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하듯 경실련도 변해야 합니다

관리자
발행일 2009.07.21. 조회수 679
칼럼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오늘날 당면한 시민과의 관계는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더욱 중요’



권태준| 3대 경실련 공동대표
 


 


‘환경과 개발’의 조화를 추구하는 경실련 환경개발센터로 참여
 
권태준|공동대표 하기 전에 환경개발 센터일로 90년 초쯤 먼저 참여했다. 이사장이란 감투로 시작을 했는데, 분야가 대학분야랑 비슷하기도 했고, 변교수의 강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위정희|당시에 경실련 환경개발센터는 경실련의 '환경운동'이라는 점에서 어떤 의미를 두었는지?
권태준|그 당시 환경이란 이름 붙인 시민단체로는 환경운동연합밖에 없었기에 유재현박사가 시작한  경실련에서의 환경운동이 나름 의미가 있었는데, 그 당시 환경운동은 ‘사회적으로 반(反) 개발 운동이다’ 였는데, 당시 경실련은 '개발과 환경' 두 가지를 적절히 조화 시키는 적극적인 전략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해서 주로 연구사업을 했다. 환경적 측면에서 지속가능한(sustainable development)사회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고, 운동이기보다는 정책연구를 생각했었던 것 같다.



시민을 위해 희생적으로 일하는 모습에 인간적인 끌림으로 적극활동
 
권태준|경실련은 처음에 주택문제로 출발 했다. 시민단체로서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그렇게 크게 발전한 건 경실련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여러 가지 기대가 경실련에 한꺼번에 집중되었다. 시대상황하고도 관련이 있었고, 87년 이후 성숙한 사회의식은 다양한 시민적 요구들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이러한 다양한 요구들이 경실련으로 집중이 되었다.

위정희|시민운동, 지금도 명확하게 활동영역을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그때는 그 개념자체가 더 낯설었을 것 같다.

권태준|한국사회에서 그때 시민운동, 시민조직이란 개념이 지금에 비하면 훨씬 적었다.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시민운동 이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다라는 이해만 있었지, 일반 시민들은 ‘그게 대체 뭐 하는 건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있을 때 그 이해당사자들이 관심을 표시하지만 환경 이외에는 시민들이 스스로 조직해서 무엇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을 못했다. 내가 처음에 경실련에 참여했을 때, 뭘 하든지는 상관없이 사무국의 여러 사람들이 희생적으로 열심히 한다는 자체가 참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일종의 인간적인 끌림이었다. 대개 학생운동 하던 사람들 일부는 정계로 가고, 일부는 계속 지하에서 투쟁하고, 나머지가 경실련과 같은 시민단체 활동가가 되었는데, 그것이 나는 참 좋은 선택이라고 봤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시민을 위해서 적극적인 일을 하려는 모습을 보고 도와주고 싶어서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 경실련 활동 내용 자체는 잘 몰랐다. (웃음)
 
경실련, 자연발생적이었다?
 
이대영|경실련 운동이라는 게 아까 말씀하셨듯이 상근자들은 주로 과거에 학생 운동했던 사람들 즉, 운동권 출신이었다. 그보다 더 신선했던 것은 당시 지식인들(변호사, 교수)이 시민들을 위해서 조직을 만들고 정부나 기업이 아닌 정말 새로운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어 내는 집단을 만들어냈던 것이 사회적으로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권태준|그 때 사회분위기를 봐서는 가상한 일이었다. 실용적인 학문을 하는 사람들 중에 2/3는 80년대 말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시민단체나 시민조직과 함께 시작했다. 또 그 힘이 경실련 초기에 상당히 보탬이 되었다. 그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무렵하고 경실련이 만들어 진 게 일치하기 때문에 자연발생적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제일 큰 공헌은 그 사람들이 했다.


 



경실련 20년,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
 
위정희| 초창기에 경실련을 만들었을 때는 지하도 아닌 운동권도 아닌 분들이 왔지만 대중을 위한 것이 가장 의미가 있었다. 시민운동의 초심을 갖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긴 한데, 시민사회도 어느 한 편에 서야하는 상황에서 고민할 때, 저희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하곤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신지?
권태준|최근 한국의 정치, 경제 정책 변화에 대한 내용으로 책 <한국의 세기 뛰어넘기>을 썼다. 그 중 한 부분이 시민운동과 시민단체에 관한 내용이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 조직규범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민주주의 사회에 시민운동은 항상 있었다. 한국사회는 경실련 창립한 20년 사이에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고 동시에 시민생활도 발전했으며 이에 따라 시민의식도 많은 성숙이 있었다.
그런데 경실련 창립 당시의 초심으로 경실련이 돌아간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지난 반세기동안 이 나라 '시민사회'의 가장 큰 대중적이고 획기적인 변화 사실은 '사적 고용(雇傭)사회'로의 변화이다. 특히 산업화, 도시화의 거대한 변화를 세계 여느 국가보다 빠르게 겪은 한국 시장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빨리 변화했고 그 안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주체들의 의식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외부상황은 변화하는데 경실련은 기존 운동방식, 운동내용, 활동방식 등을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한다면 오히려 시대에 뒤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오늘날 당면한 시민과의 관계는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제는 경실련 내부 상근자, 임원들이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시민이 보는 우리(경실련)는 무엇인가?’, ‘ 우리가 무엇을 해야 시민들에게 더 유용할까?’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시민운동, ‘먹고 사는 문제’에서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문제’로
 
권태준|본래 시민운동의 원형은 유럽이나 미국에서부터 발전해왔는데 한국의 시민운동과 차이가 있다.
유럽에서 시민운동의 개념은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의식을 바꾸는 것’이 시민운동의 목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들어 민주화와 시장의 자율성이 높아짐에 따라 먹고 사는 문제는 이제 시민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고 시민들은 다른 것을 원했다.
 
중세 유럽의 경우 농촌에서 소작농 하던 사람과 노예 농 하던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서 도시로 무작정 상경 했다. 그때부터 자유노동이 생겨났다. 타인의 지시에 하는 일은 하기 싫다고 도망 나온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한 것이다. 사적 고용사회의 내실이 생기려면 한 편인 '자본소유의 자유'를 누리는 쪽의 새로운 고용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의 노력과 또 다른 한 편인 노동의 자유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이것이 시민사회 형성의 기초이다. 예전에는 생계문제 때문에 시민들은 정부만 바라보았는데, 이제는 ‘먹고 싶을 때 먹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겠다’고 요구한다. 이것은 자신의 자율성을 찾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돈을 자유롭게 쓰고자 하는 자본가 집단과 노동력을 자유롭게 선택하고자 하는 노동자집단 사이에서 서로 흥정과 협상이 생기는 것이 그 현상이라 볼 수 있다.
 
한국도 자신이 생산활동을 통해 얻은 대가로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만 고민하는 시민은 과거에 비해 많지 않다.  과거에 비해 ‘생계’에 대해 정부에 기대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줄고 있다. 이제 시민들은 ‘내 한 평생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고민을 정부의 정책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예로 한국의 저소득층 가정에서도 부모의 가장 큰 관심사와 기대는 ‘자녀의 영어교육’ 이다.
자녀만큼은 부모보다 생계의 자율과 선택의 폭이 넓어지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국 시민사회도 점점 생계의 자율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상황에 ‘시민운동’을 하는 단체라고 해서 그것이 시민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한국에는 1950년 이후에 좌파가 있어서 우파가 발생했는데, 좌파의 명확한 이념은 있지만 우파의 명확한 이념은 없다.  20년 전만해도 거대담론이 한국에서는 정치적 억압에 대한 항거, 즉 민주화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이념적으로 좌였더라도 슬로건은 ‘우’였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적 억압 때문에 정치인을 제외하고는 인신을 해치는 정치적 억압은 사라졌다. 거대담론이 민주화만을 가지고 보통 사람들에게 감동을 일으킬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경실련은 정부와의 관계 즉, 시민사회와 정부 사이에서 서로의 요구를 전해주는 다리역할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예로 서민주택 영구임대주택에서도 행정서비스의 전달체계가 잘 되고 있는지, 과연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이 받고 있는 것인지, 누군가 특혜를 받고 있지 않은지 … 일반 시민들은 스스로 조직을 만들지 못하고 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한 시민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이런 시민들을 조직화하게 만들어주는 단체가 경실련의 역할인 것이다.
 
현재 시민단체는 ‘전환기’,  과거의 ‘영광’에 연연하지 마라
 
권태준|서양의 한 사회학자가 말하길, 운동 초기에 시민운동 내지 시민조직을 활성화하고 조직하는 사람들을 초 개인(super individual)이라고 한다. 나는 보통 개인이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개인들의 모임이지만, 혼자가 아니고 여럿이 모여서 모임의 힘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시민조직이다. 어느 사회나 시민조직은 개인들이 모여서 되지는 않는다. 한 개인이 정파를 초월하고 사적 이익을 초월해서 활동한다. 이것이 초 개인 이다. 경실련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도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예전에는 경실련이 초 개인 위치에 있었다. 현재는 시민단체나 시민조직이 하나의 전환기에 와있다. 지금을 서글퍼 하지말고 아주 냉정하게 지금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이 시민단체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해보고, 경실련이 거기에 앞장 서 주었으면 좋겠다. 이미 경실련은 뿌리도 있고, 사람들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 전보다는 일하기가 훨씬 어려울 것이다. 예전에는 성명 하나만 발표해도 모두 집중해주었고, 항상 전쟁터 같았다. 그때는 그게 흥분스러웠을 것이다. 그것이 일종의 민주화 투쟁이었기 때문에 그게 보람 이었을 것이다. 경실련이 잘 못했다기 보다는 시대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정부에 구체적인 대안을 내고 하려면 더 분화 하는 수밖에 없다. 상근자는 별로 많지 않고 일종의 활동가들을 한 두 사람씩 배치해서 가령 분기별로 가능하면 한 달에 한 번씩 전체가 모여서 활동가들의 애로사항을 상의하는 것이다. 일종의 옛날 새마을 조직과 비슷한데, 그보다는 조금 더 느슨한 식으로 나가는 것이다.
위정희|예전이 좋았다.(웃음)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이 풀뿌리와 가까워지게 되면
우리 사이에서 정치적 리더가 나올 수 있게 된다.


시민 밀착형 조직에서 시민으로부터 신망을 얻어서 정치로 나아가는 것은 아주 좋은 현상이다.




현재는 한국민주화과정의 또 하나의 단계
 
이대영|교수님 만나 뵙고 나니까 저희도 실제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실제로 많은 생각들을 하고는 있는데, 조직의 관성이라는 부분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명쾌하게 정리가 잘 안 되어 있던 부분이 많이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권태준|좀 숙고해보자는 분위기가 없으면 조직이 크지가 않는다. 흘러가긴 하는데 변하지는 않는다. 당장 숙고하기 어려우면 일부러 숙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현재는 한국 민주화 과정의 또 하나의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옛날에 박정희 전대통령 시대에서 이어져온 민주화시대는 박정희시대를 비판하는 민주화시대고, 노무현-이명박 정권은 남을 비판하면서 자신을 확인하는 것은 없어진 시대이다. 김대중 전대통령 시절때까지 정치적민주화는 거의 다됐고, 적극적인 이데올로기를 가지거나 해야 하는데 그것은 항상 너무 어렵고, 지금은 주로 내부 분열이 많아 여러 갈래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친노, 반노, 급진좌파, 중도우파, 수구보수 이런 식으로 내부분열이 많이 이루어지는 때이다.
정치적 리더십은 점점 없어진다. 정치적으로 시민입장에서 볼 때는 모호한, 애매한 시대이다. 누가 무엇을 주장하는가? 저 사람은 어느 파인가?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혼란스럽다. 박정희 전대통령 때까지 반식민지 정치시대였고, 김영삼, 김대중 전대통령 때부터 독립국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대이다. 이 사람들은 반일 정치는 졸업을 한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독립국인 대한민국에서 자란 것 이다.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세대는 둘 다 어릴 때 정치무대에서 자라지 않았다. 중앙정치에서는 자기 기반이 없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정치적 하위세력이 없었다. 즉, 리더십의 기반자체가 불안한, 오히려 시민사회가 활발해지는 시대인 것이다.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이 풀뿌리와 가까워지게 되면 우리 사이에서 정치적 리더가 나올 수 있게 된다. 초 개인 시대에는  그 개인이 정부에서 감투를 쓰거나 정계로 나가는 것을 막을 필요가 없다. 시민과 밀착한 조직운동을 해 나가는 사람이 시민으로부터 신망을 얻어서 정치로 나아가는 것은 아주 좋은 현상이다. 
 



변화해가는시대… 시민단체에 대한 기대도 변한다
 
위정희|경실련이 논란에 휩싸이는 것들 중에 두 가지가 비 정파성과 초심이다. 정파 성 논란은 늘 때때로 나오는 것이다.
권태준|누구의 편을 든다. 이것이 의도적이지 않으면 그것을 기피할 필요는 없다. 초기 시민운동 단체의 간사나 상임위원들이 스스로 초 개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즉, 자신들이 정파 위에 있다고 생각 한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상당히 교만한 생각이다. 비 민주적 인 거 아닌가? (웃음)
 
시대상이 변해가는 것만은 틀림없다. 시민운동단체를 둘러싼 기대가 변한다는 것도 틀림없다. 아직까지는 사회적 이슈가 있으면 물어보고 그에 대한 입장 표명을 원하고, 입장 표명만 하더라도 경실련이란 이름으로 어느 정도 과거의 영광을 유지해 갈 수 있고, 하지만 그것이 그리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시대상에 맞게 변해간다는 것도 굉장한 조직력과 그에 따른 자원이 필요하고, 사람들의 헌신이 필요하고 그 모든 것들이 쉽지는 않다. 금방 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수 밖에 없다.
경실련이 다른 단체보다 이름 가치에 의존하는 상태는 빨리 벗어났다. 그만큼 경실련이 다른 단체에 비해서는 조직 자체의 영속성은 상당히 쌓았다고 볼 수 있다.
 


‘민주화는 movement에 지나지 않다’
 
위정희|이번에 사회적으로 전직 대통령의 자살 등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세세한 부분을 따지기 앞서 사실 좀 혼돈스러운 부분이 있다. 일종의 민주화라는 개념이 잘 안되지 않는가. 라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권태준|민주화라는 것은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다. 일부는 완전한 의미의 민주화가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사람들의 일상에서는 절실히 느껴지지 않지만, 한국사회에서도 일부 학자들은 ‘형식적인 민주화에 만족할 수 없다, 실질적인 민주화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사회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절차적인, 제도적인 민주화, 대의정치 안에서 선거로 사람을 뽑고 한국과 같은 경우도 5년 단위제로 투표를 통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게 되어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인 민주화는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서 조금 더 갈 수 도 있고 조금 늦춰질 수 도 있다. 정당의 차이이지 어느 한쪽을 민주화의 상징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민주화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항상 정치적인 논란의 대상이다. 서양의 정치학자 표현에 의하면 ‘민주화는 movement에 지나지 않다.’ 자꾸 변천해 가는 것이 민주화이고, 하나의 모델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즉, 그 자체가 항상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약력>
권태준(權泰埈) - 1937년생.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했고, 미국 예일대학과 SMU에서 각각 법학석사, 그리고 뉴욕 주립대(버팔로)에서 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법대, 행정대학원 교수를 거쳐 환경대학원 교수로서 동 대학원 원장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동 환경대학원 교수로 정년 퇴직한 뒤 현재 동 명예교수와 에코포럼 공동대표로 있다. 3대 경실련 공동대표도 지냈다.
 
취재 및 기사작성: 이혜경 자원활동가 | 편집: 노정화 커뮤니케이션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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