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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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05.12. 조회수 1982
칼럼






평등은 자유와 더불어 현대인이 가장 중요시하는 사회적 가치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평등에 관하여 서로 상충되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평등을 자유와 상충되지 않는 당연한 사회적 가치로 인정한다. 프랑스 대혁명의 인권선언, 미국의 독립선언 및 UN인권선언이 모두 자유와 함께 평등을 당연한 사회적 가치로 선언하고 있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동시에 자유와 평등은 서로 상충한다는 생각도 널리 퍼져 있다.







이런 혼란은 평등을 본원적 평등, 사회적 평등 및 경제적 평등의 셋으로 구분함으로 해소될 수 있다. 평등의 의미를 셋으로 구분함으로써 자유와 평등의 관계와 자유주의에서의 평등의 가치를 분명히 할 수 있다. 본원적 평등은 자유를 비롯하여 정의와 진보 등 중요한 사회적 가치들이 도출되는 근거이며 사회적 평등은 자유와 동일한 의미이다. 경제적 평등만이 자유와 갈등관계에 있다.







본원적 평등



앞의 칼럼에서 말한 것처럼 자유는 개인의 사회적 자유라는 한 가지의 의미이다. 반면에 사회적 평등은 본원적 평등, 사회적 평등 및 경제적 평등의 셋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본원적 평등이란 모든 개인은 인격, 존엄성, 가치와 기본권에서 완전히 동등하며, 모든 사람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동등한 기본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평등하다는 것, 즉 모든 개인은 완전히 똑같이 소중하며 똑같은 기본권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완전히 동등하게 존중 받아야 하며, 아무도 다른 사람을 차별하거나 억압하거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없음을 말한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만인평등이 본원적 평등이다. 만인평등 사상은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을 비롯하여 근대 서양 시민사회의 모든 발전을 추진해 온 힘찬 원동력이었다.







구체제의 가톨릭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성경이 라틴어로만 출판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은 직접 성경을 읽을 수 없었고 오직 신부의 설교를 통해서만 성경을 접할 수 있었고 신부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었다. 이에 반대하여 신교도들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므로 일반신도도 신부와 동일하게 직접 성경을 읽고 기도로 하나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신앙의 자유를 주장하였다. 일반인이 읽을 수 있는 세속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처음 출판된 것도 종교개혁 때였다.







만인평등은 종교개혁 이후 시민혁명을 이끌어 간 기본이념이기도 하였다. 만인평등의 생각에서 평민이었던 부르주아들은 구체제의 신분차별의 철폐를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기존의 전제군주제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주장한 것도 만인평등으로부터 도출되었다. 시민들은 만인평등사상에 입각하여 절대군주의 전제정치를 부인하였으며 모든 사람이 동등한 참정권을 갖는 민주주의를 주장하였다. 시민혁명이 성공한 이후 오랫동안, 영국에서는 무려 2백년간, 재산을 기준으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제한하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제한이 점차 철폐되어 가난한 노동자와 빈민들도 동등한 참정권을 갖도록 점차 제도가 개선된 것은 만인평등이라는 대의명분을 부르주아들이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평등



인간이 본원적으로 평등한 것은 자명하지만 현실에서 완전한 평등이 실현되지는 못한다. 사회적 평등은 현실 사회에 실현된 평등을 말한다. 사회적 평등에는, 법적 평등, 정치적 평등 및 협의의 사회적 평등 셋이 포함된다. 법적 평등이란 만인이 법 앞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는 법치주의를 말하며, 정치적 평등은 모든 사람이 동등한 참정권을 갖는 것을 말하며, 협의의 사회적 평등이란 재산, 신분, 성, 인종, 교육수준, 종교 등 그 어떤 이유로도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협의의 사회적 평등은 다시 셋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법(제도)으로 명시된 사회적 평등이다. 우리나라 헌법 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언명하고 있다.



둘은 우리의 의식 속에 확립되어 있는 만인평등 의식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므로 사람을 차별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의식 덕분에 우리는 사람을 차별하는 행동을 스스로 삼가한다. 셋은 사회의 분위기로 확립된 만인평등 사상이다. 속으로는 만인평등을 부정하고 사람을 차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공개적으로는 만인평등을 부정하고 사람을 차별하지 못한다. 그런 생각을 표출하면 사회의 비난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동에 법이나 개인의 의식보다도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사회분위기라는 무형의 힘이다. 우리나라에서 평등을 실현하는 데에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만인평등을 당연시하는 사회분위기일 것이다.



법은 법이 미치는 테두리 내에서 강제로 평등을 실현하고, 의식은 법이 못 미치는 곳에서도 자발적으로 평등을 실현하며, 사회분위기는 모든 사회 영역에서 가장 강력하게 평등을 실현한다.







경제적 평등



끝으로 경제적 평등은 부(재산)와 소득의 평등한 분배를 의미한다. 경제적 평등, 경제적 분배의 평등, 분배의 평등, 평등분배, 공정분배, 분배의 형평성, 분배정의는 모두 같은 말이다. 저축한 소득이 축적되어 재산이 되므로 부와 소득의 분배는 소득분배로 귀착된다.





소득분배에는 소득 획득의 기회균등과 결과로서의 평등분배의 두 가지가 포함된다. 소득에는 근로소득(임금)과 재산소득(이자, 이윤, 임대료 등)의 두 가지가 있고, 근로소득을 얻는 기회는 주로 교육에 의하여, 재산소득을 얻는 기회는 주로 상속에 의하여 결정되므로 소득분배에서의 기회균등이란 주로 교육과 상속에서의 기회균등을 의미한다. 결과로서의 평등분배란 각자 경제활동에 참가한 결과로 얻어진 소득의 평등분배를 말한다.







본원적 평등이나 사회적 평등과 달리 경제적 평등의 내용은 분명하게 무엇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19세기 이후 평등분배에 관하여 여러 가지 이론들이 제시되어 왔다. 이들 기존이론들과 평등분배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한다.

 





사회정의에 관한 으뜸 공리



본원적 평등(만인평등)은 두 가지 이유로 본원적이다. 첫째, 이 명제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자명하며, 둘째, 이 명제는 자유, 정의, 진보 등 다른 중요한 사회적 가치들이 도출되는 기본 공리이다.

 





사회문제에 관한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이 사회정의이다. 만인평등은 사회정의와 관련된 명제 중에서 유일하게 자명한 명제일 것이다. 사회정의에 관한 다른 주장들은 그 자체로 자명하다고 보기 힘들며,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그것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한 설명이 필요하다. 허나 본원적 평등의 명제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논란의 여지없이 올바른 명제이며, 그 자체로 자명하여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논증이 필요 없는 공리(公理)라고 생각된다. 모든 개인이 똑같이 소중하며 동등한 인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는가?







본원적 평등은 또한 다른 사회적 가치가 도출되는 근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서 자유가 옳은 이유는 모든 개인이 평등하므로 아무도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강요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정의와 불의도 본원적 평등을 이용하여 설명할 수 있다. 정의란 본원적 평등과 부합하는 사회 현상을 말하는 반면에 불의는 본원적 평등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의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고 핍박하는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같은 강대국의 약소국 침략,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정권의 인권유린과 같은 국가권력자의 횡포, 노예제도, 신분차별,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적 차별, 폭력배의 횡포 등이 모두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는 불의이다.



불의는 경제적 거래에서도 존재한다. 납품단가를 무리하게 싸게 후려치는 것, 대금을 어음으로 끊어주고 뒤로 비싼 이자율로 그 어음을 되사는 고리대금업을 하는 것, 뇌물을 요구하는 것 등과 같이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강요하는 불공정거래들이 이에 속한다. 이런 거래들은 모두 형식적으로는 양자의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모두 명백하게 강자에 의한 약자의 수탈이다.







두 번째 사회적 불의는 풍요 속에서 방치되는 빈곤이다. 대표적 자유지상주의자인 하이에크(Friedrich Hayek)는, 사회정의란 인간의 의도가 개입된 사회현상에만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인데, 시장경제에서 이루어지는 소득분배는 이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분배문제에는 사회정의란 말을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하이에크만이 아니라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대개 자본주의에서의 빈곤은 자연적 현상이므로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이런 견해에 의하면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풍요속의 빈곤은 불의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 말대로 빈곤 그 자체는 불의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빈곤을 방치하는 것은 불의이다. 방치한다는 것은 인간의 의지가 결정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2009년 우리나라 자살자수는 만5천명이 넘고 자살률은 OECD회원국 중에서 단연 1위이다. 특히 75세 이상의 초고령자 자살률은 다른 나라의 20-30배에 달하며 그 주 원인은 빈곤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노인들이 자식들로부터도 사회로부터도 버림받고 참혹한 가난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정부가 4대강 살리기를 비롯한 수많은 토목공사에 수 십 조원의 헛돈을 쓰면서 이런 죽음을 방치하는 것은 불의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정책은 정부 당국자들의 의식적인 의사결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가난을 국가가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지만 낭비되는 막대한 정부예산을 줄이면 상당히 많은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본원적 평등이 현실에서 확대되어 실현되어 가는 과정, 곧 사회적 평등이 확대해 가는 과정이 진보이다. 우리는 이를 기준으로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지 사회의 진보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사회가 전근대사회보다 진보하였는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인간이 돈의 노예가 되어 인간성이 황폐해졌다는 점에서 근대 자본주의사회는 윤리적으로 전근대 사회보다 퇴보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만인평등의 사상이 보급되어 사회적 차별이 크게 축소되고 사회적 평등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진보이다. 절대왕정의 폐지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도입, 신분제도와 노예제의 폐지, 남녀차별과 인종 차별 철폐, 선거권의 확대, 인권보호 제도의 확대, 공공복지 제도의 확충 등 근대시민사회에 들어와서 실현된 모든 사회적 진보를 추진하였던 원동력이 만인평등의 사상이었다. 과거에도 앞으로도 만인평등은 사회발전의 영원한 원동력이다.







만인평등은 근대성의 핵심이다. 국가와 계급이 등장한 이후 수 천 년 동안 사람들은 신분(계급), 인종, 국적, 종교, 성, 재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시하여 왔다. 물론 과거에도 만인평등의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수의 선각자의 말과 글 속에만 있었지 현실에서 실현된 것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와서부터이다. 만인평등의 사상이 현실에 확고히 뿌리를 내렸다는 점에서 근대사회가 전근대사회보다 진보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지상주의자들처럼 모든 사람은 자유롭다라는 것을 으뜸공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모든 사람은 똑같은 가치와 권리를 갖고 있다는 본원적 평등의 명제가 더 자명한 것 같고 다른 가치들을 논리적으로 도출하기가 더 쉬운 것 같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본원적 평등은 논란의 여지없는 자명한 명제이며 자유, 정의 및 진보와 같은 다른 사회적 가치가 도출되는 근본명제이다. 이 점에서 본원적 평등은 사회정의에 관한 으뜸 공리(the sovereign axiom of social justice)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명제는 근대 문명의 기반이며, 이 명제를 부정함은 근대 문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본원적 평등을 사회정의에 관한 으뜸공리로 보는 것이 상생적 자유주의의 기본입장이다.







자유와 평등의 조화와 갈등



자유와 평등이 상충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위에서 본 세 가지 평등 중에서 자유와 충돌하는 것은 경제적 평등 뿐이며, 다른 두 가지 평등은 자유와 조화한다.







본원적 평등이 자유의 당위성이 도출되는 근거임은 앞서 본 바와 같다. 만인이 원래 평등하므로 아무도 다른 사람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타인의 억압을 받지 않고 각자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본원적 평등인 만인평등의 사상을 근대사회에 널리 보급시킨 것은 자유주의였다. 자유와 함께 평등의 사상을 널리 보급하여 모든 사람은 원래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생각이 만인의 상식이 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자유주의의 가장 큰 역사적 공헌이라고 생각된다.

 





사회적 평등은 사회에서 실현된 본원적 평등이며 이는 동시에 자유를 현실적으로 실현시킨 것이기도 하다. 법적 평등은 법으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며, 모두에게 동등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정치적 평등은 모든 사람에게 금력, 권력, 교육 등과 상관없이 정치적 결정에 동등한 권리로 참여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지킬 수 있도록 한다.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사회적 평등은 인종, 신분, 교육, 성, 재산 등을 이유로 개인들이 자유를 침해받는 일이 없도록 한다. 이처럼 사회적 평등과 자유는 서로 동전의 양면이다. 진보는 평등과 자유가 함께 확대되는 과정이다.



 



반면에 경제적 평등(평등분배)은 자유와 충돌한다. 특히 자본주의경제에서 그러하다. 자본주의경제에서 분배평등을 위해 정부가 분배에 개입하면 그만큼 개인의 재산권 처분의 자유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자유방임의 자본주의에서 이루어지는 분배를 정당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분배는 불평등하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모든 자본주의국가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공복지정책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회균등이라는 의미와 결과로서의 평등분배라는, 평등분배의 두 가지 내용 중 어느 하나도 자본주의경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본주의경제에서 소득분배의 기회를 결정하는 교육과 재산상속이 전연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상속재산은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천지 차이가 나며 교육기회도 부모들의 재산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결과로서의 소득분배도 자본주의경제에서는 평등과 거리가 한참 멀다. 소수의 부자들이 천문학적 소득을 얻는 한편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난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불평등한 분배를 완화하기 위하여 모든 국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개인의 재산처분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재분배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분배가 상충한다는 것은 이처럼 평등분배를 위한 정부의 재분배정책이 개인의 재산처분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재분배정책의 주 내용은 부자들이 더 많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복지제도이다. 현대의 모든 경제학파는 개입주의이든 자유방임주의이든(신자유주의가 이에 속한다) 모두 정부의 공공복지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다만 자유방임주의자들은 절대빈곤 해결을 위한 소극적인 공공복지제도를 주장하는 반면에 개입주의자들(복지국가주의자들)은 이에 더하여 중산층의 생활안정을 위한 공공복지제도까지를 주장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근식 경실련 공동대표/서울시립대학교 교수>



※ 이 글은 '프레시안'(2011.5.09)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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