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경제정책의 변천1 : 중상주의

관리자
발행일 2011.10.27. 조회수 3565
칼럼






 



이근식 경실련 공동대표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요즘 우리나라는 '한미자유무역협정(한미FTA)'에 관한 논란으로 매우 뜨겁다. 이 협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유방임의 경제정책은 항상 옳으며 자유무역은 교역 당사국 쌍방 모두에 항상 이익을 준다고 주장한다. 애덤 스미스 이래 이는 지금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경제학에서 가장 오래된 논쟁거리이다.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탓에 요즘 우리나라에서 자유무역주의가 대통령을 포함하여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국가의 부(富)의 본질과 원천에 대한 탐구) >1776년 초판본



스미스처럼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그의 <국부론>과 <법학강의록>은 풍부한 역사적 고찰로 가득 차 있다.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후 지난 300∼400년간 구미의 경제정책은 항상 개입주의와 자유방임주의를 교대로 반복하여 왔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시장도 정부도 모두 불완전하여 시장은 시장의 실패라는 문제를, 정부는 정부의 실패라는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만든 모든 정책이 그러하듯이 자유무역정책을 포함한 자유방임 경제정책도 항상 옳은 것이 결코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정책의 역사적 변천이 이를 증명한다. 경제정책도 다른 정책처럼 항상 시대의 필요에 따라서 변하여 왔다. 요즈음 세계를 풍미하는 신자유주의도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며 이미 퇴조하기 시작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을 본떠서 경제학 이론만 가르치고 경제 역사는 거의 가르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학과 학생들은 경제학이론과 경제정책이 끊임없이 변하여 왔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앞으로 여섯 번에 걸쳐서, 중상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사회적 자유주의, 질서자유주의, 복지국가형 개입주의 및 신자유주의의 순서로, 자본주의 경제정책의 변천을 살펴보기로 한다.





자본주의국가에서 최초로 나타난 경제정책은 중상주의라는 개입주의정책이었다. 중세시대부터 부분적으로 등장하였던 자본주의는 대략 16세기경에는 서유럽에서, 봉건경제를 대체하여 새로운 지배적 경제체제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최초의 자본주의경제를 상업자본주의라고 부르는데, 이는 상업이 이윤창출과 자본축적을 낳는 중심산업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산업혁명이후의 19세기의 서양자본주의는 산업자본주의라고 부르며, 19세기 말 이후의 현대 자본주의는 독점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 및 투기자본주의의 세 가지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

 



유럽의 중상주의 시기는 근대국가 건설 단계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유럽에서는 절대군주로 대표되는 강력한 중앙권력이 등장하여 중세에 쪼개져 있던 수많은 영토와 시장을 하나로 통일하고 근대국가에 필요한 새로운 제도(법, 행정, 조세, 금융, 군대, 경찰, 우편, 학교 등)와 기관들을 새로 만들고 정비하여서,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 스페인, 스웨덴과 같은 통일된 근대 국민국가(민족국가)를 건설하였다. 중상주의란 이 근대국가건설 시기에 나타난 유럽국가들의 경제적 국가주의(민족주의)의 체계 내지 사상이다.

 



이에 비하여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나타났던 제국주의는 상업자본주의와 산업자본주의 다음에 나타난 독점자본주의시대의 경제적 국가주의(민족주의)라고 볼 수 있다. 보통 유럽 중상주의의 시대를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로 보지만, 독일과 이태리는,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늦게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통일된 민족국가를 형성하였다. 19세기 후반에 등장하였던 독일 역사학파 역시 중상주의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들은 보호무역주의를 비롯하여 정부의 강력한 경제개입을 지지하였다. 자유주의자였던 스미스가 중상주의를 어리석은 정책이라고 비판한 것에 반하여 이들은 중상주의는 근대국가의 건설을 위하여 필요한 정책이라고 적극 옹호하였다.

 



중상주의 시기 유럽국가들 간에 정치와 경제에서 약육강식의 치열한 투쟁이 벌어졌으며 전쟁도 빈번하였다. 이 때문에 각 국은 부국강병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였으며, 그 결과로 나타난 경제적 민족주의가 중상주의였다. 중상주의시대에 각국 정부는 당시 모든 나라에서 통용되던 화폐인 금과 은을 얻기 위해, 그리고 국가재정자금을 얻기 위해 경제에 깊이 개입하였다.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장려하는 보호무역주의, 군수산업이나 수출산업과 같은 주요기간산업의 직접경영이나 지원, 특정 사업의 독점적 영업권 부여 등이 중상주의의 일반적 정책수단이었다. 중상주의는 강력한 개입주의였다. 스미스는 "중상주의란 그 본질에 있어서 제한과 통제의 학설"이라고 지적했다.

 



정경유착과 재벌 중심 경제가 중상주의의 일반적 특징이었다. 정치권력이 경제를 통제하는 중상주의경제에서 정부와 대기업간의 정경유착이 필연적으로 나타났다.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는 대가로 정부가 기업들에게 이권을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은 소수의 대자본으로의 경제력 집중을 필연적으로 초래하게 되었다. 수많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정부가 밀실에서 흥정하여 결탁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주요한 산업들에서 정부로부터 영업권을 얻은 소수 대상공인만이 영업을 하게 됨으로써, 정부에 의한 인위적인 독과점이 나타나게 되었다. 인위적 독점은, 기술이나 원료의 독점으로 인한 자연적 독점이나, 시장에서 자본의 집중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독점과 달리 정부가 만들어준 독점이다. 소수 대자본과의 정권간의 정경유착과 소수 대자본으로의 경제력 집중은 중상주의의 경제규제의 필연적인 결과였다.

 



이 때문에 스미스는 "대기업의 배타적 특권을 철폐하고, 도제제도의 규약을 폐지해야 한다. 이 둘은 모두 자연적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중상주의에 의해 주로 진흥되는 것은 부자와 권력자의 이익을 위한 산업뿐이다. 가난한 자와 빈궁한 자의 이익을 위한 산업은 너무나 자주 무시되거나 억압받고 있다"라고 중상주의를 비판했다.

중상주의는 왕실 중상주의와 의회 중상주의로 구분된다. 왕실 중상주의는 절대왕권에 의해 운영된 중상주의이며, 의회 중상주의는 의회정치가 확립된 국가에서 의회를 장악한 대상공인들이 운영한 중상주의를 말한다.

 



절대군주제가 확립되어 국왕의 전횡이 가능하였던 16∼18세기 스페인, 포르투갈 및 프랑스가 왕실 중상주의의 대표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국왕이 평민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마음대로 부과하고 사유재산의 강제 몰수도 종종 자행되었으며 경제활동 전반에 대하여 매우 엄격한 경제규제가 시행되었다. 이들 나라에서는 모든 무역이 국가의 허가 사항이었으며 스페인에서는 금은의 해외반출은 사형으로 처벌되었다. 이 결과로 이들 나라에서는 상공업의 발달이 억압되고 국력은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의회 중상주의를 실시한 나라는 시민혁명 성공 이후의 네델란드와 영국이었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네델란드는, 영국에서 명예혁명(1688∼89)으로 의회 민주주의가 확립되기보다 110년이나 먼저인 1579년에 '유트레흐트 연맹(the Union of Utrecht)'을 결성하여 독립전쟁을 전개하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의회민주주의를 건설하였다. 이 의회는 상공인들의 대표로 구성되었었기 때문에 정부정책들은 상공인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이 결과로 네델란드는, 해외 식민지의 쟁탈에 적극적이었고 외국선박의 이용을 금지한 점에서는 다른 중상주의국가들과 동일하였지만, 국가에 의한 몰수나 가혹한 세금이 없었고, 무역이나 국내 상공업에 대한 규제도 거의 없이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허용되었다. 이러한 합리적인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가장 먼저 실시하였던 덕분에 네델란드는 영국보다도 먼저 가장 빨리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고 17∼18세기에 유럽에서 제일 자유롭고 부유한 선진국으로 발전하였다.

 





▲ 16∼18세기 영국의 절대군주 시대와 중상주의 시대를 연 엘리자베스 1세 우표

 



1688년 명예혁명 이후부터 19세기 중반까지 한 세기 반이 넘는 기간 동안 영국은 의회중상주의의 나라였다. 명예혁명으로 의회정치가 확립되고 의회의 주도권을 대상공인들이 잡음으로써, 대상공인들을 대변하는 의회 중상주의가 영국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네델란드보다는 경제의 발달 정도가 뒤졌던 영국의 중상주의는 스페인과 네델란드의 중간이었다. 가혹한 세금도 없었고 민간 경제에 대한 규제도 비교적 느슨하였다. 스미스가 비판한 영국의 중상주의는 바로 이러한 영국의 의회 중상주의였다.

 



중상주의의 경제규제는 결국 정부와 유착한 대자본에게만 유리하고 중소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하였으므로, 스미스가 활동하던 18세기 후반에 당시 새로운 주도 계급으로 발흥하던 중소상공인들에게는 불리하였다. 그리하여 중소상공인들은 정부의 중상주의적 규제를 반대하여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주장하게 되었다. 스미스의 경제적 자유주의는 바로 이러한 중소상공인들의 주장을 대변한 것이었다. 자유주의 자체가 자본주의사회에서 정치적⦁경제적 자유를 원하는 상공인들의 이념이다.

 



16∼18세기 중상주의 시대의 유럽은 근대국가 건설단계임을 위에서 보았다. 근대국가 건설 단계는 근대적 산업국가의 기초를 건설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강력한 중앙정부가 등장하여 대내적으로 영토와 시장을 통일하고, 행정, 조세, 금융, 교육 등 근대적 제도를 정비하고, 도로, 항만, 통신 등 경제 인프라를 건설하고, 주요 기간산업을 직접 경영하거나 지원하여 경제발전의 토대를 건설한다. 비단 중상주의 시대의 서유럽만이 아니라 명치시대의 일본, 사회주의 혁명 이후의 소련과 중국, 그리고 1960년대 이후 군사독재 시절의 우리나라도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 이 시기에는 정부의 경제 장악으로 인해 정경유착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정경유착은 정권과 소수의 대자본 사이에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대기업 중심의 경제가 형성되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이 자본주의에서는 재벌이 되며, 소련과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국가에서는 거대 국영기업들이 된다. 군사독재시절의 우리나라 관치경제에서 정경유착과 재벌 비대화가 발생하였던 것도 이의 한 예이다.

 



근대국가 건설단계 다음에는 민주주의로 가는 길과 파시즘으로 가는 길의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영국, 네델란드, 프랑스 등은 시민혁명을 통하여 절대군주제를 추방하고 민주주의를 건설한 반면에 독일, 일본 및 이태리는 근대국가건설 단계에 형성된 재벌들이 군대와 중앙 독재권력과 결탁하여 파시즘의 길로 갔다. 이 두 가지의 길 중에서 어느 길로 가느냐는 자유주의의 확립 정도에 달려 있었던 것 같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여 전체주의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가 확립된 국가에서는 의회 민주주의의 길로 갔고 그렇지 못한 국가들은 파시즘의 길로 갔다. 이 점에서 자유주의의 확립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확립이 시대의 과제인 우리에게 중요하다. 다음 글에서는 고전적 자유주의를 보기로 한다.



 



/이근식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메일보내기



 



※ 이 글은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2011년 10월 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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