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동아시아 협력모델의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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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9.11.20. 조회수 387
칼럼

새로운 동아시아 협력모델의 구축


 



김종걸 (경실련 대외통상위원장)



2008년부터 2009년에 이어지는 글로벌 경제위기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게 한다. 경제운영의 기본목적이 성장과 안정, 그리고 사회적 공공성의 확보에 있다고 한다면 지금의 상황은 이 3가지 목적에서 모두 실패한 듯 보인다. 경제적 성장은 지구촌의 극히 일부분에 한정되고 있으며, 그나마도 작금의 경제위기로 크게 후퇴하고 있다. 60억 세계 인구 중 9억 가까운 인구가 영양실조에 시달리며, 그 수도 매년 400만 명 늘어난다. 환경, 의료, 식량, 식품, 노동의 위기 등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도의 공공성도 확보되지 않는다. 미국과 서구 중심의 패권, IMF,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 국제적 생산주역인 다국적기업 모두 지구촌의 성장과 안정, 그리고 사회적 공공성의 확보에 상당 정도 실패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여기서 잡아야 할 화두는 자본주의의 극복과 새로운 국제레짐의 구축이라는 점이다. 만약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문구가 그대로 ‘사회주의의 실현’이라는 식의 단순한 사고방식을 지양한다면, 적어도 현재의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의 파악,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인류사회의 노력에 대해서는 좀 더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의 ‘패권구조의 극복’이 단순한 ‘반미구호’로 폄하되지 않기 위해서도 새로운 지역질서의 미래상에 대한 재설계가 요구됨은 당연하다.


여기서 첫째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동아시아적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자본주의적으로 가장 발달한 한국과 일본은 기존의 ‘양극화성장’으로부터 ‘균형성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에 있어서 평등주의적 편향을 수정시키려는 노력과, 이미 충분히 양극화되어 있는 한국과 일본에서의 그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IMF환란 이후의 한국의 경제회복 과정은 경제사회적 양극화의 진행과정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하시모토 개혁 이후의 일본의 개혁방향에서도 마찬가지다. 양극화 성장의 결과 경제적 성과가 크게 개선되었다는 증거도 발견되지 않으며, 사회통합의 기본원칙들도 상당히 붕괴되고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의 안정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기존에 불평등과 양극화에 의해서 유지되던 성장노선을 평등과 균형에 입각한 발전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리고 평등과 균형이라는 이름하에 나타날 수 있는 일종의 ‘나눠먹기식’ 비효율구조를 효율적인 성장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논리고리와 제도디자인에 더욱 힘을 써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둘째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경제적, 사회적 공공성의 유지를 위해서 개별국가의 정책적 자율성이 확보되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세계화, 자유시장화 등의 담론들이 마치 천동설처럼 교조화되어 논의된다면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각 국민들이 안정적이며 잘 사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며, 세계화 ․ 자유시장화는 그러한 목적과 논리적 친화성을 가진 경우에 한해서 논의되는 방식이 적합하다. 특히 한 사회의 ‘공공성’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금융시스템의 안정, 환경(농업)의 보호, 의료시스템의 유지는 필수적이다. 안정된 금융시스템의 유지는 자본주의경제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공공재적 성격을 가진다. 국민의 환경적, 생명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농업을 일정정도 보호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국민들에게 안정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특히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는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다. 신약의 특허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복제약 시판을 금지시키는 것(허가-특허연계)은 오바마의 미국 민주당, 그리고 유럽의회에서도 개정 또는 불인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향후 지향해야 할 경제 모델이 복지국가지향의 균형성장, 사회적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정부 정책의 자율성 유지에 있다고 한다면, 동아시아에서의 협력모델도 당연히 이러한 성격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이 때 우리가 삼아야 할 ‘반면교사’의 전형이 바로 한미 FTA다. 주지하듯이 한미 FTA는 세계적으로도 지극히 ‘예외적’인 형태의 협정이었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공공성’과 정책의 ‘자율성’ 유지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상당히 곤란한 선택이었다. 금융협상에서는 CDS(신용부도스와프)와 같은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풀어놓았으며, 금융세이프가드도 상당히 제한적으로 운영된다. 농업에 있어서의 관세화 예외품목은 전체 1,531개 품목 중 쌀 및 쌀 관련제품 16개에 한정된다. 약품협상에서도 허가-특허연계와 같은 독소조항들이 다 들어가 있다. 이와 함께 투자자정부제소권(ISD)과 같은 정부 정책의 자율성이 크게 손상되는 제도도 들어가 있다.


 


따라서 향후 지향해야 할 동아시아에서의 협력모델은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의 전형인 한미FTA와는 다른 형태로 디자인되어야만 한다. 경제사회적 ‘공공성’의 중요성을 생각했을 경우 금융, 농업, 약품, 투자(ISD관련) 등과 같은 분야에서의 개방수준이 상당히 ‘낮은’ 단계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 이것과 함께, 금융위기 대책으로서의 ‘동아시아통화기금’,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동아시아환경청’, 낙후지역에 대한 개발원조를 담당하는 ‘동아시아발전기금’ 등은 동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필요한 조치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칭 ‘동아시아 경제사회연대협정'(East Asian Socio-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이라는 형태로 묶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나 고무적인 것은 1997년의 동아시아 금융위기, 2008~9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동아시아에서의 금융통화협력이 구체화되었다는 점이다. 향후 치앙마이 다자기금이 역내의 독립적인 통화금융협력체계로 발전할지는 쉽지만은 않은 과제이다. 그러나 적어도 유의미한 액수의, 상대적으로 IMF로부터 자율적인 역내 통화금융 협력체계를 구축했다는 점, 그리고 역내의 그 어떠한 국가도 이 기구를 지배할 수 없는 ‘황금률’의 지배구조를 형성시켰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따라서 앞으로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은 치앙마이 다자기금과 같은 성공모델을 에너지, 농업, 교육, 물류, 환경 등과 같은 분야로 더욱 확대시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축적된 협력의 경험을 기반으로 ‘동아시아 경제사회연대협정’을 실현시켜 가는 것, 이것이 바로 당면한 한국의 과제가 아닌가 한다.


 


 


<약력>
전 경실련 시민공정거래위원회
전 경실련 한미FTA검증단
현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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