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 죄지으면 벌을 받고, 자격이 없으면 물러나라

관리자
발행일 2023.04.04. 조회수 34252
칼럼

[월간경실련 2023년 3,4월호] [시사포커스(3)]

죄지으면 벌을 받고, 자격이 없으면 물러나라


- 결승선 앞 범죄의사 퇴출법, 의사특혜 고치러 완주해야 -


가민석 사회정책국 간사


생명과 안전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다. 이 가치를 다루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임무와 책임은 어느 누구보다 막중하다.


병을 고쳐 사람을 살리는 자를 의사라고 한다. 병을 고친다고 아무나 의사라고 할 수는 없는데,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의료행위의 독점권을 부여 받은 사람만 명확히 의사라 칭할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과 안전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보니, 마땅히 그에 맞는 고도의 기술과 월등한 윤리의식이 요구된다.


범죄의사 퇴출법 : 자격이 없으면 물러나라

누군가를 살리는 사람이 도리어 사람을 해쳤다면 그 사람은 의사의 자격이 있는가. 뛰어난 의료기술과 높은 윤리의식이 필요한 직업이 의사라면 그런 사람은 의사의 자격이 없으며 의료현장에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지금까지 마취된 환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도 병원 이름을 바꿔가며 의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현행 의료법으로는 면허대여나 허위진단서 작성과 같은 의료행위와 연관된 잘못을 저지른 경우만 면허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면허취소법, 중범죄의사면허제한법 등 다양하게 불리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결승선 앞에 와있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는 일정 기간 환자 앞에 서지 못한다. 금고형이란 사형, 징역형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로 금고 이상의 형은 살인, 성범죄 등 죄질이 무거운 중범죄에 적용되는 양형을 의미한다. 이 정도 죄를 저질렀다면 최대 5년간 의사면허가 취소되고 이후 재교부받아야 다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


의사특혜 바로 잡기, 난관이 남았다

범죄의사 퇴출법은 21년 2월 여야합의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법사위에서 심사를 하고 나면 본회의로 올라가 최종 개정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법사위의 늪에 빠져 2년이 흘렀다. 국회법에 따르면 법사위에서 이렇게 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 상임위가 직회부, 즉 본회의로 직접 법안을 올릴지 결정할 수 있다. 범죄의사퇴출법은 올해 초 그렇게 법사위를 벗어났다.


상임위든 법사위든 ‘위헌이다, 아니다, 의료현장이 붕괴된다, 다른 전문직은 이미 적용하고 있는 내용이다’ 등 법리 논쟁이 치열하게 이뤄졌지만, 무엇보다 이해관계자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의료계는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결사항전하고 있고, 실제로 본회의까지 와서 좌초되거나 개악될 우려도 상당히 커 보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금고형 이상의 모든 범죄가 아니라 ‘살인’과 같은 특정 죄목에만 적용하도록 법안을 축소시킨다는 의혹도 있다.


더 높은 윤리의식과 그에 맞는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변호사, 공인회계사, 국회의원 등은 직을 상실한다. 그 정도 죄를 지었다면 사회적 책임이 필요한 전문 직종을 수행할 자격이 안 된다는 뜻이다. 의사는 어떠한가. 생명과 안전을 손에 쥐고 있는 그들은 오히려 더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자격이 없으면 물러나야 한다.


의료계는 의료행위 특성상 불가피한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며, 과도한 제한으로 인해 의료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개정안에서 의료행위 중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범한 경우는 면허를 취소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극소수의 중범죄자를 내쫓는다고 한 산업이 붕괴한다는 것은 결코 납득할 수 없다.


특히 여론을 호도하는 주장이 의료업무와 상관없는 일반적인 교통사고로도 의사면허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살짝 부딪히는 접촉사고를 연상시키려나 본데, 교통사고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다는 것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 교통사고로 형사 처벌을 받는다는 것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두고 도망가거나(뺑소니), 과속하거나, 무면허 혹은 음주상태로 운전하는 등
중대사유에 속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과속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에게 금고형이 선고된 바 있다. 이렇게 안일한 윤리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맡길 수는 없다.


진료는 의사에게, 정책결정은 국민에게

앞서 말한 의료법과 함께 간호법(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별도로 규정하는 제정법) 등 의료계가 반대하는 다수 법안이 본회의로 향하자 엄한 데서 먹구름이 끼기도 했다. 의료공백 및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의대정원 확대나 국회가 처리해야 할 공공의대설치법 제정 등에 의료계가 대대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를 둘러싼 정치 공방은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가 통하지 않는다. 중범죄 의사를 의료현장에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의 논쟁 역시 비단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의료계가 이해관계자인 다른 영역까지 손길을 뻗친다.


중요한 건 정책결정권자의 결연한 태도다. 의사의 결격사유 규정, 의사확충, 공공인프라 확충 등 다양한 의료정책 현안들이 의료기득권의 압력에 흔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익집단이야 구성원들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 내는 것이 존재 목적일텐데, 국가정책을 사익에 휘둘려 결정하는 집단이라면 그 존재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 이해관계자들을 포함해 기득권은 아니지만, 부조리로 피해 입는 국민까지 아우르는 장기적이고 공익적인 정책 결정이 이뤄지길 희망한다.


첨부파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