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돋다] 두 사람, 제시와 박문자

회원미디어팀
발행일 2024.05.30. 조회수 17021
스토리

[월간경실련 2024년 5,6월호][BOOK돋다]

두 사람, 제시와 박문자

- <제시의 일기>, 그리고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

이성윤 회원미디어팀 팀장

 제시와 박문자, 여러분은 혹시 이 두 사람을 알고 계신가요? 이방인의 이름을 가진 한국인 제시, 그리고 한국인의 이름을 가진 일본인 박문자. 이번 호에서는 아주 특별한 삶을 살아온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통해서 그들이 살아간 시대와 삶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전쟁 속에서 피어난 희망, <제시의 일기>
 “1938년 7월 4일, 중국 호남성 장사, 제시가 내게 온 것은 음력으로 6월 7일 아침이다.”1)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8년 중국 호남성 장사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제시. 이름만 봐서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이 아이가 바로 오늘 소개할 책의 주인공입니다. 성까지 더하면 양제시. 이 아이는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양우조, 최선화 부부의 첫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임시정부는 중일전쟁의 포화를 피해 피난을 다니고 있었는데요. 그 와중에도 희망처럼 한 아이가 태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제시가 태어난 지 보름만에 또 다시 피난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될 때까지 오랜 시간 이곳저곳을 떠돌며 피난생활을 하며 지내야 했는데요. 이 목숨이 오가는 와중에도 양우조, 최선화 선생은 아이의 성장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해두었습니다. 이렇게 쓰인 기록이 바로 오늘 소개할 책 <제시의 일기>입니다.

 이 책은 일종의 육아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영웅적인 독립운동가의 모습이 아닌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도 만나볼 수 있는데요. 밖에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독립운동가였지만, 집에서는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초보 엄마, 아빠였나 봅니다. 내용 중에는 육아의 고충들도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이외에도 어려운 피난 생활 속에서 먹거리를 걱정하는 모습도 담겨 있고, 서로를 챙기는 임시정부 사람들의 모습도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독립된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돌아가신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도 볼 수 있습니다.

 <제시의 일기>는 제시의 성장 과정과 그들의 일상의 기록을 보는 재미가 있지만,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사료 중 하나입니다. 상해에 있던 임시정부가 중일전쟁 시기 피난을 다니던 당시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1938년부터 1946년까지 임시정부의 피난길과 함께 자란 제시의 일기는 곧 임시정부가 걸었던 역사의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제시는 몰랐겠지만, 제시의 성장과정이 임시정부가 걸었던 독립운동 역사의 순간이었고, 지금 우리가 그 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기록이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았던 한 이름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를 알려주는 책 <제시의 일기>였습니다.

운명에 맞서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이번에 소개할 사람의 이름은 박문자입니다. 이 이름을 보자마자 알아챈 분들도 있겠지만, 아마도 긴가민가하는 분들이 더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본명을 듣는다면 바로 ‘아!’ 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사람, 박문자의 본명은 가네코 후미코. 독립운동가 박열의 연인이자 아내, 그리고 영화 <박열>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특히, 박열 열사와 함께 찍은 법정 사진은 무척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박문자 선생을 단순히 박열의 연인이나 아내 정도로만 알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박문자(가네코 후미코) 선생은 독립운동가를 변호했던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와 함께 대한민국 건국 훈장을 받은 단, 두 명의 일본인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박열 열사와 함께 천황 암살을 계획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복역 중 23세의 나이로 의문사했습니다.

 오늘은 박문자 선생이 죽기 전, 감옥에 있는 동안 자신의 삶을 담아 쓴 옥중수기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2) 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책에는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박문자 선생의 유년기부터 연인 박열을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가네코 후미코(박문자)는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부모의 계속된 불륜, 이혼, 재혼으로 부모에게는 버려지다시피 했고, 가정폭력에도 시달렸습니다. 심지어 부모가 호적에 올리지 않아서 제대로 된 정식교육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했고, 어떻게든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조선에 있는 할머니와 고모의 집에 식모로 가게 됩니다. (데려갈 때는 교육도 해주고 등등 좋은 말들을 하는데 다 거짓말이 
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조선에서의 삶은 일본에서의 삶보다 더 비참했습니다. 열 살 남짓된 아이에게 가해진 학대와 폭력은 글로 봐도 너무나 끔직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온 가네코 후미코는 일을 하면서도 학교를 다니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합니다. 그러던 중 조선인 유학생들과 교류를 하게 되고, 어느 날 박열의 시 ‘개새끼’를 보고 크게 감명을 받습니다. 그렇게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에 나오는 박문자 선생의 삶은 글로만 봐도 무척이나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한번은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 묻힌 한 사람. 그 자체로 한 사람의 투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사람. 너무나 어린 나이에 안타깝게 떠나 버린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이름, 박문자 선생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수많은 영웅과 위인들이 있겠지만, 올해는 이 두 권의 책과 함께 새로운 역사 속 이야기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1) 김현주, 「제시의 일기」, 우리나비, 2019, p33.

2)  다른 출판사에서는 「나는 나」라는 제목으로도 출판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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