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개그콘서트를 통해 본 웃음의 사회학과 실험정신

관리자
발행일 2000.02.22. 조회수 2313
사회

Ⅰ .들어가며


99년 방송가 최대의 히트상품인 개그콘서트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과거를 답습하지 않는 발상의 전환으로 세간에 화제가 된바 있다.


최근 TV방송이 개인의 인격을 담보로 신체적, 심리적, 가학적 성격을 강화하여 이를 포장하고 있는 웃음의 성격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고 오락프로그램의 지나친 과장과 인위적인 연출이 시청자들의 기호에 부합되지 않으면서 참신하고 새로운 오락프로그램의 탄생을 갈망해 왔던 즈음, 개그콘서트라는 프로와의 만남은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타인의 고통이나 불행이 즐거움이 되는 잔인한 심리를 지니지 않아도 얼마든지 웃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은 본래의 웃음 찾기를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신인개그맨들의 신선함과 아이디어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았던 개그콘서트가 방송초기에 비해 웃음의 내용과 수준이  약화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본 회에서는 이 프로그램의 의의와 개선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면서 <개그콘서트>가 출발당시의 신선하고 탁월했던 기획력을 잃지 않고 앞으로도 바람직하고 건강한 오락프로그램의 대명사가 되어주길 진심으로 기대하고자 한다.


Ⅱ. 분석대상 및 분석기간


1. 분석대상 : 개그콘서트(KBS 2TV 토요일 오후 6:50 - 7:50)
2.  분석기간 : 2000년 1월 15일 - 2월 5일(18회 - 21회)


Ⅲ.  분석내용


1. 새로운 형식으로 새롭게 태어난 코미디


기존의 정통 콩트식 코미디가 소재의 빈곤과 지나친 과장, 작위적인 연출 때문에 ‘저질’이라는 비난과 함께 시청자로부터 외면당한 이후 코믹 버라이어티쇼가 오락프로그램의 대명사로 불려졌다. 소수의 스타급 개그맨들이 버라이어티쇼와 토크쇼로 자리를 옮기고 시트콤의 시대가 열리는 듯 활개를 치고 있을 무렵, 코미디는 존폐자체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청자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 이것이 관건이 되었다.


개그콘서트는 기존의 코미디 장르와는 차별화 된 새로운 형식으로 그간 침체를 거듭해 온 코미디계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코미디가 새롭게 태어나는데 일조 해 왔다. 고비용 저 효율의 콩트 식 코미디에서 벗어나 콘서트라는 형식을 코미디에 도입시키고 춤과 노래 등의 다양한 장르와의 결합으로 관객과의 새로운 만남을 모색하여 코미디의 저변확대에 기여하게 되었다. 또한 무대 공연 식의 진행으로 관객과 시청자와의 일체감을 강화시키고 현장감이 주는 사실성으로 콘서트 공연은 뜨거운 열기를 지속시킬 수 있었다.


많은 방송 프로그램들이 내용으로 승부하기보다는 소수 스타의 인기에 의존하거나 화려한 장면과 분위기를 연출하는 고비용 전략으로 시선을 고정시키는데 보다 역점을 두고 있는데 반해, 개그 콘서트는 적은 예산과 미숙하지만 신선한 신인얼굴을 데뷔시킴으로써 그들의 잠재력을 이끌어주고, 신인 연기자들의 가능성을 열어주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개그콘서트는 고비용과 스타급 연예인만이 프로그램을 살릴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극복시킨 좋은 사례이다. 누가 인기가 있고 없는지의 선택 이전에 각 연기자들을 어떠한 그릇에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연기자 스스로에게 뿐만 아니라, 방송을 보는 시청자에게도 한층 진일보한 의식과 자세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아이디어와 실험정신으로 승부!


개그콘서트는 철저한 아이디어와 실험 정신으로 승부한다. 프로그램의 형식에서부터 멤버구성, 예산규모 등 모든 것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혀 새로운 창조작업은 그 자체로도 의미를 갖기에 충분하다.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구조화하고 연습의 연습을 거쳐 무대 위에 올려내기까지 이 프로그램의 강점은 팀웍이다. 서로를 하나의 공동운명체로 여기고 서로가 서로에게 견제와 경쟁의 대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격려와 위로의 대상이 되고 서로를 발전시키는 관계로 가고 있다. 주인공을 위한 들러리가 아니라,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또 모두가 들러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오늘의 방송이 몇몇 선택된 소수의 연예인만이 채널을 넘나들며 종횡무진하고 시청자들은 비슷한 프로그램의 비슷한 얼굴을 마주 대하며 진부함을 느끼고 결국 스타급 연예인 스스로의 연기생명까지도 위협받으면서 유사한 사람과 프로그램만을 재생산하고 있다.  필연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개인주의적 경향이 팽배한 연예인 구조 속에서 개그콘서트가 팀웍을 중시하고 신인들의 재능과 끼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그들의 스타성을 만들어 주었다는 점은 방송계에 남다른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회를 만들어 주고 스스로도 만들 수 있고 자신의 장기를 무대 위에 올릴 수 있는 열려진 구조, 그 속에서 연기자들은 자신의 날개를 맘껏 펼칠 수 있을 것이다.


3. 소재와 내용에 대한 평가


자연스럽지 못한 상황 연출로 결과  지워진 웃음이 과연 건강한 웃음일 수 있을까?


개그콘서트의 강점은 기존의 오락프로그램들과의 차별화로 건강한 웃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개그콘서트에서는 웃음의 내용보다는 과장된 행동이나 인위적인 연출, 흥미위주의 접근을 통한 웃음 유발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사회의 다양한 모습과 드러나는 현실에 대한 포착은 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주고 있다.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여 코미디계에 한 획을 그었던 개그콘서트가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 및 소재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개발, 연구하여 한층 높아 가는 시청자들의 욕구와 기대에 부응하는데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①억지웃음 조장


하나의 극 안에서 웃음을 이끌어 내기보다는 말장난이나 감각적인 재미와 과장된 행동을 통해 억지 웃음을 유도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 22일 19회 방송분 에서 백재현에게 1.8리터의 물 한 병을 단번에 마시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미 18회 방송에서 같은 요구를 실패한 바 있는 이 장면은 성공이냐 실패냐 식의 강요된 선택 속에서 한편으로는 성공을 기대하며 또 다른 불편한 마음으로는 실패라는 모습도 상상하면서 ‘원 샷’ 이라는 복창 구호와 함께 시청자들도 고통을 주는 공범자가 된다.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개그맨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감정의 교착상태에 빠진다.


19회 앵콜개그 단군신화 끝 부분, 18회 스포츠 정신 중 물병 채 먹는 장면과 사바나 앵콜에서 원 샷을 복창시키며 물을 마시는 장면.


20회 로보캅에서 얼굴에 눈 스프레이를 뿌리는 장면


게다가 같은 방송 분의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는 등을 맞대고 있던 백재현이 뒤로 빠지자 김미화가 뒤로 벌렁 넘어지는 장면을 아무 의미 없이 의도적으로 연출하였고 앵콜 개그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줘 과장된 행동이나 몸짓으로 웃음을 만들려는 인위적인 유도행위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19회 ‘신데렐라’에서는 유리구두를 신기다가 결국은 죽어버린 것으로 결말 지워 아무런 내용전달 없이 허탈감을 남기었고, 20회 ‘동의보감’에서도 허준이 병자를 죽인 것으로 내용을 마무리하여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웃음의 끝을 맺으려는 위험성과 죽음을 손쉽게 다루는 문제점이 동시에 나타났다.


또한 1월 29일 오전 8시 40분 경 KBS2TV 에서는 어린이 프로그램의 방영직후 물 마시는 장면을 하이라이트로 편집하여 예고 방송으로 내보냈다. 이는 1대의 아이들에게까지 막연한 호기심을 갖게 하고  무분별한 행동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되었다.


②극단적이고 원색적인 언어사용


방송 초기에 비해 방송에 부적합한 표현이나 극단적이고 원색적인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단순한 대화의 수준을 벗어나 소리지르고 싸우는 모습으로 연출되어 시청자에게 격렬한 느낌을 그대로 전이시킨다.


대표적으로는 ‘사바나의 아침’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닥치지”(18회)


“장난하나 지금, ... 니 생명 단축하고 싶나, ... 니 어릴 때맞고 자랐지? ... 니 미칫~나, ...이 왠수야”(18회)


“니 요양원 보내줄까, ... 니 어릴 때맞고 자랐나 ...확 그냥, ...니 돌았나?”(19회)


“목을 따요. ... 목을 따야돼 꼭 따야돼”(18회), “젖을 쭉쭉 짜줘야 돼. 젖을 많이 짜주야 돼. 꼭 짜야돼”(19회), “왜 재수 없어? 나 이렇게 재수 없는 거에 대해서 뭐 보태준거 있어? 뭐 진정하라구? 그럼 진정제를 줘! 뭐, 진정제도 셀프야?”(19회), “도 닦으랬더니 또 그 짓거리야?”(19회 앵콜개그 단군신화)


또한 ‘사투리의 비극’에서처럼  원색적인 표현을 강원도 특유의 사투리로 포장하여 강원도 사투리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표현으로 웃음을 터뜨리는 방식은 시청자에게  불편한 심기를 조장하여 언어사용의 문제로 지적되었다.


결국 방송에서의 부적합한 표현이나 출연자끼리 주고받는 사적인 대사처리와 소리를 지르는 듯한 거친 말투의 사용이 빈번해 질수록 시청자들을 소외시키고  시청자로부터 외면 당 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③인격침해와 신체적 특징의 희화화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거나 서로에 대한 신체적 폭력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과거의 코미디가 ‘저질’이라는 비난과 함께 시청자로부터 외면당했던 점을 기억해 본다면 특정인의 신체적인 특징이나 약점을 이용해 웃음의 도구화하는 것은 코미디 발전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19회 아담패밀리에서와 같이 럭비공을 반 갈라 양쪽 가슴에 붙이고 흔드는 모습을 여가수 방실이의 모습으로 흉내내는 것이나, 단군신화에서 백재현의 큰배를 빗대어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것으로 웃음거리를 삼아 생명을 임신한 여성의 육체를 희화화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리고 외모중심의 가치를 선호하고 여성을 성적인 종속물로 다루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여 건강하지 못한 가치관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문제점으로 나타났다.


④다양한 세대간의 정서교감을 어렵게 하는 유행어 남발


광고의 패러디는 코미디 소재로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대부분 유행어에 국한되어 있다. 그로 인하여 지나치게 흥미위주로 흐르고 감각적인 느낌을 주고 다양한 세대간의 정서교감을 어렵게 하고 있다. 때문에 유행어를 통한 문화적 공감대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를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한 차원 높은 문화적 내용이 폭넓게 공유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현재 고전이나 연극 이야기의 형식을 빌어오는 것이 제목의 활용정도에 그쳐 이러한 형식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Ⅳ. 결론 및 제언


대부분의 오락프로그램이 타인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인 가학행위나 집단 따돌림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사회적인 즐거움으로 만들고 시청률 경쟁을 방패삼아 인기 있는 몇 가지의 비슷한 아이템만을 반복 재생산하면서 방송을 통한 문화창출이라는 순기능은 역기능으로 결과 지어졌다. 극단적인 상황설정과 극단적인 반응의 연출은 불 보듯 뻔한 결과를 만들어 왔고 이로부터 시청자들의 건강한 웃음에 대한 갈망은 가학적인 웃음 뒤의 허탈감만큼이나 증폭되어 왔다. 이제 시청자들은 타인의 고통이나 불행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취하는 잔인한 심리나 그 위에 강요된 억지웃음을 원하지 않는다.


앞으로 개그콘서트가 타인에게 강요하는 형식적인 웃음에 매달리기보다는 초기 제작의도와 같이 웃음의 내용으로 승부하여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편안하고 건전한 웃음을 제공함으로써 건강한  오락문화를 조성하는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더불어 개그콘서트가 신인들의 재능과 끼를 한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만큼 또 다른 신인 연기자들에게도 다양한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하여 주축멤버의 고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자칫 식상해 지기 쉽고 ‘정형화’되는 문제를 일정부분 해결하면서도 탄력적인 구성으로 신선함을 지속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이미 다양한 장르로 콘서트라는 형식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이 단순히 웃음만을 제공하는데서 벗어나 시사풍자와 해학을 담는 내용으로 한 발짝 나아가 우리의 개그문화를 성숙시키는데 기여하고,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시청자 군에서 벗어나 “386세대를 위한 설날 특집프로그램”의 기획과 같이 전 세대를 끌어들일 수 있는 다양한 시도와 모색으로 거듭 새롭게 태어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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