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문제에 대한 TV의 접근 및 해결방식에 대하여

관리자
발행일 2001.01.26. 조회수 2818
사회

Ⅰ. 들어가며


“부부의 문제는 부부만이 안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되어버린 듯 하다. 이제는 일반인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를 TV라는 매체를 통해 함께 이야기하고 풀어나가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으며 이를 보는 시청자들은 자신의 입장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많은 문제들 중에서도 부부의 문제는 상당히 복잡할 뿐만 아니라 당사자가 아니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만큼 당사자들의 의지가 무엇보다 첫 번째 해결의 열쇠이다. 따라서 TV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차적인 역할은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을 통해 부부 양방이 모두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의지를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문제를 단순히 그들만의 사적인 문제로 여기고 해결하려 한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를 단지 프로그램의 소재로만 이용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부부의 문제가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의 기본단위는 가정이며 가정은 부부가 중심 축이 되어 사회를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이혼율과 이로 인해 무너지는 가정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함께 속출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할 때 방송이 부부의 문제를 더 이상 사적인 영역에서만 해결하려 하지말고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이러한 문제들이 개개인의 범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 있음을 함께 인식하고 또 반대로 이들의 갈등원인이 오로지 개인적인 결함보다는 사회적인 인식과 관습이나 제도 등과 함께 맞물려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차원에서 문제의 해법을 제시할 때 방송의 공익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침마당>>의 <부부탐구>와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을 통해 방송이 부부의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개인의 문제를 단지 방송의 소재로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문제에 대한 건강한 방식의 공론화를 유도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자 한다.


Ⅱ. 분석대상
 1. KBS1 <<아침마당>>의 <부부탐구> 매주 화요일 오전 8시30분 방영
 2. KBS2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 방영


Ⅲ. 본론
 
1. 부부문제에 대한 접근과 해법제시


<<아침마당>>은 주부대상프로그램 중에서도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식의 이야기나 단순생활정보 전달을 탈피해 주부들의 일상과 가족의 이야기들을 다양한 코너를 통해 풀어내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화요일에 마련된 <부부탐구>는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부부 중 한 사람만이 고민을 상담하는 여타의 상담 프로와는 달리 부부가 함께 출연해 한 자리에 앉아 자신들의 문제를 털어놓고 조언을 받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이 갖는 장점은 부부가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수 있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해결의 의지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진행자들의 편안한 진행방식과 법률적인 이야기나 딱딱한 심리학적 용어를 벗어난 조언자들의 일상적인 조언도 한몫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부탐구>가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출연자들이 문제점을 깨닫고 해결의 의지를 보이기까지의 과정에서 그들의 문제가 단지 개인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즉, 과거의 삶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그들이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여타의 다른 요소에서도 비롯되었음을 인식하게 되면서 서로에 대한 앙금이 조금씩 풀어지는 것을 볼 때 이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사적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공론화를 유도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은 이혼조정 심판실을 배경으로 이혼을 하려는 부부의 이야기를 드라마의 형식을 빌어 보여준다. 이혼을 앞두고 있는 부부가 판사와 조정관들 앞에서 이혼을 결심하게 된 동기와 배경을 들려주고 이에 대한 조정관들의 의견과 판사의 조정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드라마라는 형식이 주는 장점은 재미와 함께 비슷한 상황에 처한 시청자들이 감정이입을 통해 몰입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인데 반면 드라마라는 형식에 너무 치우치다 보니 부부의 문제를 비정상적인 상황에 몰린 그 두 사람만의 문제로만 치부함으로써 극적인 요소는 보여지지만 리얼리티를 살리거나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이 아쉽다


2. 이혼의 동기는 거기서 거기?? - 주제 선정에 있어 다양성의 부재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은 주제의 선정에 있어 다양한 접근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매번 선정되는 주제들은 아내나 남편의 외도와 의처증 혹은 의부증(38,39,52,54회), 남편의 폭력(57회), 가부장적인 집안에서의 문제(32,60회)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물론 이런 문제들에서 발생하는 이혼의 원인이 가장 많은 탓도 있겠지만 이러한 주제들은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하기에 쉽다는 이유 때문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이미 이런 소재들은 다른 여타의 드라마에서도 충분히 접할 수 있었던 것들로서 굳이 이 프로그램에서 반복적으로 문제제기를 한다면 본격적인 부부문제에 접근하는 드라마로서의 차별화에 장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부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주제들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41회 전생 편’이나 ‘54회 스토커 편’이 바로 그 예인데 ‘전생’의 경우 납량 특집물이나 스릴러물에 어울릴만한 소재였으며 ‘스토커’의 경우 스토커로 인해 부부사이에 위기를 맞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직접적인 부부문제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스토킹을 하는 정신분열증 환자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러한 주제들은 이 프로그램의 선정적인 측면을 드러내고 있으며 원래의 기획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부부의 이혼원인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성격차이라고 한다. 성격차이라는 것은 딱히 집어서 한마디로 원인을 말할 수는 없지만 미묘한 심리적 갈등과 성장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일상에서의 문제가 시발이 되어 결국에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라마라는 섬세한 특성을 살려 이러한 문제들을 다룬다면 극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프로그램의 성격을 공고히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3. ARS로 결정한다?? - 조언자들의 해법제시 방식과 진행자의 역할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은 드라마라는 특성상 실질적인 조언자가 출연하지는 않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판사와 남녀 조정관의 역할이 조언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해법은 언제나 상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어 “클리닉”으로서의 역할에 부족함이 보이는데 이는 프로그램 형식의 특성상 리얼리티의 부재와 주제의 다양성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진부한 문제의식은 결국 진부한 해법밖에는 제시하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ARS를 통하여 시청자들에게 이혼의 여부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실시하고 있는데 다음 회에서 “이혼해야 한다”가 00%, “하지 말아야 한다”가 00%라고 말해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적인 방식의 시청자의견이나 조언은 결국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즉흥적인 판단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의식에 대한 심도깊은 의견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정말 시청자들을 조언자로서 생각한다면 이런 단순구도의 찬/반 결과만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인터넷 등을 통해 올라온 그들의 의견을 몇 가지 소개하거나 직접 시청자가 출연하여 자신의 경험담 등 의견을 말하는 형식을 취한다면 드라마 내용과 유사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로 하여금 실질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비해 <부부탐구>의 경우 정신과 전문의와 영화배우 엄앵란씨가 조언자로 고정출연하고 있는데 두 출연자 모두 친근한 말투와 솔직한 내용의 조언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는 있다. 이들의 목소리(특히 엄앵란씨)는 때로는 일반시청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선배로서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하면서 상당히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이들(특히 엄앵란씨)의 조언이 상담 당사자들을 엄하게 꾸짖거나 심지어 화를 내는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 침착한 조언자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모습은 출연 당사자를 당혹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로 하여금 너무 심하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훈계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또한 프로그램의 성격상 직접 출연자들이 자신의 심각한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진행자들의 적절한 감정조절과 부담없는 진행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아침마당>>의 경우 이러한 진행자의 역할을 무리없이 잘 소화해내고 있지만 너무 쉽게 출연자들의 이야기에 동요되어 진행자로서의 중립적이고 냉정해야 할 위치를 망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자 진행자(이상벽씨)의 경우 자신의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종종 출연자에게 은연중 강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여자 진행자(이금희씨)는 부인을 괴롭힌 남편들에게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경우가 있다.(1월 9일 방영분에서 이금희씨가 출연자 남성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음을 노골적으로 보이는 부분) 물론 진행자의 인간적인 면을 볼 수는 있지만 프로그램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이 이들에게는 더욱 중요할 것이다.


4. 주제 따로 내용 따로 - 주제를 벗어난 내용들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은 주제와 내용이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띈다. 즉 본질적인 문제보다 주변부적인 문제에 오히려 무게가 실리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60화 ‘동성동본’의 경우 제목은 동성동본인데 그 내용에 있어서는 부모가 동성동본이 아닌 여타의 다른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여 다른 여자와 원하지 않는 결혼을 했을 때에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동성동본이라는 제목을 본 시청자들은 아마 동성동본이 결혼을 했을 때 부딪힐 수 있는 문제들이나 이 제도 자체에 대한 어떤 문제제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내용은 아버지의 완고함과 혈통에 대한 지나친 애착(물론 이것이 동성동본의 반대와 연관이 있기는 하지만)으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들-동성동본이라는 이유로 아들과 사랑하는 여자를 헤어지게 한 후 자신이 골라준 며느리가 불임임을 알고 이혼을 강요하는 등의-과 옛 여자를 잊지 못해 방황하는 남편, 그리고 이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내의 모습 등은 일반적인 드라마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에 불과하다.


결국 이 드라마는 통속적인 소재들을 뭉뚱그려 그 안에 동성동본이라는 소재 하나만을 섞어 놓은 격이 되었다.


Ⅳ. 결론 및 제언


위기에 놓인 가정의 문제를 시청자들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유사한 경우에 처한 사람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앞서 분석한 프로그램의 등장은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본질적인 접근과 내용성 있는 해결책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결국 개인적인 문제를 단순히 프로그램의 소재로 이용하여 단순한 볼거리로서 제공하는 오락프로그램과 별다를 것이 없다.


또한 앞서 분석한 프로그램들은 출연자나 주인공의 연령이 한정되어 있는데 <부부탐구>의 경우 중년이상의 부부들이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쌓여온 문제들을 풀어내는 반면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은 대부분 20-30대 부부의 이야기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접근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한다. 중년부부들의 오랜 세월 누적되어온 문제들이나 노년의 황혼이혼 등의 문제에 대한 접근도 함께 한다면 보다 깊이 있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에 한가지 더 제안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드라마라는 형식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진정한 “클리닉”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 극의 리얼리티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단순히 이혼에 관련된 소재만을 차용할 것이 아니라 직접 문제를 안고 있는 시청자들의 참여를 통해 다큐드라마의 형식을 취해보는 것도 극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사회의 가장 기본단위인 가정의 문제 특히, 부부의 문제를 이제는 더 이상 그 개개인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공론화시키고 문제의식을 공유함으로써 이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가정이 건강한 모습을 지켜나가는데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일익을 담당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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