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 ‘대안은 없다’는 낡고 끈질긴 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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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11.28. 조회수 48192
칼럼

[월간경실련 2023년 11,12월호][시사포커스(3)]

‘대안은 없다’는 낡고 끈질긴 환각


- 윤석열 정부의 조세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 -


이용준 경제정책국 간사


"성평등과 페미니즘이 그렇게 중요하면 자기 돈으로 자기 시간 내서 하면 된다… 자신의 이념이 당당하다면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으면 될 일이다. 왜 이념을 앞세워 세금을 받아 가려 하느냐"


작년 8월 권성동 국민의힘 전 원내대표가 자신의 SNS에 남긴 흥미로운 글이다. 당시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문화 추진 사업이 중단되면서 비판이 일자 볼멘소리를 낸 것이다. 필자는 그의 갈라치기 정치 수사 보다 ‘사상의 자유시장’이란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권 전 대표에게 (여성)인권은 다른 모든 상품들과 같다. 그에게 인권은 갤럭시와 아이폰 중 무엇을 사야 할지에 대한 취향 문제와 다름없다. 인권시장은 다른 모든 시장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면 자기 조정되는 것이다. 시장의 선택을 받고 존재 가치를 증명하거나, 도태돼 사라져야 한다. 국가의 재정지원은 국민의 선택(수요)을 왜곡할 뿐이다.


자유주의 철학에 경도된 자들은 국가의 공적 개입을 극도로 혐오한다. 토지, 인간(노동력), 화폐, 심지어 사상의 문제까지 상품화돼 시장에 맡겨야 한다. 사회는 완전한 시장경쟁을 통해 진보하고, 개인의 이기적 선택은 공공의 이익을 확대한다는 낡은 신념이다. 자유주의 철학은 우리 시대의 선험적인 신앙으로 굳어졌다. 정말 그럴까?


신자유주의란 무능

‘윤석열 정부의 조세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는 이 끈질긴 교조적 신념에 물음을 던진다. 발제자로 나선 유호림 교수는 △자회사 배당금 익금불산입제 △부동산 세제 완화 △기업승계세제 등 윤석열 정부의 ‘부자감세’ 정책을 설득력 있게 비판한다. 낡은 신자유주의식 낙수효과 정책은 사회 전체 이익을 대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유 교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구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소득양극화는 1980년대 이후 급속도로 확대된다. 대처리즘(Thatcherism), 레이거니즘(Reaganism)과 함께 신자유주의 기조가 글로벌스탠다드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다. 미국의 경제학자 파블리나 체르네바(Pavlina Tcherneva)가 분석한 ‘Distribution of Average Income Growth During Expansions’ 지수1)를 보면 잔혹한 현실은 더 선명해진다. 레이건 정부 출현 이후 미국 경제 확장 기간 동안 상위 10%가 가져가는 소득분이 하위 90%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2008년 금융위기 이후(2009~2012년) 상위 10%가 가져간 소득분은 100%를 넘어섰다. 하위 90%는 그나마 있는 살림마저 약탈당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8년 이후 소득불평등이 확대되기 시작한다.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에 편입되면서다. 2021년 우리나라 소득 상위 10%는 전체 소득의 46.5%와 전체 부 58.5%를 차지한 반면, 소득 하위 50%는 각각 16%, 5.6%를 가진데 불과했다. 유 교수는 “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자산가와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경제환경이 빠르게 구축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각종 데이터를 분석한 후, 현재 경제구조가 미래 성장동력을 잠식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일부 자산가와 기업을 위한 조세정책 자체를 전환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사회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반세기 동안 우리는 자유주의 철학이 다수에 대한 탈취를 정당화하는 편협한 환각일 뿐이란 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현실의 급박한 우려를 비웃듯 신자유주의의 위상은 여전히 견고하다. 이것은 너무나 자명하고, 선험적이며, 합리적인 신앙심이다. 심지어 진보 진영 시민운동가들조차 ‘사회주의는 망했고 대안은 없다’며 대처주의자를 자처한다. 신자유주의만이 일반 이익에 복무한다는 가증스러운 거짓말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일부 자산가와 특권 계층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야만적인 시스템을 대중들에게 관철시킬 수 있었을까?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덜 읽힌”

이탈리아의 경제·사회학자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는 “애덤 스미스는 과거 경제학 거장 가운데 가장 널리 언급되면서도 가장 드물게 읽힌 사람 중 하나”라고 말한다. 우리가 자유주의 경제철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에 대한 중대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해보자. 우리에게 스미스는 ‘작은 정부’의 열렬한 지지자다. 정부의 공적 개입 없는 완전경쟁시장이 공공의 이익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국가 없는 ‘자기조정시장(self-regulating market)’이 가능하다는 그의 이론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정책가들과 기업인들의 신앙이 됐다.


하지만 실제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기대한 자유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 국가의 시장 개입을 찬성, 나아가 강력히 권고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스미스는 자신의 걸작 「국부론」의 많은 지면을 할애해 국가의 의무를 강조했다. 예컨대 그는 일반 이익을 위한 공공사업과 공공기구는 국가가 건설,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공공사업 운영을 위한 특별세를 걷고,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해야 한다고 말했다.2) 공기업 민영화가 살 길이란 신자유주의 입법자들의 아집스런 신념과는 대조적이다.


아리기도 국부론을 상세히 분석한 후 “스미스가(…) 정부에 충고할 때, 훗날 자유주의적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자본 친화적인 성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아리기에 따르면 스미스의 정치경제학은 ‘자기조정시장’ 이론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가 시장의 존재 조건을 창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3)


한편 스미스는 임금인상 또한 국부 증가의 결과로 보았다. 그는 “이것(노동의 후한 보수)을 불평하는 것은 그 나라의 최대 번영의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대해 한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 교섭권을 약화시키고 임금 인하가 숙원사업인 신자유주의 지지자들의 입장과 완전히 대조적이다.


질긴 이데올로기, 출구는 없는가

유 교수는 발표를 끝낸 후 ‘인식의 전환’을 강조한다.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 즉 신자유주의자들이 난도질한 현실의 비극을 마주하자는 주장이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뜬금없이 ‘이데올리기’ 문제를 들고 나온 이유도 여기 있다고 본다. 이 끈질긴 자유주의 경제철학의 허구를 깨지 않는 사회과학은 공허한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신자유주의 외에 대안은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야만적인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재촉하는 무능한 경제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 단단한 카르텔을 단번에 깨부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변할 수 있다. 시민들 모두가 즐겁게 대화해야 한다. 추상적이고 만연한 공포를 걷어내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해야 한다.






1) 미국의 경기 확장 기간 동안 상위 10%와 하위 90%가 전체 소득 증가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지표
2) 아담 스미스, 김수행 역, 「국부론」2권, 2018, p. 892~893
3) 조반니 아리기, 강진아 역,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2009, p. 6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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