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관련 5개 시민단체 공동성명

관리자
발행일 2000.02.17. 조회수 4033
사회

우리의 현행 보건의료체계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시민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으며 시민의 건강을 담보로 한 의료계의 상업주의적 논리는 그 극에 달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보건의료제도는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며 국민건강을 진정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체제로 거듭나야만 한다.


의료계의 장삿속으로 인해 그간 우리의 의료제도는 돈벌이가 안 되는 ‘예방’사업보다는 당장에 돈이 되는 ‘치료’위주의 체계로 발전해 왔다. 이에 따라 의료계는 그나마 미흡한 공공의료정책의 확충을 사사건건 반대하였고, 터무니 없는 고가장비와 고도기술 도입 경쟁으로 치달아 국민들의 의료비만 폭발적으로 증대시켰다. 그토록 엄청난 의료비 지출의 결과는 약물오남용의 만연과 이로 인한 국민들의 내성률 증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료보험체계는 국민 개개인의 높은 본인부담금과 한정된 보험급여 혜택으로 인해 정작 중병이 발생했을 때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지난 5월, 시민단체와 의약단체 간의 의약분업 합의는 약물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의 시행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지만, 내년부터 실시되는 의보통합과 더불어 낙후한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고 의약품 유통체계를 정비하며 후진적인 제약산업을 합리적으로 재편하는 등 제반 보건의료개혁의 출발선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


의약분업 합의를 계기로, 시민소비자단체는 그 동안 보건의료제도의 전반적 개혁을 위해 의료계 및 약업계가 개혁의 대상이 되기보다 개혁의 동반자로서 시민사회와 더불어 함께 개혁의 선두에 서 주기를 간곡하게 요구하였다. 예컨대 최근의 의보수가에 대한 논의가 그렇다. 지난 수십년 동안의 파행적인 의보약가체계를 통해 막대한 음성적 수입을 향유해 온 의료계이지만 보건의료개혁의 동반자로서의 관계설정을 위해, 약가인하와 더불어 수가체계의 정상화를 위한 논의에 시민단체는 자리를 함께 하였던 것이다. 음성적이고 불법적인 의보약가이지만 유사 이래 처음이라 할 대규모의 약가인하는 당장에 의료계의 경영 여건에 일정한 압박을 주는 것이 사실이고, 또한 의료계를 개혁전선에 끌어들이겠다는 충정에서 지난 6개월 동안 끈기있게 협의에 임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드디어 일련의 논의를 통해 그 결실이 맺어지려는 순간에, ‘약사의 임의조제 근절방안이 미흡하다’는 대한의사협회의 일간지 광고는 이러한 시민단체의 노력을 모두 수포로 돌리는 납득하기 힘든 사건이다. 이미 임의조제 근절 방안은 지난 5월의 합의과정에서도 충분히 반영하였고 다시 정부안에서는 이 문제를 더욱 강화시켰음에도 또다시 ‘임의조제’ 운운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납득할 수 없다. 시민단체로서는 의사협회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모종의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시민단체로서는 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 일각의 각종 음모나 이해관계 흥정에 더 이상 끌려 다닐 수 없는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의약분업은 시민사회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국민적 약속으로서 이해관계 집단의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다. 비록 의료계가 의약분업 합의의 한 당사자임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의료계가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한 불법적인 흥정이나 모종의 ‘음모’까지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보건의료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적 열만을 의료계가 자신들의 이권 보전을 위해 희생시킬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상황에 즈음하여, 시민단체로서는 지금까지 협의한 의보수가 인상과 관련한 일체의 논의조차도 이미 국민 앞에 합의한 의약분업안까지 백지화시키려는 의료계의 음모 앞에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이번 논의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무책임과 졸속행정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지난 15일 의보수가 합의를 시민단체가 일부 수용하는 때에 즈음하여, 정부는 시민단체와 일절 협의도 없이 의료보험 본인부담금을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여 소비자를 우롱하였다. 높은 본인부담금과 한정된 보험급여 체계로 많은 서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서 본인부담금 문제는 시민사회의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국고보조를 통해 재정적자를 보전하기로 한 정부의 약속은 무책임하게 방기한 채 시민단체를 앞세워 정부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졸속 행정 앞에, 국민들이 과연 어떻게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으며 정부는 무슨 명분으로 의료계의 장삿속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이제 시민소비자단체는 의약분업 합의의 일 주체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신의조차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내팽개치는 후안무치한 의료계에 대해, 그리고 시민적 공감대 없이 일방적이고 졸속으로 정책을 결정해 나가는 정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 바이다.


하나, 의료계는 의약분업을 훼손하는 납득할 수 없는 ‘광고’를 게재한데 대해 국민 앞에 즉각 사과하여야 한다.


하나, 의료계는 지금까지 국민건강을 볼모로 의약분업보다는 자신의 이해관계 관철을 위해 각종 문제를 야기한데에 대해 사과하고 지금부터라도 의약분업 실현을 위해 적극 협력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하여야 한다.


하나, 정부는 11월 1일 예정대로 약가인하를 단행하여야 하며, 의보수가 인상은 의약분업에 대해 의료계가 협조하고 관련법안이 통과되어 시행이 확정된 이후에 재검토 추진되어야 한다.


하나, 다만 그 동안 논의과정에서 만들어진 병원경영투명성 확보 방안은 보건의료행정의 최소한의 소비자 보호장치라는 차원에서 차질없이 추진하여야 한다.


하나, 정부는 시민사회의 아무런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된 본인부담금 인상 및 소액 진료비 전액부담제 실시 방침에 대해 재검토하여야 하며, 시민사회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야 한다.


하나, 정부는 다시 한 번 의약분업 내년 7월 실시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방침을 재천명하여 의약분업 실시 혼선에서 오는 국민적 혼란을 방지하여야 한다.


1999년 10월 2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녹색소비자연대, 참여연대, YMCA, 한국소비자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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