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의료강국의 시민들

관리자
발행일 2022.09.28. 조회수 9419
칼럼

[월간경실련 2022년 9,10월호] [시사포커스(4)]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의료강국의 시민들


-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으로 다시 본 의료공백의 현실 -


가민석 사회정책국 간사


우리는 최근 다양한 의료공백 현상을 마주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공공의료 인력과 병상이 없어 위중증 환자들이 대기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송되었고, 그 과정에서 사망하는 환자도 발생했다. 환자가 몰리는 수도권에서 전문의료인력이 부족해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가 환자 목숨을 담보로 불법의료를 행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의사가 할 고도의 수술까지 도맡아 진행하면서 업무 과중과 더불어 책임소재까지 개인이 떠안아야 했다. 그리고 최근 서울 한복판, 국내 최고 병원에서 응급조치할 의사가 없어 의료진 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

서울아산병원은 22년 기준 전 세계 30위, 국내 1위로 평가받는 의료체계의 최상위 단위다. 국내 최고 의료진과 최대 병상을 자랑하는 상급종합병원이며 뇌졸중 적정성 평가에서는 최우수 등급인 1등급을 받았다. 이에 따라 종별 가산과 적정성 평가 상위 20% 병원에 수가를 가산하는 특전을 부여받는다. 이런 영예로운 훈장을 지닌 병원에서 뇌출혈 증상으로 쓰러진 소속 간호사의 골든아워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당시 필요한 조치로서 개두술이 가능한 신경외과의 2명이 각각 학회 참석과 휴가로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고난이도인 뇌혈관질환 개두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전국적으로 봐도 146명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수도권에 치우쳐있다. 수도권이라고 많지도 않은데, 우리나라 주요 대형병원인 빅5 병원에도 뇌혈관 외과의사는 각 2~3명 수준이다. 그 중 하나인 서울아산병원에 2명이 있던 것으로 그 적은 인원이 당직을 번갈아가며 과도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서비스의 집약지로 볼 수 있는 서울에서, 심지어 소속 의료진이 응급조치 시스템의 마비로 사망한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필수의료체계의 허점이 온 국토로 퍼져 있음을 반증한다.


긴급 국회 토론회, 「필수의료분야 의사부족,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이 사건이 알려지고 국회에서는 반복되는 필수의료분야 공백의 현실을 진단하고 의료인력 및 수가 정책 등 해법을 논의하기 위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와 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 전원, 국민의힘 및 정의당 의원들까지 모였는데, 다양한 토론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던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측은 섭외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날 참석자들은 모두 고인에 대한 애도를 표하며, 끊이지 않는 의사부족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사실 이런 자리는 그동안 정말 많았다. 의사부족 문제는 20년 전부터 예견되었고, 문제를 방치한 결과를 지금까지 생생하게 겪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안타까운 죽음으로 공론화 자리가 마련되곤 하지만 누군가의 이익에 반하여, 정치적 이점이 부족하여 같은 논의를 되풀이하는 것이 허망하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의사가 부족한가.

사실 우리나라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더 이상 입증할 필요가 없다. 2020년 기준 활동의사 수는 한국이 인구 1000명당 2.5명인데 여기서 한의사를 제외하면 2명이다. OECD 평균이 3.7명인데 67.6% 수준(한의사 제외 시 54.1%)인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동결되어 2020년 한국의 의대 졸업자는 OECD 평균 13.2명의 절반인 (인구 10만 명 당) 7.2명이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인구가 줄어 의사 증가율이 더 커지므로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반대급부로 대한민국의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어 의료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라는 것도 전세계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의사 자체가 부족하지만 이른바 필수의료(분류가 명확하지 않지만 쉽게 말하면 국민 생명에 결정적인 의료서비스)분야와 인기 분야, 그리고 지역별 격차는 특히 심각하다. 국회 의원실 자료를 참고하면 2022년 전공의 확보율이 산부인과 80.4%, 외과 76.1%, 흉부외과 47.9%, 소아청소년과는 28.1%이다. 국민 생명에 필수적인 진료과지만 정원보다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올해 기준으로 성형외과, 피부과 등 이른바 인기과가 충원율 100%를 넘기는 기관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2020년 기준 인구 천 명당 의사수를 통해 지역별 현황을 보면 서울은 3.1명인데 반해 충남·울산 1.5명, 경북 1.4명, 세종은 0.9명이다. 예상과 달리 경기와 인천도 각각 1.6명과 1.7명으로, 수도권도 사실은 의료 취약지인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승전‘의사증원’ vs 기승전‘수가인상’

의료공백의 문제가 불거지면 한쪽(주로 시민사회 단체나, 보건의료노조 등)에서는 의대를 설립하고 의사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주로 의료계 등)에서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후 받는 비용인 의료수가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각 측의 주장은 모두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 결코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을 달리기도 한다. 이번 서울아산병원 사건 직후에도 기승전‘의료수가’를 외치는 쪽은 또 한 번 의사부족 문제로 인한 비극이 발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기승전‘수가인상’을 외치는 쪽에서는 의대정원 이슈로 변질시키지 말라며 수가를 올려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의료공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서울아산병원의 비극은 왜 발생했을까. 병원장은 왜 응급의료를 담당할 의사를 여럿 고용하지 않았을까. 의사들은 왜 필수의료분야로 지원하지 않는 것일까. 사안마다 원인과 해결책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확실한 건, 두 축으로 갈린 논의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대를 설립하고 의사 수를 늘리는 것’과 ‘수가를 인상하거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의료정책을 통해 장기적·단기적으로 모두 고려할 과제들이다. 의사가 절대적으로 없어 일손이 부족하고, 비인기과에 의사 유입이 절실한 현재 상황에서 의사증원을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것이 말마따나 우리나라 의료공백을 해소하려는 선한 의지인지 대단히 의심스럽다.


“공공의대 설립하고 의대정원 확대하라!”

경실련은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정원 확대를 주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공공의대가 단순히 국가나 지자체가 설립한 의과대학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확히 “공공의대”라는 개념은 지역의 필수의료를 책임지기 위해 학생 선발부터 양성까지 국가가 지원하고 관리해, 졸업생이 지역에 일정 기간(ex. 10년) 의무복무하도록 운영하는 의과대학을 의미한다. 이는 민간시장에 맡겨서는 해결되지 않는 지역별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며, 국가가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필수의료를 제공하기 위한 초석이라 할 수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