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실련 운동, 상근자 정년보장과 특성화가 열쇠다

관리자
발행일 2009.11.18. 조회수 538
칼럼

 


지역경실련 운동, 상근자 정년보장과 특성화가 열쇠다



조근래(경실련 조직위원장, 구미경실련 사무국장)


 


 


  준비된 상근자 공급 단절과 회원 고령화(매력과 활력이 떨어지는 중년남성 조직)에 빠진 중소도시 지역경실련,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광역시 지역경실련 역시 정책 전문인력 이탈과 정책운동의 영향력 감소에 봉착했고, 이에 따른 만족도 저하와 회원 감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자주재정 기반의 감시와 대안’이라는 시민운동의 정체성과 원칙에 상당히 충실한 편인 지역경실련의 사정이 이렇다면, 적어도 ‘정통 시민운동’을 자처하는 지역시민운동단체 대부분이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따라서 오늘의 지역경실련이 처한 고민은 경실련을 넘어 지역시민운동 일반의 고민과 같을 뿐 아니라, 지방의 자율적 시민사회의 현 단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 40대 후반 사무국장 자진퇴직 전통, 조직안정의 걸림돌


  경실련은 중앙과 지역 똑같이 40대 후반 이후까지 상근하면 격이 떨어지는 모습으로 비쳐져 ‘40대 후반 자진 퇴직’이 전통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 운동권 10여년에 경실련 10여년 이상의 경력을 갖춘 민완 사무국장들의 조기 퇴직은, 당장 지역사무총장과 중앙·지역 간사의 정년이 60세 이상으로 보장된 YMCA와의 경쟁력에서 걸림돌이다.


  이 문제는 특히 준비된 상근자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중소도시 지역경실련에선 거의 조직 존립의 문제일 정도로 핵심적인 문제이다. 경실련은 연구단체가 아닌 운동단체이며, 교수가 아닌 서경석이라는 운동가가 만든 단체이며, 조직을 끝까지 책임질 사람은 ‘직업적 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경실련에 투신한 상근활동가임을 먼저 인정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정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 정년인 60세까지 시민운동가로서 지역을 지킨다는 게 존경받는 분위기와 전통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10년, 20년 후 경실련’을 전망할 수 있다. “시민단체 상근직은 자리가 많지 않아 진입은 어렵지만 공무원과 같이 60세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지역전문가’로 자기계발을 할 수 있으며, 급여도 중소기업 수준 또는 공무원 80% 이상 수준으로서 맞벌이를 하면 안정된 데다, 부족한 급여는 언론을 통한 지역사회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명예로 보상받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선 선출직 유급 정치인으로 진출하는데 유리한 점이 있는 등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직장이다.”라는 분위기와 동기부여를 스스로 만드는 게 상근자와 지역경실련이 함께 사는 길이다.


 


 


◇ 정년보장과 구조조정 병행해야


  그러나 모든 상근자가 견결하고 높은 운동 감수성을 지녔다고 볼 수 없으므로 당근(정년보장)과 채찍(구조조정)을 병행하여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우선 상근자 급여를 현실화하기 위해선 상근자를 최소화하는, 기업적 구조조정 방식 수준의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4명은 3명으로, 3명은 2명으로, 2명은 1명으로 구조조정 해야 한다. 사무실 규모도 강당이나 회의실을 없애고 다른 단체나 공공기관 또는 식당을 회의 장소로 이용하는 방법으로 최소화하자. 재정이 취약한 데다 능력 있는 상근자가 귀한 중소도시 지역경실련은, 인건비 외의 지출을 더욱 더 최소화하고 상근자 복지를 우선해야 조직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 같은 구조조정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근자는 퇴출시키는 방식으로 당근과 채찍을 병행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상근자 1∼3명의 작은 단체는 상근자의 역량이 관건이며, “돈 많이 줘야 능력 있는 상근자를 구할 수 있다”는 세속화된 현실을 인정하자. 상근자 관리에도 경실련의 이념인 실사구시를 적용해야 한다.


  구미경실련을 만들고 15년째 ‘나 홀로 상근’을 하고 있지만, 필자가 상근직 대표자였던 1992년 민중당 구미시지구당의 상근자는 무려 13명이었다. 물론 당시엔 모두 무급이었지만, 저임금 상근 인력 수급이 좋았던 시절의 생각에 젖어 창립 6개월 동안 채용했던 단순직 사무 간사를 정리하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해왔다면, ‘100만원짜리 사무국장’을 견디지 못해 벌써 그만뒀을 것이다. 구미경실련이 15년째 존립했을 지에 대해서도 당연히 회의적이다.


  상근자들에게 근무여건 향상과 동시에 지속적인 ‘자기계발’을 요구해야 한다. 시민단체 사무국장은 자기는 공부하지 않고 정책전문가들을 모아 토론회를 만드는데 익숙한 ‘정책 브로커’라는 비판적 시각을 불식시켜야 한다. 한다는 공부라는 게 40대 후반 이후 조기 퇴직에 대비한 개인적인 생계형 대학원 공부인 것 같다. ‘지역전문가’로도 부족하다. 시민들의 감수성은 이미 지자체 감시활동 중심의 ‘자치경실련’에 만족하지 않고, 주5일제 시행에 따른 문화적 욕구와 도시 디자인 등 도시개혁 욕구로 확장되고 있다. 사회복지 수요와 예산, 수혜단체가 크게 늘어났지만 모니터링 단체는 전무하다. 지역경실련이 ‘자치경실련’으로 정체된다면 전망이 불투명하며, ‘문화경실련’과 ‘도시경실련’으로 확대 발전하기 위해선 상근자들의 끊임없는 공부와 감수성 높이기가 필수적이다.


 


 


◇ ‘구미경실련=사회복지경실련’ 등 지역별로 특성화해야


  구미경실련은 지난 8월 정기총회에서 사회복지위원회를 신설했다. 현재 수준의 종합형 시민운동을 이끌어갈 후임 사무국장을 구한다거나 양성한다는 게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 아래, 뚜렷한 줄기 없이 잔잔한 곁가지만 늘어놓는 시민운동보다는 운동 범위를 줄이되 선택과 집중으로 특성화함으로써 줄기 있는 운동성을 유지하겠다는 방법이다.
 


 사회복지를 ‘선택과 집중’ 분야로 선택한 것은 시민운동 명분상 시민단체의 정체성과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회복지 전공자를 상근자로 채용하면 되니까 지방중소도시에서의 상근자 구인난이라는 지긋지긋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같은 지역경실련별 특성화는 자체 역량의 한계를 인정하고, 종합형 시민운동 시대를 마감한다는 전제 위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지역경실련의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규모 있는 지역 현안에 대해선 지역시민단체 연대로 대응해나가면 역량 투입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에 방문한 목포경실련이 이미 이러한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구미경실련의 경우 후임자를 키우고 기반을 만들어준다는 차원에서 사회복지경실련으로의 특성화를 시도하는 것일 뿐, 필자가 상근하는 동안에는 기존의 자치경실련, 문화경실련, 도시경실련에다 사회복지경실련으로 보다 확대된 종합형 시민운동을 힘닿는 데까지 꾸준히 전개할 것이다.


 


 


◇ ‘지역 살길 찾기 범시민운동’ 아이디어를 잘 개발해야


  민주화 시대 20여년, 지방자치 14년의 기회가 있었지만 지방중소도시엔 자율적인 시민사회의 형성이 무척이나 더뎠다. 구미경실련에서 전국 처음으로 1만여 명의 시민청원으로 90억 원짜리 도서관을 만들었지만, 이를 운영할 시민사회가 뒷받침되지 못했다. 지방중소도시 시민단체의 역량은 여기까지인 셈이다. 주민들로부터 환영받고 있는 작은 도서관 운동은 자율적인 시민사회가 형성된 대도시의 이야기에 그치고 있다.
 


 시민사회 영역이 취약한 상태에서 개막된 지방화시대는 민선단체장들의 재선 야심과 맞물려 지방자치단체들을 무한경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갔다. 지역발전이란 명분 아래 진행되는 지방자치단체 간 무한경쟁의 소용돌이에서 시민단체가 지역발전에 무관심하면, 경제와 성장에 무관심한 것으로 각인된 진보정당처럼 주민들로부터 외면 받게 된다. 획일화되고 관성화된 관변․자생단체들 역시 창의적인 운동 아이디어의 한계에 봉착하긴 마찬가지이다.


  지역발전 중심의 주민욕구와 시민단체 조직력의 한계 속에서 지방중소도시 지역경실련은, 새마을운동 등 관변단체․자생단체와 시민단체가 각각의 타성을 극복하고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차원의 공통분모를 찾을 필요가 있다. 바로 ‘지역 살길 찾기 범시민운동’이다. 시민단체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관변․자생단체의 조직력이 손잡고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포지티브 운동을 잘 개발하는 과제는 지역경실련 재도약의 관건이다.


  구미경실련은 2006년 강동문화회관건립청원운동을 인구 10만 부심권의 자생단체와 공동으로 추진해 2만1천여 명 청원으로 통과시켜 구미시가 건립을 추진하는 중이며, 2006~2008년엔 39개 관변․자생단체들이 참여한 이마트 추가입점저지공동대책위원회를 주도하면서 집회․차량시위․불매운동․건축심의저지 농성 등을 전개했고, 2007년에도 경북대-금오공대 통합 시민청원운동을 범시민단체인 구미사랑시민회의와 함께 추진했다.


  2007년 고용인원 1만2천여명 사업장인 구미공단의 ‘LG디스플레이 주식 1주 갖기 범시민운동’(20만7천여 주 66억원 어치 매수)과 2008년의 ‘LG디스플레이 1조3천억 원 투자 시민감사음악회’(2차례 연인원 6천여 명 참여)를 제안단체 자격으로 지역의 자생단체들과 공동으로 추진했는데, 엄청난 성과와 호응으로 지역사회 보수층을 넘어 상공계까지 구미경실련에 대한 이미지 전환과 신뢰, 지지층 확보에 큰 계기를 만들었다. 이로써 지역사랑이 남다른 시민단체라는 진정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2007년 단독으로 전개했지만 ‘대구-구미 간 전철 조기개통 촉구, 대구-구미 동일생활권 구축’ 캠페인(구미지역 연구기술인력 1천명 설문조사, 삭감된 대구-구미 간 전철개통 관련 대구시 국책예산 복구 등)은 특히 구미공단 상공계의 큰 지지를 받으면서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에 대한 구미경실련의 의지를 확고하게 각인시켰다.


  정치와 정부정책 현안에 대한 반응이 덜 민감한 지방의 지역경실련은 정권이 바뀌어 정부가 시민단체를 압박하고 보수단체들이 득세하더라도, 성실하고 창의적인 ‘지역 살길 찾기’ 시민운동 아이디어를 꾸준히 개발해나간다면 정권교체에 따른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본다. 지역경실련이 ‘실사구시 온건노선’을 견지해야 할 이유이다.


 


 



 


<약력>
전 경실련 협동사무총장
현 구미경실련 사무국장
    경실련 조직위원장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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