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추진위원회 1차 토의의제 발표에 대한 경실련 논평

관리자
발행일 2000.02.17. 조회수 2743
정치

  대통령직속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원회)가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그간 토의되었던 토의사항을 발표하였다. 추진위원회는 근대 사법제도가 시행된지 한 세기가 지났지만, 법원을 비롯한 사법분야의 구조와 관행, 법조인의 충원, 법학 교육 등 어느 것 하나 변화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최근에 국민 여론의 규탄을 받고 있는 일련의 법조비리를 통해 이와 같은 구조적이고 누적된 사법제도의 모순을 개혁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에 따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전 국민적 관심사인 ‘사법개혁’에 대해 개혁의제를 준비하는 추진위원회가 그간 토론되었던 토의사항을 발표한 것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추진위원회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법관인사제도 등 법원ㆍ 검찰ㆍ 변호사단체의 개혁 문제와 법조인선발과 양성제도, 법조비리 근절방안, 국민의 사법참여 확대문제 등 사법개혁의 내용중에서 핵심적인 본질적인 문제는 향후 의제로 돌리고 국민들의 양질의 법률서비스 확대 문제를 중심으로 주요 토의사항을 우선 발표하였다.



  양질의 법률서비스 제공에 대한 추진위원회가 발표한 토의사항을 보면 과거에 비해 상당한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어 부분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내용도 있다. 표준양형기준을 마련을 통한 양형합리화, 법률구조제도의 확대 및 법률구조공단의 위상강화를 통한 법률서비스의 확대는 국민들의 법률서비스 확대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진일보한 내용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여전히 부족한 감을 느낀다. 근대 사법제도 모순을 혁파하고 국민들에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인식과 발상에 대한 대전환이 필요하나 추진위원회는 여전히 과거인식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우리가 이렇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근거는 법률서비스 개선과 관련하여 반드시 추진해야할 과제에 대해 불투명한 태도를 보이고 있거나 전혀 언급을 하고 있지 않는 점 때문이다.



  첫째로 제정신청범위의 대폭확대의 문제이다. 추진위원회는 공무원의 직무관련범죄, 일정범위의 선출직 공무원의 모든 범죄를 대상으로 제한적 확대로 의견을 발표했으나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검찰의 기소재량 남용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제정신청제도는 모든 사건으로 그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는 유신체제 이전에는 모든 범죄를 대상으로 시행되었으나 유신독재가 출현하면서 기소권 통제를 위한 방편으로 이 제도를 거의 폐지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유신체제 이전으로 원상회복하여 모든 범죄로 전면확대하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제한적으로 확대하려는 태도는 사법개혁에 대한 불철저한 태도에 다름아니다. 특히 제정신청제도는 시민들의 검찰권에 대한 참여의 수단인 ‘검찰심사회’ 제도의 도입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정신청제도 전면확대와 동시에 반드시 ‘검찰심사회’제도 도입을 강제하는 것이 옳은 태도이나 추진위원회는 ‘검찰심사회’도입 문제도 향후 토의의제로 돌리는 불철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둘째로 법률서비스 확대와 관련 국민들의 정당히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현행 대법원의 ‘심리불속행제도’는 반드시 폐지토록 해야하나 추진위원회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업무가 폭주한다는 이유로 ‘상고심절차에대한특례법’으로 상고의 요건을 정하고 이러한 요건에 맞지않는 민사,가사,행정소송에 대한 상고는 심리도 하지 않은채 기각판결을 하고 있다. 이는 문제가 많아 폐지되었던 ‘상고허가제’보다도 더욱 국민들의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법원의 편의때문에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되고 있음에도 이런 점을 지적하지 않고서 어떻게 법률서비스 개선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셋째로, 인신구속제도와 관련 현행 긴급체포제도와 관련해서 추진위원회는 48시간동안 검사재량으로 구속할 수 있도록 하되, 영장은 지체없이 청구하고 48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불철저한 태도이다. 국민의 인권보호측면에서 현행의 긴급체포제도는 폐지해야 하며, 새롭게 긴급구속영장제도를 도입하여 법원의 영장에 따라 모든 인신구속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긴급체포제도는 48시간동안 검사재량으로 강제구속하는 것을 말하며 48시간내에 영장을 청구하지 않아도 책임을 지지 않는 제도이다. 따라서 어떤 국민이든 검사재량에 따라 아무런 조건없이 48시간동안 구속될 수 있는 제도이며 불법구금의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제도이다. 이는 국민의 인권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인대도 추진위원회가 인권보호측면에서 본질적 개혁안을 내놓지 않고 실현불가능한 피상적인 내용을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이다. 추진위원회의 주장대로 현재의 검,경의 수사관행으로 보아 체포즉시 영장을 청구할리도 없으며, 대부분 48시간을 채우고 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긴급체포와 관련 추진위원회의 내용은 48시간 긴급체포제도를 현실로 인정해주는 꼴이 되는 셈이다. 이는 국민의 인권보호측면에서 대단히 안이한 태도이다.



  넷째, 국민들의 정당하게 재판받을 권리와 관련하여 현행 검사가 작성한 조서는 증거능력을 갖도록 한 현행 형사소송법에 대해서 아무런 내용이 없는 것도 문제이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사법주체로서 검사들의 권한을 인정하여 경찰의 피의자 조서는 증거능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검사가 작성한 조서만을 증거능력을 갖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검사가 작성한 조서라도 강압과 위압에 의해 작성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며 검사조서를 증거능력으로 인정케 하는 것은 문제이다. 이는 판사의 판단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신문과정에서 변호사의 입회했을 경우에만 증거능력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제한적으로 고쳐야 한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찰의 조서를 부인함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증거로 인정하여 선고를 하게 하는 것은 정당히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상에서 지적한 것처럼 추진위원회의 토의내용이 국민의 인권보호와 법률서비스의 확대라는 큰 원칙에 걸맞는 내용이 누락되거나 불철저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추진위원회의 운영과정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철저하게 밀실에서 논의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한 후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발표한 뒤 형식적으로 몇차례의 공청회를 거쳐 국민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하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결정과정을 추진위원회가 답습한 것이 논의 내용의 한계로 연결되었다고 본다.



  우리는 추진위원회가 진실로 국민들이 원하는 사법개혁안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그 진행방식에 있어서 국민적 참여와 토론으로 개혁이 진행될 수 있도록 변경할 것을 촉구한다. 밀실에서 비공개로 토론할 것이 아니고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진행해야 하며, 주요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공개적인 공청회와 토론회를 병행하여 진행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추진위원회가 밀실에서 논의하여 아무리 훌륭한 개혁안을 마련한다해도 제도화과정에서 법조기득권세력의 저항에 의해 밀리는 결과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하여 논의 전과정에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 추진위원회안이 국민적 합의과정에 의해 도출될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촉구한다.



  우리는 사법개혁의 핵심적인 의제가 논의과제가 추진위원회에서 어떻게, 어떤 과정을 통해 논의되는지 지켜볼 것이며, 아무쪼록 추진위원회가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 것을 촉구한다. (1999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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