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드라마에 나타난 주부상에 대한 모니터 보고서

관리자
발행일 1999.10.11. 조회수 6831
사회

I. 들어가는 말


가정이나 인생, 사회생활에 대해서 함축적 의미를 부여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드라마라는 장르중에서 아침 드라마는 주부들을 그 주 수용자층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드라마의 허구세계나 현실과의 격리를 감안하면서도 극중 캐릭터를 통해  자신을 동일시 해보고 상황에 대해 공감도 하며 심취하거나 몰입을 통한 일체감도 느낀다.  또한 드라마는 우리 인생에 끼어 들어 은연중에 자신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으며, 그 시대나 사회를 살아가는 여러 계층에 대하여 어떠한 모습으로든 획을 긋거나 그 모습을 변형시켜 놓을 수도 있는 위력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진들은 드라마 극본을 쓰는 일에서부터 제작, 방영까지 상당량의 책임을 가지고 방송에 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안고 사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 더욱 드라마의 위력은 클 수 밖에 없음을 생각하며 본 회에서는 현재 방영중인 두 방송사의 아침 드라마에 나타나는 주부의 상을 분석, 드라마가 담아내고 있는 주부의 정체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Ⅱ. 분석 대상 및 기간


1. 대   상  :  MBC  아름다운 선택 ( 월 ~ 토  /  09:00 ~ 09:30 ) 
                  SBS  그녀의 선택 ( 월 ~ 토  /  08:30 ~ 09:00 )


2. 기   간  :  1999년 8월 11일부터 8월 30일 까지 ( 17회분)


Ⅲ. 분석 결과


1.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없는 한 주부는 나약하다(?)


시대적인 흐름에 충분한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드라마는 그 시대에 적합한 사회적 욕구를 충분히 반영해야 된다고 본다.


과거에 우리는 주부를 억척스러운 아내 또는 강한 모성애를 지닌 그리고 보호본능이 뛰어난 무조건적인 희생양인 여성으로 고착시켰다. 하지만 현 세태에서 여성의 권위 및 지위상승 이라는 측면에서 들여다 볼 때 주부의 역할과 지위에 대한 자리 매김이 활발해 지고 있으며, 정치나 사회참여 등 그 삶이 과거의 여성과는 달리 주체적이고 적극적이며 폭이 넓어지고 있다. 또한 자기다움을 알고 한껏 표현할 수 있는 주체적 의식을 지닌 주부들이 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을 볼 때 "아름다운 선택"에서 보여지고 있는 윤정(이혜숙 扮)은 너무나도 나약하고 심약하며 주부로서의 캐릭터 성격이 그다지 분명하지 못하고 비주체적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니들 봐서라도 힘내야지”
“공부나 열심히 해. 니들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엄마 도와주는 거야.”


위의 대사에서 보여지듯이 그녀의 모습은 늘 나약하고 심약하여 동정심의 대상이며 그 주변 인물들이 그를 보호하고 간섭하려 한다. 아이들에게는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엄마를 돕는 일 이라며 약한 모습으로 세상을 버티어 나가고 "현실인식"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과  판단이 능동적이거나 자발적이지 못하고 불분명하다. 


윤정은 가정의 발판 위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누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점은 남편 안 빈을 한때 사랑했던 배은희(이보희 扮)가 “넌 울타리가 필요한 여자야”라고 하는 대사 속에서도 주부인 윤정을 규정하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주부라는 계층 속에 묶여져 있는 여성은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지면 아무 존재도 될 수 없는 비주체적인 인물인가? 가정이라는 것도 엄연히 외부적인 상황이다. 이 외부적인 상황에 의한 정체성의 획득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주인공 주부는 섣부른 판단에 따른 이혼을 하고 이혼 후의 몰아닥친  상황을 이성적으로 정립하지 못한 채 방황한다. 몸의 병을 앓고 자식들로부터 동정을 받으며 남편과의 재결합도 생각해 본다. 이렇듯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을 가정이라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만 재발견하려는 주부의 방황은 끝이 없어 보인다.


2. 지나친 너그러움, 자기 감정에 대한 기만


“아름다운 선택”에서 주인공 윤정은 남편에 대한 질투와 사랑이 그대로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하는 이중성도 보여준다. 오히려 남편 앞에서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려는 듯, 인내심 있고 너그러운 태도다. 자신의 모든 것을 스스로 해석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생을 어떤 식으로 풀어 나가야 하는지 판단하지 못한 채, 닫혀지고 방황하는 주부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외유내강이 아닌 외강내유의 나약한 자아를 주부의 정체성에 덧 씌위 놓은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다음 대화의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윤정과 은희의 대화


◎ 윤정 : 나도 자존심이 있는 여자야, 딴 여자에게서 마음 뺏긴 남자 두 번 다시 껍데기 붙들고 살고 싶지 않아
◎ 은희 : 남편 뺏기고 사는 주제에 끝까지 잘난 척은
◎ 윤정 : 남자들 늦바람 무서운 거야. 특히 정민아빠처럼 여자한테 눈감고 사는 남자들 늦게 마음주면 걷잡을 수 없어. 정민아빠 이해해. 너한테 버림받은 후로 눈감고 살다가 이제야 정신이 든거야. 얼마나 설레겠니?
◎ 은희 : 이런 등신. 마흔 넘은 남자들 바람기 그런식으로 이해하고 온전하게 가정 꾸리고 살집 몇 집 되겠니? 사내놈들 다 도둑이야. 그 도둑 심보 다 이해하면 늙어가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라고 혼자 부처같은 소리야. 잘나봐야 지도 남자고 사내놈들 다 똑같애. 그러니까 어린 기집한테 미쳐 맛이 갔지
◎ 윤정 : 여자한테 실수한번 없던 사람이야. 일 외에 어떤 것에도 관심없던 사람이 여자 땜에 미쳤다면 인정해 주자.
◎ 은희 : 네가 못하면 나라도 뜯어 말려. 내가 할 꺼야
◎ 윤정 : 넌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 사람 애들 엄마는 나야. 내가 인정하고 용서하겠다는데 네가 무슨 참견이야.


이상에서 보여주듯이 주부인 이 혜숙은 자신 이외의 대상에 대해서는 상당히 포괄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고려하는데 있어서 미숙하게만 보여진다. 자신의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을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부들에게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간혹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다 드러내는 주부상이 그려지기도 하지만 이럴 때의 주부는 비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상식적으로 이해받기 힘든 행동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결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는 아닌 것 같다.


보호받고자 하는 본능과 자기 연민 속에 살고 있던 윤정이 유일하게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 곳추세우는 인물은 바로 자신의 친구이자 한때 남편의 연인이었던 은희다. 여기서도 주부 윤정의 한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 우왕좌왕 방황하는 비주체적인 대상인 주부, 그들에게 가정만이 그들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는 유일한 기반일까? 그들에게는 우정도, 사랑도, 자기애도, 뚜렷한 인생관도,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도, 합리적인 태도도 기대하기는 아직 힘든 것일까?


3. 무감각하고 소극적인 주부의 사랑방식


지금까지 많은 드라마에서 주부가 남편을 적극적으로 진지하게 사랑하는 것으로 그려지지만은 않았다.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주부 자체에 대한 해석을 올바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의 사랑의 방식은 당연히 무감각하고 주체적이지 않게 그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정을 꾸리면서 남편은 아내에게 가장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하고 가슴속에 감춰둔 열렬한 사랑의 대상은 아내가 아닌 다른 제3자 이다.


이건 주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주부들의 남편에 대한 사랑은 다분히 건조하다.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갈등의 부대끼는 대상으로, 혹은 질투와 속박의 대상으로 남편을 대한다.


진지한 남녀간의 사랑의 형태를 드라마 속 누구에게서나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이렇게 건조하게 사는 것이 부부간의 생활임을 공인하는 듯 하고 또 이렇게 사는 부부들의 모습을 아무 재고 없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것은 일종의 공식처럼 되어 버렸다. 적극적인 사랑의 대상을 남편이나 아내가 아닌 타인에게서 찾고자 하는 드라마의 양태를 보며 드라마가 가정의 원형을 깨뜨리며 일그러진 가정의 형태를 제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4. 왜곡된 주부상의 집합 “그녀의 선택”


“그녀의 선택”의 경우 등장인물들의 설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과장되어 있다. 모두 전형의 극단을 이루고 있다. 악녀의 전형, 허영심 많은 사모님의 전형, 푼수의 전형, 물질만능주의자의 전형 등 현대사회의 왜곡된 인물의 전형들만 모아놓은 느낌이다.


이 드라마에서도 연희(강문영 扮), 희수(김혜리 扮), 승국(안정훈 扮)의 모친인 주부가 등장한다.


김연희의 모친(윤미라 扮)은 무능력하고 일확천금만을 꿈꾸는 남편을 대신해서 승국이네 집 파출부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억척스런 주부였지만, 딸에게 사랑을 선택한 결혼보다는 물질적으로 풍족한 나강석을 선택하도록 하여 그 덕에 졸부가 된 뒤 돈이 가져다주는 안일함과 부의 풍요를 즐기며 삶에 안주하고자 한다. 그녀는 자기발전과 경제적 안정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자식을 통해 위치상승을 얻고자 하는 피동적인 캐릭터이며 자식에게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잘못 심어준 무책임한 주부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승국의 모친(정영숙 扮)은 허영심 많은 주부의 전형으로 보여지며 아무 생각없이 자식과 남편에 대한 사랑만을 인생의 최대 가치로 알고 살아가는 주부로 보여지는데 후에 남편의 파산과 중풍 앞에서 아들에게만 의지하고 투정하는 철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희수의 모친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려 하는 딸의 잘못된 선택을 부추기며 오히려 교통사고 후 딸을 현민에게 떠넘기려는 몰지각하고 또한 푼수끼있는 주부의 모델로 그려진다.


이들 뿐 아니라 주인공인 연희와 희수가 주부가 된 후의 모습도 하나의 전형으로 왜곡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연희는 재벌의 아내로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이만 기다리는 맥없는 모습을 보이며 물질적인 풍요와 자신의 식구를 부양한다는 점 때문에 남편에게 자신의 주장을 거의 펴지 못한 채 인형처럼 살고 있다. 희수는 결혼은 했지만 여전히 마음을 잡지 못하는 남편의 뒷조사하기에 바쁘다. 두 사람 모두 결혼 전에는 자신의 일을 가진 여성들이었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이들의 일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단지 남편과의 관계에서만 모든 사건이 출발하고 끝을 맺고 있다.


Ⅳ. 결   론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드라마는 일상의 작은 면들을 투영시킴으로써 사회의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어느 한 작가의 글로 방송되는 드라마 속의 캐릭터를 통해 시청자들은 어쩌면 자신의 살아가는 모습을 찾아볼 수도 있는 것이다.


매일매일 말로 쏟아내는 대중매체의 거대한 물살 속에 우리는 하루하루 나의 세계 자체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 보고도 싶어한다. 아침 드라마를 시청하는 주부들은 그 드라마에 나타나는 주부의 모습을 보면서 잠시나마 자신과의 동일시나 감정이입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1C가 다가오는 시대, 고전적인 가정의 형태가 무너지고 새롭고 다양한 가정의 패러다임이 속출하는 시대에서 드라마에 그려지는 주부상은 가정을 벗어나 방황하거나 남성이나 물질에만 얽매여 사는 모습이어야 하는 것일까?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자들이 주부의 삶 자체를 꿰뚫어 보고 그들의 정체성을 올바로 확립했다면 이렇게 나약하고 소극적인 혹은 다양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왜곡된 하나의 전형만을 추구하는 주부상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이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확실한 자기 삶에 대한 책임과 미래에 대한 판단을 먼저 세우고 이혼 후의 자신의 삶도 적극적으로 안고 갈 수 있는 주부, 감정의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약한 모습이 아닌 주체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을 갖고 한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주부, 자식과 남편을 소중히 여기지만 그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안겨다 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지 않는 주부, 외부적인 요건으로 자아를 확립하지 않는 주부, 그렇기 때문에 외부적인 상황으로 인해 그 정체성이 무너지지 않는 다소 완고한 주부 등등 주부에게라기 보다는 인간에게 요구되어 지는 일반적인 인격을 고루 갖춘 주부상을 이제는 보여줄 때가 아닌가 한다.


드라마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의 군상은 다양하다. 그 다양함 속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긍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모습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99년 9월>

첨부파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