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상 - 헌법개혁

관리자
발행일 2009.11.21. 조회수 496
칼럼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상 - 헌법개혁


 



강경근(전 시민입법위원회 위원장)



1. 경실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이곳은 본인이 교수로서의 강의와 연구의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지식인으로서 사회봉사의 책무를 다하고자 펼쳤던 시민운동의 원점이다. 당시 연구실에 걸려온 서경석 (당시)사무총장의 전화와 함께 설립 시부터 참여하여 오늘에 이르니 참으로 오랜 기간 인연을 맺어 오고 있다. 하지만 2000년에는 이석연 (당시)변호사가 사무총장을 하면서 나는 시민입법위원장으로서 함께 활동을 하고 2001년 말 그 직을 마친 후에는 갑자기 찾아온 건강상의 문제로 특정 시민단체에서 활동을 하는 일은 사양하였다.
경실련은 2000년에 참여연대가 주축이 된 총선시민연대가 공직선거법을 위배하면서 펼쳤던 국회의원 낙선운동에 대하여, 실정법을 지키면서 정치질서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유권자정보공개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이후 경실련이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의 적자(嫡子)로서 위상을 가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오도록 한 계기를 주었다. 당시 그 모든 일들을 무진 애를 써서 공을 들였던 고계현 정책실장이 기억된다. 당시 시민입법위원회가 부설로 운영했던 시민입법학교도 꾸렸다. 당시 시민입법위원장이면서 시민입법학교장으로 몇 차례 세미나와 명사 초청강연도 하였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부산 지역구 선거에서 낙선한 노무현 (당시)변호사였다. 정치개혁을 중심으로 하는 강연에서 청강생들에게 박수를 유도하면서 흥미 있게 진행하였다. 그때 처음 대면한 나는 그분이 대단히 겸손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가졌었다.
어쨌든 그 이후 지금까지 몇 시민단체에서 나의 이름을 올려놓는 것은 허락해도 어떤 단체에 참여하여 활동하지는 않았는데, <경실련 창립 20주년 기념사업- 경실련 사람들-그들이 바라 본 한국사회발전 방향>의 메일을 받으니, 감회가 새롭다. 당시 30대 중반이던 필자는 이제 50대 중반을 넘었으니, 새삼 그간 한국 사회가 발전했음을 인지하게 되고 그 과정에 미친 경실련의 의미는 크다 아니할 수 없음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현행 87년 헌법의 제정 직후 설립된 경실련의 입장에서는 이제 이 87년 체제의 개혁 문제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에서 ‘헌법개혁’을 말하고자 한다.


 


 


2.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이다. 국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간결한 언어로 표현한 문서가 헌법이다. 시간을 담은 공간의 규범, 공동체의 국가적․사회적 현상을 당위의 법칙으로 질서화한 시․공간적 규범, 그것이 헌법이다. 이렇게 헌법의 중심에는 국가라는 존재가 있다는 점에서 국가의 변화는 헌법의 변경을 가져온다.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인 제헌헌법 내지 건국헌법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선민족의 정치적․경제적 사회의 상황을 규범으로 승화시킨 최고규범이라면, 제2공화국헌법은 제1공화국의 이승만 정권에 항의한 4․19라는 국민의 저항권으로 창출된 새로운 사회공동체의 상황을 규범화한 헌법이라 하겠다. 현행헌법 역시 1987년 6․10 민주항쟁으로 정점을 이뤘던 헌법투쟁의 결과물이다. 권력의 핵인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을 수 있는 헌법을 가져야 한다는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가 승화된 규범을 우리는 21년째 운용하고 있다. 역대 어느 헌법보다 더 오랜 기간의 규범력을 지속하고 있는 최장기 헌법이다.
현행 헌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되 한 번만’이라는 특수한 민주적 상황을 담은 규범이다. 그것은 단순하고 좁은 의미의 민주주의를 보장한다는 한계적 한시성을 지닌 헌법이었다. 87년 헌정은 그렇게 최소한의 민주화만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3. 87년 헌정개혁 이후 20년의 기간은 한국 사회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헌법투쟁으로 얻은 형식적 민주주의는 전 방위에서 시민들의 정치적 주체성을 확인하는 실질적 민주화로 들어섰다.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선택하고 대통령직을 일생에 한번만 하도록 하는 명제는 부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국가 파산의 수렁을 헤쳐 나오는 과정에서 일관된 경제 운영과 이를 위한 정치적 계속성과 책임성이 공동체에 요구된다는 점을 절실하게 느껴 왔다. 권력구조에 있어서의 민주화 확장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점에 있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는 제헌헌법이 상정한 공동체적 정체성을 잊어 왔다. 사회 전체가 구심점 없는 부박함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를 잊었다. 그 결과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대한민국헌법이라는 헌법의 가치의 경시였다. 국가와 헌법의 상실에 가까운 지난 10년의 과정은 공동체에 무책임하면서 세계적 보헤미안으로 남으려는 이기적 주변인들을 양산하였다. 스스로 세계화된 시민이라 착각하는 현실에서 공권력은 권위를 잃었고 공동체적 가치는 동요되었으며 헌법을 정점으로 하는 법질서는 능멸의 대상이 되었다.
건국 60년의 정체성을 담는 새 헌법 제정 수준의 개헌의 작업의 과정은 이렇게 경시되고 상실된 대한민국의 가치를 대한민국헌법에 재차 승화하고자 하는 것이어야 한다.


 


 


4. 새 헌정의 질서로 인식할 정도의 헌법개혁은 우리들에게 대한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새삼 주는 규범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건국 60년 그 역사가 87년 헌법이 성실하게 담았다고는 하기 어렵다. 반드시 담아야 할 것을 놓쳤다든지 담아서는 아니 될 것을 적었다면 고쳐야 한다.
헌법개혁 구상에는 헌정이념 없는 개별 헌정제도 개선 방안들의 나열은 피해야 한다. 최상위에 존재하는 헌정 이념은 대한민국 건국을 가능케 한 제헌헌법 ‘다시 바로 보기’에 있다. 헌법개혁의 기본 틀은 제헌헌법의 바탕 위에서 87년 헌법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바꿀 것인가에 관한 국민적 동의의 과정 즉 개혁의 절차적 정당성 확립을 국민과 함께 하는 공유의 가치가 형성되어야 한다.
개헌을 통하여 무엇을 구현하려 하는가, 어떤 가치와 합의를 도출할 것인가 등의 논의부터 실질적인 의제가 설정되어야 한다. 권력구조와 정치제도, 정당제도 등은 논의의 틀을 잡는 것이 쉽겠지만 영토, 시장, 사회적 기본권 등의 의제는 논의 절차에서 세밀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자칫 이념 논쟁의 와중에 우리의 공동체를 빠뜨릴 수 있다. 좋은 헌법이란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고 시장경제를 확립하는 헌법이라는 입장과, 이에 대하여 시장의 자유와 재산권의 절대라는 시장주의적 자유주의 혹은 자유지상주의적 사고의 급진적 실천은 바람직한 발전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의 양 극단의 충돌의 우려가 그것이다.


 


5. 새 헌법 제정에 가까운 수준의 헌법개혁 논의는 집중과 선택의 미학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면서 큰 줄기에 대한 국민적 공론을 접근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헌법의 개방성이라는 성격에 비추어 그 조화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헌법이념과 헌정제도의 양 쪽에서 논의하는 헌법개혁의 논의와 진행은 건국 60년의 정체성을 담는 개헌의 논의에 실질적인 동력을 줄 것이다.  


 


 


<약력>
전 경실련시민입법위원회 위원장
현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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