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한다-반쪽짜리의 사실, 뉴스를 믿을 수 없다?

관리자
발행일 2002.11.20. 조회수 666
칼럼






바그다드가 함락되던 날,
미국의 언론은 일제히 카메라의 포커스를 후세인 동상에 맞췄다. 그리고 미국의 장갑차에 의해 끌어내려진 후세인의 동상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과 이에 환호하는 바그다드 시민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중계하였다.


후세인 동상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생중계되는 동안 아주 짧은 순간이기는 하나 세계의 시청자들은 미군 병사가 후세인의 얼굴에 성조기를 두르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미군 병사가 후세인 얼굴에 두른 성조기는 곧바로 이라크 국기로 바뀌었지만 미국의 언론은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고 알 자지라가 비중있게 다뤄 크게 반향을 일으켰다고 미국NBC는 보도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 언론은 후세인 동상에 성조기를 게시하는 것은 '해방'이 아니라 '점령과 지배'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보도하지 않았던 반면 알자지라는 CNN이 외면했던 장면들을 통해 ‘침략전쟁'의 실상과 전쟁의 참혹함을 전달하려 했던 것이지 않을까.


이전까지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면 CNN이 주도적으로 미국의 시각만을 강요해왔다. 하지만  이번 이라크 전쟁은 이슬람의 언론 특히 알 자지라가 이슬람의 시각과 관점으로 전쟁의 참상을 알려옴으로써 세계는 더 이상 하나의 시각만을 강요받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한국의 방송들이 CNN의 보도를 미신 숭배하듯 인용보도하여 국민들의 판단을 미국에 편향되게 강요해 왔다는 점이다. CNN의 오보임이 거듭 판명된 경우에도 한국 언론들은 이에 대해서 사과 한 마디 없이 CNN보도를 동시통역하기에만 급급했다.


전쟁초기에는 전황보도에 치우쳐 전쟁의 참상과 반전여론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편파적 보도뿐 아니라 흥미위주의 전자게임처럼 전쟁 상황을 오락화 시킨다는 집중적인 비판을 받기도 했던 언론의 보도태도에 의해 우리국민은 반쪽짜리 사실만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 얼마전 한 초등학교 교장의 자살사건이 있었을 때도 주요일간지와 방송뉴스에서는 전교조가 초등학교 교장의 자살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주범이라고 몰아세웠다. 지난 4월 4일 KBS 9시 뉴스에는 “ ‘차시중 강요’ 사과요구 받은 교장 자살 파문”이라는 기사제목을 달았고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여교사에게 차심부름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논란을 빚어왔던 초등학교 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는 기사내용을 보냈다.


 SBS 8시 뉴스에서도 “차 심부름을 요구하는 교장에 대해 여교사가 거부함에 따라 갈등을 겪었고 ...이 학교 교장 57살 서모씨가 스스로 목을 매 숨졌습니다.... 학교 주변에선 이 문제로 인한 고민과 갈등이 자살의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라고 보도하여 방송3사가 동일한 목소리로 ‘차시중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사과요구를 받은 교장이 이로 인해 자살이라는 방식에 이르게 되었다’는 논조의 기사를 내보냈다.


언론의 보도를 접하면서 다수의 사람들은 “전교조가 그랬군. 전교조가 그렇지뭐” 라는 식으로 언론이 제공해 주는 보도태도를 자신의 태도로 옮기고 반복적인 접근을 통해 판단으로 굳히게 된다. 정작 경찰에서조차 자살사건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아무런  증거도 제시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언론이 반쪽짜리의 사실을 단정하여 그 범인으로 전교조를 꼽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교조가 국민들의 비난에 휩싸이고 있다면 이는 전교조에 대한 마녀사냥에 다름 아닐 것이다.


뉴스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을 제공해주며, 직접․간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세상의 여러 가지 정보들을 전달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뉴스는 모든 사회적인 문제와 사건을 다룰 수 없기 때문에 전반적인 사회변화의 흐름과 의미를 파악하는데 소홀히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단지 ‘소홀히 할 수 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 경우이다.
 
사람들은 신문과 뉴스를 통해 세상을 보게되고 언론사와 기자에 의해  선택되어진 뉴스를 통해 제한된 세상을 만나게 된다. 선택된 뉴스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전달하려고 하는 것인지에 따라 사람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게 된다.
적어도 우리가 기대하는 뉴스는 객관성과 보도의 균형성을 상실한 뉴스, 공정성이 사라진 반쪽짜리의 뉴스는 아닐 것이다.
뉴스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기대하는 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인지 의문을 던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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