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성장이 우리 모두의 살 길

관리자
발행일 2004.01.19. 조회수 605
칼럼

   金 成 勳 (중앙대 교수, 경실련 공동대표)




지난 세기 우리 지구촌 경제가 산업화시대를 통과해오면서 두 여성학자의 연구 노작으로 큰 변혁을 경험하게 된다. “봄이 왔다. 꽃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새들은 노래하지 않는 침묵의 봄이 왔다”고 하며, 농약 폐해와 환경생태계 파괴 현상을 경고한 레이첼 카아슨(R. Carson)이 그 한 사람이다. 또 한사람은 세계 각국이 다투어 경제개발정책을 무분별하게 추구한 결과 그 부작용으로서 혹심한 빈부격차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그리고 생태계 파괴와 자원고갈 및 환경오염을 불러 온 것을 경고한 조안 로빈슨(J.V. Robinson) 여사이다. 이들이 경고한대로 산업사회의 범세계적 경제성과는 도처에서 시장실패, 정책실패, 그리고 환경파괴와 세계화의 어두운 그림자들로 드리워졌다. 지구촌의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에 한계를 보인 것이다.


 


고속압축 경제성장은 지난 세기말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 IMF 환란을 불러 들였고 극심한 빈부격차와 환경생태계 파괴등 경제사회발전의 지속성에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었다. 오늘날 우리 경제가 외형상으로는 세계 140여 국가 중 GNP로는 13위, 무역액으로는 12위라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본 전반적인 삶의 질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나라별 환경 지속가능성 지수는 부끄럽게도 우리나라가 세계 136위(2002년)로 최하위권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투명기구가 발표한 국가투명도 지수는 매해 떨어져 이제는 133개국 중 50위이다. 


 


이렇듯 우리경제가 8년 전 1인당 1만달러 소득을 달성한 이래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이면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지역간 계층간 빈부격차와 사회갈등, 게다가 불가역적(不可逆的)인 환경생태계 파괴현상으로 먹을 음식(식량자급율 세계 최하위권인 28%), 마실 물 (오염도 20-40%), 숨쉬는 공기(서울의 대기오염도 세계 제1위), 국가경영 전반의 부정부패   현상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 말 크리스마스날(12.25)의 서울 대기오염도는 미세먼지 파티클 수준이 300대를 오르내렸다. 선진국 주요도시의 대기오염도가 대개 20-30이며 인체 유해 허용한도가 150 수준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300대는 거의 ‘살인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유수한 환경단체와 언론들은 이렇다할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재작년까지 세계 제1위의 대기오염도시로 악명이 높았던 멕시코시티가 민관이 함께 오염 줄이기에 노력한 결과 이제 서울 다음의 2위로 내려갔다고 좋아하고 자랑하고 있는 모습과는 너무 대조된다. 일찍이 레이첼 카아슨 여사가 경고했던 “침묵의 봄”이 우리나라에 찾아오고 있는데도 모두들 무감각하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들어 뜬금없이 ‘2만달러 소득’ 캠페인이 튀어 나왔다.


1인당 GNP를 두배로 늘리기 위해선 얼마나 더 많은 사회적 경제적 생태적 갈등을 겪어야 할지, 또 21세기 세계 인류의 화두인 삶의 질 향상과 ‘지속가능성’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도무지 그 실마리를 종잡을 수 없는 구호들 뿐이다. 갑작스레 IMF 경제위기를 맞이했을 때 DJ 정부는 대안경제시스템으로서 지식기반사회의 신경제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개혁․개방정책을 과감히 추진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유수의 정보기술(IT)강국으로 자리 잡았고 IMF 환란극복을 비교적 단기간에 이룩할 수 있었다고는 하나, 중산층의 위축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심화에 따른 실직자와 신 빈곤층을 양산했다. 그 처방으로서 1999년부터 추진된 “생산적 복지”정책은 일정 정도 빈부 양극화현상 감소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요컨대, 디지털 경제의 보편화가 개개인 간의 존엄성, 민주주의의 다양화, 쌍방(two-way) 교류에 의한 의사결정이라는 의식 변화를 가져다 준 반면, 신자유주의 일변도의 시장정책은 계층간 지역간 격차 등 각종 사회갈등과 환경의 지속가능성에 심대한 위협을 불러들였다.


 


사안의 심각성이 이러한데도 우리 경제학계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화신이 되어 구관조(九官鳥)처럼 시장경제, 무역자유화, 세계화의 좋은 측면만을 되풀이하여 제창하고 있다. 시장경제냐, 반시장경제냐의 양자택일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애담 스미스류의 시장경제 예정조화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생태학적 인간의 삶의 질 문제를 놓치고 있다. 그 결과가 다름아닌 유독 우리나라에 만연한 시장실패현상이며 경제정의(正義), 사회정의, 환경정의의 실종이다. 왜 (재벌)기업을 성토하는 사회가 유독 우리나라 뿐이며, 각종 세계무역협상에 임해 심장에 비수를 꽂는 농민이 왜 유독 한국뿐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원인진단을 우리 학계는 해내지 못하고 우리 사회지도층 역시 그 이유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정부정책의 결과 혜택 받는 계층이 따로 있고 피해보는 계층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J.R.힉스의 ‘보상의 원칙(the Compensation Principle)'과 J. 롤스의 사회적 경제적 '최약자 보호원칙'에 따라 정책과 제도 양면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조건, 즉 소득기회와 복지 및 쾌적한 삶을 형평성 있게 충족시키는데 진력해 왔다. 이 같은 원칙에 따라 부단히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보완 개선하고 혁신해온 결과, 이른바 만민이 평등한 무산계급 세상을 목표로 하던 사회주의에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유독 우리 학계와 경제계는 이러한 원칙과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지식기반사회의 디지털 경제는 0(영)과 1(일) 사이에 0.1, 0.01  등 수백 수천의 숫자가 있음을 인정한다.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사이에도 수백 수천의 제3의 길이 있으며, 무역자유화와 보호주의 양극 사이에도 수백, 수천의 상생의 방도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0과 1을 다양하게 결합 배열할 경우 수천 수만의 윈-윈 전략을 창출할 수 있다. 경제성장을 도모하면서 경제정의를 북돋우며, 사회적 환경적 정의를 경제정책에 반영하는 지속가능한 사회의 건설이야말로 21세기 디지털시대의 윈-윈 방식이다. 즉, 경제와 환경, 문명과 생태계, 인간과 자연, 많이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간의 바람직한 공존공영의 길을 찾아 선진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오래전부터 합리적경영․사회적공헌․환경생태계의 보전 목표를 통합경영하는 지속가능한 성장전략을 실천하고 있다. 미국의 인텔과 제너럴 모터스, 프랑스의 르노, 네델란드의 필립스, 일본의 소니․도시바 등 31개국 341개 기업이 유엔환경계획(UNEP)의 권고에 따라 지속가능성보고서(GRI)를 재무제표 보고와 함께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삼성SDI와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이 일부 시작했거나 준비중이나 아직 외부 전문기관의 객관적인 감사를 받아 발표하는 세계 수준의 통합경영 단계는 아직 아니다.


 


새해 새 경영전략을 준비하는 정부와 기업, 특히 2만달러 소득시대를 열어가자고 하는 노무현 정부는 선진국들처럼 먼저 재정과 환경과 삶의 질 문제를 통합계측하는 그린GNP 통합국민회계방식을 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책의 수혜자와 피해자를 골고루 배려하며 후손들의 삶의 질도 함께 고려하는 그러한 국가목표와 폭이 넓은 정책을 구사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시대는 거시적 문제보다는 미시적 접근, 수익적 해법(효율․이윤)에 더하여 환경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접근방법등 경제․사회․환경 정의목표를 통합하여 실천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절체절명의 과제임을 깨달아야 한다. (200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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