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사람들] “변화한 패러다임 따라 삶을 위한 성장에 초점 맞춰야”

관리자
발행일 2013.02.05. 조회수 1305
스토리
변화한 패러다임 따라 
삶을 위한 성장에 초점 맞춰야


DSC_0030.jpg  김호균 신임 상임집행위원장을 만나

안세영 회원홍보팀 간사
sy@ccej.or.kr



  2012년은 사회양극화로 분리된 두 계층이 격돌하며 ‘경제민주화’라는 새로운 화두를 만들어냈고 20·30대와 50·60대로 분화된 세대간 충돌이란 새로운 정치지형을 만들었다. 분열의 시기, 멀찌감치 떨어진 독일에서 1년을 보낸 김호균 신임 상임집행위원장(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초상’은 어떠할까? 
  상임집행위 소위원회에 열린 지난 1월11일 조찬을 마치고 동숭동 경실련 회관에 방문한 김호균 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귀국후 불과 열흘 남짓 만에 상임집행위원장으로서 첫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아직 서울의 맹추위가 낯선 그에게 굳게 여민 옷깃을 풀듯 조심스럽게 첫 마디를 건넸다.

Q. 1년동안 베를린에 머물렀는데, 무엇을 했나?
A. 베를린자유대학의 객원교수로 ‘한국 경제발전론’이란 강의를 했다. 한국이 독일로부터 받아들인 제도와 법, 60년대 한국 간호사와 광부 등의 인적교류 등 그동안 경제적 관점에서 독일과 어떤 관계가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 취업의 압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독일 학생들은 본인의 관심사에 따라 학과를 선택하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에서 질문도 많이 하고 높은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미국 같은 경우 한국학과 학생들 대부분이 한국 학생이거나 교포이지만, 베를린 자유대학의 경우 4개 학년 180여명의 학생 중 한-독가정이거나 교포출신의 학생은 두 명에 불과하다. 한국말에 능숙하고 우리나라 영화를 원어로 볼 정도의 수준에 이른 독일학생들도 여러 명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Q. 유럽경제 위기 이후로 독일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독일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분야가 있다면?
A.  독일 사람들 인심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이 제일 먼저 보이더라. 아마 신자유주의 10년의 결과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2003년부터 독일에서도 사회복지는 축소되고 비정규직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베를린 길거리에서 러시아계 언어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게 됐다. 외국인이 독일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위기감이 커져 소위 ‘네오나치’로 불리는 극우세력이 세를 확장하고 있다. 이미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인 ‘독일국민당’은 지방의회에 진출해 10%의 지지율을 얻고 있어 자민당, 기독교민주당 등 보수세력도 이를 경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유럽의 재정위기와 유럽연합이 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가는가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 복지 포퓰리즘이 그리스 재정위기를 초래했다는 일각의 주장과는 달리, 국가부채와 적자재정 등 내부적 원인에 더해 가장 큰 문제는 투기자본의 공격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Q. 밖에서 보았을 때 한국의 가장 큰 현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했나?
A.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경제력 집중 현상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엊그제 삼성전자 매출이 200조를 돌파했다는 뉴스에 이어 부산에서 하루 동안 자살한 사람이 7명이라는 뉴스가 보도되더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마르크스는 자살에 대해 ‘개인의 사회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라고 표현했다. 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이 체제에 대해 저항하려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이고, 저항의 힘조차 없는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자신을 배제시키는 마지막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Q.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나?
A.  우리 사회의 양대 화두라 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을 실천에 옮길 인사를 단행하는 것이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한다. 보수 진영의 후보였지만 공약 중에는 상당히 개혁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다. 결국은 어떤 사람을 쓰느냐가 어떤 정책을 펴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이 원하는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인사가 이뤄져야한다. 

Q. 말 나온 김에 MB정권 5년을 평가한다면?
A.  MB정권은 경제성장에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탄생했지만 그 기대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실패한 정권으로 불리는 노무현 정권 때보다 오히려 평균성장률이 낮다. 누차 ‘비지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했듯이 재벌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정권이었다. 반면에 양극화와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4대강 사업’과 같은 대형사업을 무모하게 추진함에 따라 국가부채는 더욱 커졌다. 수익성이 좋고 경영평가도 좋은 공기업, KTX나 인천공항을 무리하게 민영화하려다 국민의 저항에 부딪히는 일도 발생했다. 또한 퇴임 후 거주할 택지를 매입하면서 꼼수를 부리다 들통 나는 일마저 생겨 국민의 조롱을 받는 지경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총체적 부실을 드러낸 정부였다고 본다. 

Q.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라는 책을 번역하기도 했는데, 새 정부 민영화 정책은 어떻게 보고 있나?
A.  앞선 정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미 수도사업의 민영화가 시작되었고 가스산업도 SK에 매각할 준비가 완료되었다. 새 정부의 정책기조에 민영화가 있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단체의 꾸준한 감시와 견제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Q. 경실련이 시민단체로서 가지는 장점은 무엇인가?
A.  경실련의 활동범위가 포괄적이어서 ‘종합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경제문제가 정치, 사회, 문화 문제와 유기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에 관련된 다른 문제들을 여러 측면에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개혁, 경제개혁, 남북문제 등도 이러한 포괄적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Q. 하지만 일각에서는 ‘백화점식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A.  전문가에게 의존하면 문제를 깊이 있게 보는 것이 가능하지만 다른 연관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민도 배제될 수도 있는 것이다. 독일에는 ‘전문가 바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분야를 벗어나서는 한 발자국만 벗어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한 예로 지난해 독일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얼굴에 흉터가 나고 팔꿈치에 금이 가는 상해를 입었다. 독일의 의료시스템에서는 각 분야별로 팔에 통증이 생길 때는 정형외과 의사에게만 상담하라하고, 얼굴에 마비된 부분은 이비인후과 의사에게만 상의하라고 하면서 일체 다른 분야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는다. 각각의 의사가 매일 진료를 오는 것도 아니어서 하루걸러 하루씩 오는 의사에게 즉각적인 몸 상태를 상담하는데 큰 불편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을 총괄해서 전체적인 몸상태를 체크해줄 ‘주치의’가 필요했던 것이다. 
  경실련에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완충할 수 있는 상근활동가들이 있다. 상근활동가들 스스로도 전문성을 기르면서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균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할 것이다. 

Q.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을 번역하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 시대에 마르크스 원문 번역이 왜 중요한가?
A.  먼저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사회를 마르크스의 그것만큼 깊이 있게 또 정확하게 전달해주는 이론이 없다.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정확하게 분석해놓았기 때문에 현재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이론이다. 다음으로, 사회주의 몰락 이후 마르크스주의도 망한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너졌다고 개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몰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주의를 더 공부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예고한 대로 공황과 위기가 반복되는 상황이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증명됐다. 마르크스는 ‘금융 과두제’라 칭한 금융 자본집단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가치 또는 부를 생산하지 않고 다른 산업 자본의 가치를 빨아먹는 기생적인 성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금융 자본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금융주도 자본주의를 이해하는데 마르크스의 시각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는 사람이 노동을 하면서 손을 쓰지 않고 머리를 쓰는 ‘지식 노동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탁월한 안목과 식견도 포괄하여 앞으로 자본주의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Q. 새 정부 출범 후 경실련이 어떤 부분에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하나?
A.  사회의 패러다임이 ‘성장’에서 ‘복지’로 이동하고 있다.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뽑을 때까지는 고도성장을 통해 일자리가 창출되고, 사람들이 승진하고, 월급도 차근차근 올라가는 것을 기대했지만 이제는 기업의 성장을 통해 내 생활이 보장될 것이라는 기대는 무산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복지에 대한 기대는 더 높아지고 있다. 국민의 기대와 관심이 있는 곳에 우리 사회의 필요가 있고 이 패러다임에 경실련 활동도 집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복지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전향적인 정책들이 결정되고 있지만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재벌들의 강한 반발 때문에 이미 대선 이전부터 부정적인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때문에 경실련 같은 시민단체의 압박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성장을 위한 성장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위한 성장이 필요하다는 뚜렷한 인식이 새 정부에 없는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 

Q. 돌아오자마자 ‘상임집행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각오를 듣고 싶다.
A.  국민들의 기대와 관심이 복지 확대에 집중되고 있는 만큼 대다수 국민들의 삶을 좀 더 편안하게 해주는 역할을 경실련에서 했으면 한다. 무엇보다 자살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새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힘주어 말하면서 당장 일자리가 불안하고 다니던 일자리에서 쫓겨난 사람들에 대해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앞뒤가 맞지 않다. 무급휴직자는 복직되고 희망퇴직자는 복직되지 않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삶의 짐을 덜어주고 안정된 삶으로 변화하는데 경실련이 좀 더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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