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상인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관리자
발행일 2023.04.04. 조회수 36284
스토리

[월간경실련 2023년 3,4월호-인터뷰]

“눈 앞에 위기가 닥쳤을 때는 이미 늦습니다”


- 박상인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1) -


문규경 회원미디어국 간사


“핵심은 정책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상인 상임집행위원장의 첫 마디였습니다. 일찍이 경실련 재벌개혁 운동의 선두에 서서 건강한 기업지배구조와 산업 생태계를 위해 온 힘을 쏟았습니다. 재벌과 중화학공업산업에 의존해서는 미래를 내다보기 어렵다고 말하며, 정부가 산업전환을 위한 기회와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줄곧 외쳤습니다. 경실련에서는 날이 선 비판과 정책대안 제시로 냉철함의 대명사로 불리면서 회원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끊임없는 소통과 정책적 논의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싶다고 밝힌 박상인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을 만나 봤습니다.





Q.경실련 제34대 상임집행위원장이 되신 소감과 각오가 궁금합니다.

A. 안녕하세요. 월간경실련 구독자 여러분! 올해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을 맡게 된 박상인입니다. 경실련은 지금 세대교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활동가 뿐만 아니라 전문가 그룹도 마찬가지입니다. 급속하게 우리 사회·경제 환경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경실련도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봅니다. 일련의 변화들 속에서 경실련도 지속 가능한 시민운동의 틀을 만들어야만 하는 중요한 시기에 위원장직을 맡게 되어 어깨가 무겁습니다.


제가 2019년, 2020년 정책위원장과 재벌개혁운동본부장을 할 때는, 경실련 전체 활동 중에서 정책부문에 집중하였습니다. 반면, 상임집행위원회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이기 때문에 정책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조직, 지역경실련과의 관계, 특별기구 등 전반적인 정책과 조직 그리고 인사까지 포함해서 다뤄야 합니다. 그래서 시민단체로서 경실련의 역할을 정립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립 취지에 부합되면서도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기에 고민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경실련에는 시민과 활동가 그리고 전문가 그룹이 있는데요. 이 세 그룹의 균형이 맞아야만 제대로 시민단체로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활동가들에게는 시민운동가라는 커리어에 대한 로드맵이 나올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조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경실련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경제정의연구소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앞으로 경실련이 시청 앞이나 대학로 광장에 공간을 차려놓고 시민들과 토론을 하고 생각도 나누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정말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민운동으로 나아가야 해요. 이 모든 것의 균형을 맞춰서 경실련이 잘 기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경실련 활동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A.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의 재벌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학문적인 연구 경로를 따라오다 보니 한국 경제와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재벌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경실련이 주최하는 재벌 관련된 토론회에서 발제를 요청받기도 하고, 토론자로 참여도 하면서 위원회 활동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경실련 창립 멤버 중에서 큰 역할을 하셨던 분이 故 변형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님이시고 저도 개인적으로 잘 알고 수업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경실련이 초기부터 재벌과 부동산 두 가지 문제를 중점적으로 해서 경제정의 실천을 위한 문제를 제기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요. 또한 열악한 상황에서도 활동가들이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Q. 당시 경실련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A. 토론회에 초대받은 것을 시작으로, 접촉면을 넓혀가면서 경실련을 만났기 때문에 회원으로 가입해서 만나는 첫인상하고는 조금 달랐을 것 같아요. 특히, 재벌 문제는 말하기 부담스러워하시는 분들이 많고 전문가들이나 학교에 계시는 분들이 나서기를 꺼리는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실련은 8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왔다는 측면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Q. 경실련에서 일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을까요?

A. 여러가지 일들이 참 많았는데요. 국정농단 사건 관련해서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결과에서 또 집행유예가 나올 것 같아서 그걸 막기 위해 법원 앞에서 시위도 여러 번 했었던 기억이 남고요. 또 하나는 제가 정책위원장을 할 때 이른바 ‘조국사태’가 있었습니다. 내부 입장을 정하는 게 상당히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우리 입장을 비판적으로 정리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거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하고 지지를 해주신 분도 계셨던 것 같아요. 저는 우리 경실련이 지향하는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기준으로 비판을 할 때는 누구 편인지를 봐서 판단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비당파성과 우리의 가치에 기반해서 우리는 비판을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입장을 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Q. 요즘 전국 순회 토론회를 하고 계시는데요. 경실련의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A. 제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고 선거제도 개혁 문제를 제일 처음 내세워서 하겠다고 했더니 많은 분들이 의외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전에는 제가 정치 문제는 가급적 거리를 두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경제 문제에만 전념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공약했지만 실천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의회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개혁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간 것이 많습니다. 인터넷 전문은행 특례법도 있고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는 벤처기업법 개정안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재벌들이 가장 소원을 했던 은행을 가지는 것과 세습을 제도화시켜주는 문을 열어주는 법안들이에요. 그래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많은 의원들이 우리 경제의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보기보다 당장의 선거에서 표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히 조국사태 이후에 진영이 나눠져서 서로를 혐오하는 식으로 가고 있고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윤석열 후보의 네거티브와 개인적인 비방 중심의 기조가 집권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결국, 정책이 정치 의제에서 실종되고. 상호 비난과 극단적인 지지층들에게 둘러쌓여 인기영합 식의 정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가 양당의 대표 선수가 나오면 그중에 한 명을 어차피 뽑을 수밖에 없는 선거제도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대표 선수를 뽑는 과정에서 당의 극렬한 지지층의 선택을 받아야 됩니다. 상대를 악마화하고 그러면서 자신을 어필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후보로 나오게 되면 국민들은 싫어도 더 싫은 사람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 투표를 하게 됩니다. 결국, 정치 효능감이 굉장히 낮아지고 정치에 대한 혐오가 커지는 악순환이 만들어집니다. 양극화라든지 탄소 중립, 재벌 문제 같은 주요한 정책 의제들이 사라져버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알아야 바뀔 수가 있는 건데 이런 정치 과정에서 정책의제가 사라지고 언론도 보도를 안하면 국민들은 알 방법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정책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지금 같은 선거제도 하에서는 어렵다고 판단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비례대표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리자고 말하는 것도 결국은 전국단위 정책이 선거의 중요 이슈가 되도록 만들자는 것입니다.


Q. 앞으로 경실련이 주력해야 할 활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선거제도 개혁은 그 자체가 그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은 우리가 4월 초까지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서 주력하고 있지만, 이 이후에는 결국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를 살펴봐야 합니다. 사회 양극화, 저출산과 고령화부터 시작한 많은 사회 문제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거든요. 탄소 중립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에서 우리가 계속 이렇게 가다보면 60-70년대 미국에서 일어났던 러스트 벨트가 한국 사회에 일어날 것입니다. 산업 공동화가 일어나고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이상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우리가 겪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탄소중립을 위한 산업전환과 양극화 해소라는 두 가지 사회 경제적인 운동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경실련이 선거 과정에서 이것들을 정치 의제화 하는 데 집중하는 게 우리가 앞으로 주력해야 할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Q. 회원·활동가 분들께 감명 깊었던 영화를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A. 영화 ‘타이타닉’을 꼽고 싶습니다. 타이타닉의 장면 중에서 빙산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선원 한 명이 선장한테, 이렇게 가면 빙산에 부딪힐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항로를 바꿔야 된다고 했는데, 선장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신에 파티도 하고 세상 좋게 보냈지요. 그러다가 빙산이 눈에 들어 옵니다. 그 순간 두 가지의 선택지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는 급격하게 뱃머리를 돌려서 배가 전복하거나, 전복되지 않을 만큼만 돌려서 빙산에 부딪히거나. 결국 후자를 선택하게 되고 배는 침몰하게 됩니다. 탄소중립, 재생에너지 100%(RE100) 등이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치부하면서 지금 같은 기조로 간다면, 타이타닉이 빙산 충돌을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갈 수 있어요. 눈앞에 위기가 닥쳤을 때는 이미 늦습니다. 지금부터 바꾸지 않으면 결국 타이타닉처럼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Q. 앞으로 회원님들과 어떻게 함께하고 싶으신가요?

A.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민과 활동가 그리고 전문가가 균형을 잘 가지고 가야지만 건강한 시민운동이 됩니다. 일방적으로 온라인에서 메시지만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회원님과 직접 만나서 사회 경제적인 문제를 직접 설명하기도 하고 의견을 경청하고 토론하는 기회들을 정기적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Q. 경실련 회원님들께 전하는 메시지를 부탁드립니다.

A. 회비를 내주시고 경실련 활동을 적극 지지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시민운동에서는 시민이 주체입니다. 앞으로 경실련이 회원님들께서 참여하실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 또 회원님들께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1) 박상인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으며, 경실련에서는 정책위원장(2019, 2020)과 재벌개혁운동본부장 등으로 활동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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