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총제 지키겠다던 '바보 노무현'은 어디에

관리자
발행일 2006.09.15. 조회수 551
칼럼


홍종학 경실련 정책위원장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


"지배구조는 정상적이어야 합니다. 최대주주의 '황제식 경영'이 이루어져선 안 되며, 순환출자나 상호출자를 통해 소수의 지분으로 전 계열사를 부당하게 장악할 수 없어야 합니다. 이사회나 투자자와 소수주주의 의견은 정당하게 반영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당한 내부거래는 없어져야 합니다. 또 편법과 탈법을 통한 부(富)와 경영권의 부당한 세습은 막아야 합니다. (중략)


현행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상호출자 및 상호지급보증 금지제도는 그대로 유지하겠습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기본적으로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기업군에 한해 과거와 같은 무리한 업종확대와 선단식 경영을 지양토록 하는 제도입니다. 앞으로 대기업그룹의 경영행태가 글로벌 기준에 부합할 만큼 개선되고, 정부의 감독기능과 시장에 의한 감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게 되면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입니다. 자산총액 2조원이상 기업에 대한 상호출자와 상호지급보증 금지제도는 기본적으로 주식회사 제도에 대한 건전성 감독 차원의 규제이므로 중장기적으로는 대상을 일반화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중략)


특히 대기업그룹 계열사인 금융회사가 불법적인 지원을 반복하는 등 금융의 건전성을 현저하게 위반하거나 금융질서를 어지럽힐 경우, 금융감독기관이나 공정거래 당국이 법원에 해당 금융기관의 계열분리를 청구할 수 있게 하는 계열분리청구제도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영리해진 대통령


2002년 10월 8일, 어느 시민단체 토론회에서의 연설대목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강력한 재벌개혁 의지를 피력하던 바보 노무현.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어지는 질의 응답 시간에도 그의 신념은 분명해 보였다.


"순환출자, 상호출자를 통해서 지배하게 되고 이 지배를 통해서 선단식 소유구조를 통해서 지배구조를 갖게 되고 이것이 비효율적인 투자를 만들게 하는 원인이 되고 부당한 내부거래를 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시장에 효율성을 많이 저해하고 있다. 이대로 두고는 우리 한국이 결코 국제적으로 신인도도 올라갈 수 없고 경쟁력도 높일 수 없고 또 나아가서는 부실이 누적돼서 그것이 금융기관 부실로 또다시 위기로 이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상당히 지금부터 확실하게 감시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국민의 열망을 받아 집권한 그들이 재벌과 나란히 앉아 국정을 논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개혁을 주장하는 지지자들의 모습은 어느 사이 그들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실용이 결국 재벌과 건설족만을 위한 것이었기에 처참한 국민적 심판을 받고 나서, 새 지도부가 들어서더니 더 노골적으로 재벌과 건설족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노무현 정부의 임기가 1년 반이나 남았는데, 연설문에 밑줄까지 칠 정도로 강조했던 '출자총액제한제도', 이미 지난 3년간 만신창이가 된 이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난리가 났다.


공정위에서는 이 제도를 재검토하기 위한 회의가 연일 열리고 있는데, 이미 언론에서는 출총제는 폐지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어떤 대안이 더 나은지를 논의하고 있다. 재벌에게 유리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뒤질세라 여당의 주요 당직자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연내에 출총제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재벌이 무엇이길래…. 섬뜩한 일화가 떠오른다. 어느 독일 유학생이 지도교수에게 재벌을 논문주제로 삼겠다고 했더니 타일렀단다. 재벌의 합리적 개혁은 불가능하다. 전쟁이나 공황 등의 비상시국이 아니면 바꿀 수 없는 건데 공부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 지도교수가 한마디를 더 붙였단다.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있느냐고….


재벌들의 공식 선전포고 


어제 재벌들은 선언했다. 출총제를 폐지하고, 수도권 규제완화를 한다면 27조원을 투자하겠다고. 그들은 계산을 마쳤다. 이제 진실을 지키기는 더 힘겹게 되었다.


얼마전 재벌과 관련한 인터뷰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던 기자가 했다는 말이 아직도 내 가슴을 쓰리게 한다. "인터뷰 할 사람이 몇 없죠…." 그렇다. 재벌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 아마 양 손의 손가락도 다 채울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요즘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운동가들에게 힘을 주지는 못할망정 기운빠지는 소리를 종종 한다. "이것은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거센 광풍을 잠재울 수 있는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다면…. 제갈량이 하늘을 감복시켜 얻어냈다는 동남풍이 없다면…. 우리는 진실의 깃발을 지켜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그 진실을 묻습니다. 몇 년이 아니 몇 십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진실을 볼 용기를 가진 젊은이들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 이 칼럼은 9월 15일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관련 기사>
[출자총액제한제도, 그 무서운 진실과 거짓 ②] 재벌 편드는 관료·정치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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