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를 위한 보편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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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9.11.20. 조회수 1693
칼럼

한국 사회를 위한 보편적 가치


 



     김호균(경실련 재정세제위원장)


 한국사회가 모든 이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간적, 사회적 가치가 구현되어야 한다. 그것은 모든 국민을 위한 행복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보다 구체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목적으로서의 위상을 가지는 이들 가치는 당연히 한국 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가치(기본가치)이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특수한 여건을 반영하는 내용을 가지는 보편적 가치일 것이다.



평화, 인권, 신뢰, 포용, 정의가 그러한 보편적 가치의 지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가치는 한편으로는 각각 독자적인 의의를 가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 밀접한 보완관계를 가진다. 이들 가치는 어느 특정 영역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적용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가치가 구현되면 다른 가치를 구현하는데 도움이 되고 하나의 가치가 상실되면 다른 가치의 구현도 저해될 수 있다(‘가치들의 상호의존성’).


 

1. 평화
평화는 한국 사회가 추구해야 할 첫 번째 보편적 가치이다. 평화는 그 자체로서 인간적인 삶의 수준과 질을 구성한다. 한반도에서 전쟁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상호협력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다른 보편적 가치가 구현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매우 크다. 평화가 위협받으면 국민의 인권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신뢰와 포용의 인간관계가 심화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평화는 세계적 차원에서 인류 보편적 가치로서 구현되어야 한다. 평화가 유지되어 국제적 교류와 소통이 활발해지고 민족간 상호이해의 폭이 지속적으로 넓어지면 신뢰와 포용의 구현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도 UN 활동 등을 통해 세계평화 구현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2. 인권
한국 사회에서 인권은 불가침의 영역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는 민주화운동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국민의 자유권도 정착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경제적 기본권과 사회적 기본권의 확대 및 심화가 요구된다. 경제적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정부는 경제헌법에 규정된 ‘경제의 민주화’(제119조 2항)의 이념을 현대적 관점에서 창의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집행해야 할 것이다. 교육권, 환경권 등 사회적 기본권도 추상적 권리로서만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모든 국민의 인권이 동등하고 적극적으로 보장될 때 평화는 물론 포용과 신뢰, 정의의 보편적 가치들도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이들 가치가 구현될 수 없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3. 정의
한국 사회에 널리 상존하고 있는 불의는 국민의 행복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려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력의 남용이 철저히 차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들 권력 남용을 통해 달성될 것으로 기대되는 넓은 의미의 ‘지대’가 환수되어야 한다. 공공연한 부정부패뿐만 아니라 은폐된 형태로 자행되고 있는 권력 남용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통제가 필요하다.



경제권력의 남용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생산자와 소비자,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서 자행되고 있는 권력남용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이 기울여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많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아울러 모든 인간의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을 두지 않고 평등하게 대하는 것도 한국 사회가 정의의 차원에서 추구해야 할 자기목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양성평등의 구현은 여성의 권리 신장을 의미하므로 인권보장의 개선을 의미하기도 한다.



종교, 성별, 이념, 나이, 직업에 관계없이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이상도 현실화되어야 한다. 권력과 부의 격차가 법 앞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현실이 시정되어야 한다. 나아가 국내 체류 외국인 100만 명, 해외관광 내국인 3,000만 명 시대를 맞이하여 이제는 인종을 초월하는 평등 개념의 확장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4. 신뢰
한국 사회는 심각한 불신의 사회이다. 불신은 그 자체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서 갈등과 정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지만 정치발전을 가로막고 있고 경제의 선진화에 걸림돌이 되
며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국 정치에서 신뢰의 구축은 민주주의가 심화, 발전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에서도 거래비용을 절감시켜줌으로써 시장경제제도의 안착과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적지 않은 갈등이 어렵지 않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에서 신뢰의 증진과 확산은 자기목적으로서의 위치를 충분히 가진다.



신뢰는 인권, 평화, 포용의 가치와 상호보완관계에 있다. 신뢰를 혈연, 지연, 학연에 기초를 둔 원초적 신뢰가 아니라 보편적 타자에 대한 신뢰로 이해한다면 신뢰의 증진은 일정한 수준의 복지를 필요조건으로 한다. 스칸디나비아 3국의 예에서 보듯이 물질적, 정신적 생활조건의 측면에서 궁핍을 벗어나는 것이 신뢰를 구축하는데 기초가 된다. 다른 한편으로 정부와 국민 사이의 신뢰 증진은 국민의 인권 신장을 전제로 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인권 신장에 기여하기도 한다.



신뢰는 투명성, 일관성, 합리성에 기초한 예측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개인 관계는 물론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정보부족은 거래비용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불신의 출발점이 되는데 반해 정보 공개를 통한 투명성의 제고는 신뢰를 증진시키는데 기여한다. 일관성도 신뢰관계의 구축에 필수적이다. 자의적인 의사결정과 행위는 매번 새로운 교섭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이 새로운 교섭은 이전보다 더 큰 교섭비용을 수반하게 된다. 합리성도 신뢰의 필수요건이다. 힘의 논리와 무모한 고집은 교류 자체를 저해할 뿐만 아니라 일단 성립된 교류조차 유지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5. 포용
다른 것을 다른 것으로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도 한국 사회에서 구현되어야 할 가치이다. 혈연, 지연, 학연 중심의 포용이 보편적 타인의 포용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포용은 신뢰, 정의와 상호보완적이다. 포용정신은 사회적 신뢰 수준을 높일 수 있고 타인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포용력도 강해진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포용은 사회경제적 약자의 포용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과 양극화는 일부 국민을 정상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생활로부터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들을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편입시키는 것은 정부와 국민 모두의 항상적인 과업이 될 것이다.



사회경제적 약자 이외에 한국 사회에서 포용되어야 할 소수는 장애인, 외국인 근로자, 혼혈인, 소년소녀 가장, 미혼모 등 다양하다. 이들이 정상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생활로 포용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시급하다. ‘단일민족’에 대한 과도한 자부심이 외국인이나 혼혈인에 대한 배타심으로 연결되는 것을 차단해야만 한민족의 진정한 세계화도 가능할 것이다. 포용을 통해 사회통합이 달성될 때 갈등에 수반되는 사회적 비용이 절감되고 사회발전의 동력은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다.


 


<약력>
현 명지대학교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재정세제위원장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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