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3,000원 김치찌개에 기회를 담습니다” / 이문수 신부

회원미디어팀
발행일 2024.05.31. 조회수 16736
스토리

[월간경실련 2024년 5,6월호][인터뷰]

“3,000원 김치찌개에 기회를 담습니다”
- 이문수 신부 (청년문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

문규경 회원미디어팀 간사

 

 여러분은 “쌀 한 톨, 밥 한 공기의 기적을 믿으시나요?” 이문수 신부의 첫마디였습니다. 배부름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선사합니다. 나른한 기분마저 들게 합니다. 반면, 굶주림은 참혹하고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보릿고개를 겪었던 사람이라면 그런 감정을 심심치 않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때에 비해 전반적으로 사회는 좋아졌지만, 우리는 아직도 배고픔과 의지할 곳 없는 청년들이 가득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신부님이 있습니다. 성당이나 수도원에 계실 것 같은 신부님이 3,000원짜리 김치찌개를 맛깔나게 끓이십니다. 맛은 또 어떨까요? 먹어보면 이 가격으로 이런 음식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오늘은 3,000원 김치찌개로 배고픈 청년에게 다가가고 있는 이문수 신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Q. 월간경실련 구독자 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월간경실련 구독자 여러분! 저는 ‘청년밥상문간’이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문수 신부입니다. 글라렛선교수도회 소속 신부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뜻깊은 월간경실련에 목소리를 담을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Q. 3,000원 김치찌개를 파는 식당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일인가요?

A. 벌써 시간이 꽤 지났네요. 2015년 여름, 서울에 있는 고시원에서 생활을 하던 한 청년분이 지병과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소식을 들으신 수녀님 한 분이 어르신이나 노숙인 분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가 있는 것처럼 청년들을 위한 식당이 있으면 좋겠다고 저한테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당시에 제가 속한 수도회에 신부님들도 청년들을 위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힘을 합쳐서 식당을 열어보자고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 식당을 열면서, 오히려 음식값을 무료로 하면 청년들이 주저하면서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 ‘가난한 청년들을 위한 무료 식당’이라는 콘셉트의 식당이라면 저라도 안 갈 것 같거든요. 그래서 무료로 하기보다는 부담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하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고 다른 식당들의 사례를 참고하여 3,000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2017년부터 이 가격으로 식당을 운영하다 보니 적자 폭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정기후원자분들 덕분에 감사하게도 계속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성당이나 수도원에만 계실 것 같은 신부님이 식당을 여셔서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A. 다들 신기해하시더라고요. 사실 저처럼 직접적으로 식당을 열어서 운영하시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우리 사회 곳곳의 복지 분야에서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활동하고 계십니다. 과거 7-80년대 노동자의 인권이 열악했던 시기에 사회 운동에 투신하셨던 신부님들이 있으셨던 것처럼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힘쓰고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Q. 경실련 앞에도 ‘청년문간밥상 슬로우점’이 있는데요. 슬로우점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A. 청년밥상문간 슬로우점은 대학로(혜화역 인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다른 지점들은 보통 지명이나 유명한 장소 이름을 붙입니다. 예를 들면 정릉점, 낙성대점처럼요. 여기는 의미를 담아서 슬로우점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슬로우점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경계선 지능인이기 때문입니다. 작년 1월에 경계선 지능인 청년을 자녀로 두신 부모님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경계선 지능인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경계선 지능인은 IQ가 70~85의 평균보다 낮은 지적 능력을 지닌 사람을 일컬으며, 학계에선 ‘느린 학습자’라고도 부릅니다. 하지만 IQ가 발달장애인 판정 기준인 70을 넘다보니 비장애인으로 분류돼 어떤 사회적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일을 할 수 있어야 사회적으로 독립적인 개체가 될 수 있는데, 부모님이 계속 책임을 져야만 하는 상황이 오는 것입니다. 또, 학창시절에도 학업에서 뒤처지고 관계적 측면에서도 어려움을 느끼다 보니 상처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립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입니다. 슬로우점을 열면서는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곳이 경계선 지능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하는 대한민국에 몇 없는 복지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을 모집하고 교육을 하면 그 청년들을 저희가 채용하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총 10명의 경계선 지능인 청년들이 청년밥상문간 슬로우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Q. 식당을 운영하시면서 힘드신 점은 없나요?

A. 일단 가장 먼저 막막했습니다. 식당을 어떤 곳에 할 것인지부터 시작해서 인테리어, 구인 등 모든 것을 혼자서 하려고 하니까 고민인 겁니다. 그래서 주위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차근차근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또, 제가 생업으로 하는 식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많이 오시지 않으면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맛이 없어서 안 오실까?”, “우리가 응대를 잘못해서 그럴까”와 같이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이것을 생업으로 하시는 분들은 정말 하루하루가 고민이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청년문간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드셨는데요. 식당 외에도 다른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A. 제가 처음 시작한 정릉점은 개인 사업자로 영업허가를 받았는데요. 장사를 시작하고 한 10개월쯤 됐을 때, 성북구청에서 공무원 분들이 찾아오셨어요.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하면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개인 사업자라서 지원을 받는 게 제한적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신부님들과 의논을 해서 2020년 4월에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청년들을 만나보면서, 어떤 실패와 좌절의 상황에서 청년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고 힘을 내는 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힘은 어디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작은 성공의 경험들 혹은 어려운 시간을 견뎠던 그런 경험들이 우리 안에 축적이 되면 내적인 힘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올리게 되었고 2019년 봄 8명의 청년들과 ‘청년희망로드’ 프로그램의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2030 청년영화제도 있습니다. 식당을 준비할 때 청년들한테 뭘 해줬으면 좋겠느냐 물었을 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도 없고 이야기를 할 곳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세상을 향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로 표현해보도록 지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2021년에 시작한 2030 청년영화제는 올해로 5회째를 맞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세대 갈등을 해소하고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청년이 써가는 어르신 자서전 ‘세대공감 잇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매달 한번씩 플로깅을 진행하는 ‘푸른문간 환경 서포터즈’ 등 다양한 영역에서 청년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고립·은둔 청년이 54만명을 육박하고 있습니다. 현재 청년들이 짊어진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지난 몇 년간 청년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고민 중 1순위는 취업, 2순위가 진학이었습니다. 이 진학도 결국은 취업과 연관된 문제라고 봅니다. 요즘에는 이에 못지않게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도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절대적으로 일자리 숫자가 모자라지는 않은 것 같아요. 다만,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부족한 것입니다. 절대적 가난의 시절을 경험하신 분들이 볼 때에는 아무 일이나 해서 먹고 살면 된다고 생각을 하세요.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 청년들이 그런 시절에 태어나서 자란 건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야 됩니다. 또한, 우리 청년들을 금이야 옥이야 정말 모든 걸 쏟아부어서 뒷바라지를 해주셨어요. 자신의 꿈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키우셨는데, 우리 청년들이 그냥 먹고 살기만 하면 된다고 아무거나 하면 된다는 마음은 또 아니시잖아요. 그래서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결국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부족한 거니까요.

Q. 앞으로 청년들과 함께 어떤 활동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A. 가장 먼저, 우리 청년문간밥상 슬로우점이 잘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여기가 잘되면 앞으로 만들게 될 식당이나 기존에 있는 식당들에도 느린 학습자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카나 프로젝트’라고 해서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현지 활동을 지난 달부터 시작했습니다. ‘무카나’는 쇼나족 언어로 ‘기회’를 뜻합니다. 궁극적으로 짐바브웨 청년들이 자립의 기회를 얻고 한국의 청년들에게는 경험의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청년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들이 잘 정착되기를 바라면서 청년밥상문간에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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