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개편 여야합의안에 대한 경실련 논평

관리자
발행일 2000.02.10. 조회수 2755
정치

  17일 국회에서 의결한 정부조직개편안은 ‘작고 효율적인 정부’라는 행정개혁의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여야가 21세기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차원이 아니라 당리당략과 주고받기식으로 진행하여 원래안에 비해 개악한 여야의 행태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당초 정개심의가 마련한 개편안의 목적은 미흡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국내외 환경변화에 따른 정부기능의 재편이었다. 그러나 여야의 합의안은 기능효과를 반감할뿐 아니라 조직체계도 복잡하고 기형적이어서 부작용이 크게 우려되는 안이다.



  첫째, 여야가 예산업무를 기획예산위와 예산청으로 나누는 바람에 새로운 외청만 하나 더 늘려 조직만 비대해졌을뿐 재정계획과 예산편성ㆍ집행기능이 분리됨으로써 일관성있는 예산정책이 어렵게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총괄적인 예산기획과 예산집행을 하는 기구가 따로 놀게됨으로써 일관적인 예산정책을 기대할 수 없다. 특히 기획관료들과 예산관료들이 충돌할 가능성이 커 정책조율도 어렵고 많은 혼선이 예상된다.



  둘째, 경제부처간 정책조정기능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IMF체제의 효과적 극복과 경제개혁과제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는 ‘경제개혁주체조직’의 추진력과 개혁의지를 바탕으로 한 이해집단간의 조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러나 합의안에는 경제정책조정기구가 기획예산위원회, 예산청, 국무조정실, 청와대 경제수석, 경제장관회의 등으로 다원화되어 있어 체계적인 개혁추진 및 정책조정이 혼선이 예상되어 위기관리체제 관리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셋째, 그동안 환경단체들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주장하던 자연환경보전기능의 일원화, 물관리기능의 일원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연환경보전기능의 경우 내무부의 국립공원관리기능만이 환경부로 이전되었을뿐 문체부의 천연기념물관리기능, 산림청의 야생조수보호기능 등 핵심사항은 오히려 기존 부처에 남겨지는 최악의 상태로 결론지어졌다. 또한 물관리 기능 일원화문제 역시 개편 논의과정에서 언급조차 되지않아 상수관거의 부실공사, 관리소홀로 인한 막대한 양의 수자원 낭비에는 관심이 없는 후진적인 공급위주의 정책에 정치권이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고 말았다.



  넷째, 지방자치발전을 위한 상징적인 개혁의 내용으로 받아들여졌던 내무부 폐지와 자치경찰제 실현의 기치는 사라지고 내무부가 행정자치부로 다시 태어나고 그 외청으로 경찰청을 두는 개정안이 마련된 것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특히 중앙인사위의 신설을 백지화함에 따라 내무부와 총무처를 통합ㆍ신설하기로 한 행정자치부의 기능이 정부개편위의 개편안보다 더욱 강화됨으로써 자치처를 신설하여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기능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조정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자는 학계와 시민단체들의 의견이 무시되면서 이러한 기능이 오히려 축소되고 과거의 내무부와 같이 지방정부에 군림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무총리산하의 국가경찰위원회 신설과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도 무시되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조달청, 병무청, 농촌진흥청, 산림청 등 각부처 외청기관장의 직급을 현행 차관급에서 1급으로 낮췄다가 다시 차관급으로 환원시킨 점이다. 이는 총무처 법제처 공보처 등 ‘힘없는 부처’만 없어지고 나머지는 현상을 유지하거나 일부 부처에는 오히려 외청이 신설되는 등 기국가 늘어남으로써 ‘작은 정부’의 구상을 철저하게 무시한 것이다.



  이와함께 공무원 정년을 단축하려던 방침에 유예기간을 두기로 한 것도 문제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조직축소에 따른 공무원 수의 축소는 당연한 귀결임에도 불구하고 유예조항을 둔 것은 이번 행정개혁을 취지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현재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이 공무원 사회만 제외되는 것으로 이는 관계의 요구를 수용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상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번 여야가 합의하여 통과시킨 정부조직개편안은 정치인들의 당리당략과 주고받기식의 협상에 따라 정부조직개편의 취지와 행정개혁의 시대적 의미가 완전히 퇴색하고 말았다. 관계의 로비와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국민이 동의하는 ‘개혁안’이 되기 보다는 ‘걸레안’‘누더기안’으로 변질되어 세계 어느나라에도 없는 기형적인 정부조직 개편이 되고 말았다. 더욱이 경제여건이 어렵고 개혁과제가 많은 상황에서 이번안은 개혁추진력이 근본적으로 의심이 되는 안이다.



  따라서 정치권은 이번 통과된 안을 실질적으로 무효로 돌리고 신속하게 임시국회를 다시 재소집하고 이미 나타난 국민여론을 수렴하여 본래 개혁취지를 걸맞는 개편안을 새정부출범에 지장이 없도록 빠른시일내에 내놓길 촉구한다. 국민모두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고통을 분담하는 상황에서 정치권만 당리당략에 따라 국민이 여망하는 개혁을 퇴색시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일뿐 아니라 정치권은 철저히 국민으로부터 불신받는 집단이 되고 말 것이다. 정치권은 국민의 무서움을 알아야 할 것이다. (1998년 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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