 편에서는 '파병지지'의 구호가 난무했다. 좌익과 우익이 싸우던 시대도 아닌데 어느새 우린 편을 갈라 서 있었다. 양쪽 모두 '평화'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혼란스럽다. 참 아니면 거짓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로는 어느 입장이 참인지 명확히 밝힐 수 없는 노릇이다. 진정 어느 것이 평화요, 국익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렇게 분분한 가운데 28일 예정되어 있던 국회 이라크전 파병 결의안은 파병반대 의원들의 요구로 헌정사상 처음 '국회전원위원회'를 열기로 한 가운데 연기됐다.
 반전평화, 파병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은 다시 한숨 돌렸다. 그리고 이라크전 파병이 완전히 철회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연한 다짐을 이어갔다.


 국회 앞 파병반대 농성단은 이미 지난밤을 꼬박 철야 농성으로 지샌 터였다. 그러나 눈빛은 더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파병안은 절대 철회되어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기에 밤새 추위와 싸우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목숨을 걸고 밤을 지새는 이라크 어린이를 생각하면 가만히 두고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이 집회에 모인 사람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끝까지 우리 국민의 평화의지를 보여줘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어젯밤 유난히 추웠지만 조금도 찡그린 표정 없이 철야 농성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자랑스러웠습니다. 역시 역사는 민중에 의해 만들어지고 진보시켜 나가는 것을 직접 느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민중들에 의한 반전집회가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민주노총 유덕상씨는 이렇게 밤샌 농성단에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파병은 위헌이다"


 


<사진>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이라크전 파병의 위헌성을 주장하며 파병반대를 외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지원하고 파병하려는 전쟁은 우리의 헌법에 정면으로 어긋납니다. 따라서 국회는 파병동의안을 부결시키고 대통령에게 파병결정 취소를 촉구해야 합니다."


 이날 오전 11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은 집회에 앞서 '이라크 침략전쟁과 한국군 파병반대'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파병안이 분명히 우리 헌법에 위배되는 조항임을 조목조목 따졌다. 민변이 제시한 자료에 의하면 이번 이라크 전쟁은 '국제법상 침략전쟁'임을 근거로 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 제6조에 국제법 존중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헌법 전문과 제5조는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고 국군이 침략을 수행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헌법 제 66조 제 2항은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정해진 바 파병은 결국 위헌이며 대통령은 스스로 헌법에 위배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변의 여영학 변호사는 "미국이 지금 쏟아 붓고 있는 무기가 대량살상무기이며, 열화우라늄탄이 화학무기가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학살자이자 파시스트인 부시는 반드시 전범으로 국제재판에서 처벌받아야 할 것"이라며 규탄발언을 했다.

 이어 이정희 변호사는 "국회가 만약 파병동의를 한다면 우리는 침략국가로 세계인의 뇌리에 박힐 것이며 우리의 생명존중과 평화애호 정신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다시 한번 이번 파병이 위헌임을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민변 소속 변호사들은 '이라크 전쟁의 불법성과 한국군 파병의 위헌성에 대한 의견서'를 국회 사무처 국회의장 앞으로 의견서를 전달했다.


  

  "이 몸이 육탄이 되어서라도 파병을 막아낼 것"


 


<사진>국회 앞에는 전쟁을 반대하는 많은 시민들이 농성장에 속속 모여들었다.



 민변의 기자회견은 국회 앞 농성단에 큰 힘이 되었다. 평일 오전이었지만 사람들은 속속 모여들어 어느새 1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집결하였다. 전국민중연대 오종렬 공동대표는 이날 집회 인사말을 통해 "대한민국이 전범국가가 될 순간에 이르렀는데 지금은 나라를 구할 시기"라며 "인류의 양심과 평화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라크 파병 동의안은 부결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의 말은 보다 더 직설적이었다. 그는 "스스로 점잖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막말을 삼갔지만 이번만은 막말을 해야겠다"며 집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말을 이었다.
 
 "여러분 똘마니가 뭔지 잘 아시죠. 뒷골목에서 부스러기 받아먹으면서 뒷골목 깡패대장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을 똘마니라고 합니다. 노무현 정부가 부시의 똘마니가 될지언정 정의를 사랑하는 민중들은 절대 미국의 똘마니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권 대표의 말은 이렇게 노골적이었다. 정부의 전쟁지지와 파병안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할말은 하겠다는 의지였다.


 파병거부를 외치는 사람들의 기세는 보다 더 대단했다. "맨몸이 육탄이 되어서라도 국회로가서 반드시 파병안을 철회시킬 것"이라며 국회로의 진입을 시도했다. 경찰과의 마찰이 불가피했다. 밀고 밀리는 몸싸움이 시작됐다. 여기에 대형화물차 10대와 택시 50대도 동참하여 항의 경적을 울렸다. 국회 앞이 떠나갈 듯한 사람들의 함성과 고막을 찢는 차량들의 경적은 또 다른 전쟁이었다.


  

  파병안을 둘러싼 낙선운동


 


<사진>전쟁 반대를 외치는 현장의 건너편에는 전투병 파병을 촉구하는 정반대 집회가 열렸다.



 같은 시간. 어처구니없게도 길 건너편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의 집회가 있었다. "파병안을 지지한다", "진정한 국익은 파병"이라는 플래카드를 든 사람들이 "파병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 다가왔다. 양측이 충돌할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다행히 양측을 경찰이 철저히 저지했고, 충돌은 없었다. 서로간의 주장만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서로가 맹목적인 명분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에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팽팽하게 맞선 파병론과 파병거부는 급기야 상대측간의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양측 모두 파병안을 둘러 싸고 찬성하는 의원, 반대하는 의원들을 향해 낙선낙천운동을 하겠노라며 으름장을 놓기에 이른 것이다.


 


<사진>정대철 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이 경실련 사무실을 방문하여 시민사회의 낙선운동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상황이 이렇게 엉뚱하게 돌아가자 정치권에서는 직접 시민단체를 설득하고 나섰다. 민주당 정대철 대표, 이낙연 대표비서실장, 이재정 의원 등은 이날 경실련 사무실을 방문해 낙선운동을 하지 말라는 요지의 의견을 전했다.
 정대철 대표는 "파병안을 두고 양론이 있을 수 있으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국회의원 개개인이 소신 있게 판단할 수 있도록 낙선운동 운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재정 의원 역시 "나도 파병을 반대하고 있지만 찬성하는 사람들을 너무 매도하지 말아달라"며 소신 있는 토론이 오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신철영 경실련 사무총장은 "정부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전쟁에 지원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파병반대의 분명한 입장을 전달했다.


 다시 파병안을 둘러싼 진통이 예상된다. 시민단체들 역시 이번에도 반드시 '철회'냐 '통과'냐는 양립된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먼 나라 이라크에서 전쟁이 터졌지만 좌시할 수만 없는 것이 분단된 조국의 국민이다. 약소국 국민의 슬픔이다.


<취재 : 양세훈 월간 경실련 기자>


 

  <현장 사진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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