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실패

관리자
발행일 2011.09.21. 조회수 2190
칼럼






 



이근식 경실련 공동대표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시장의 실패



자유방임의 시장경제에서는 빈부격차와 빈곤, 불황과 대량실업, 독점화, 공공재(公共財)의 공급부족, 외부효과(공해 등)와 같이 여러 가지의 폐단들이 반드시 발생한다. 자유방임의 시장경제에서 반드시 발생하는 이런 경제적인 폐단들을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라고 부른다.



시장의 실패, 첫째 요소는 불공정한 분배와 이로 인한 빈부격차와 빈곤의 확대이다. 밀(J.S. Mill)은 백오십 년 전에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가장 큰 몫은 전연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고, 그다음으로 큰 몫은 거의 형식적으로만 일하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일이 힘들고 혐오스러워질수록 분배는 작아져서, 육체적으로 가장 고되고 사람을 마모시키는 일을 하는 노동자는 생존유지에 필요한 생필품마저 얻는 것이 불확실하다"라고 개탄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많은 빈민들이 비참한 절대 빈곤 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자본주의는 이들을 구제해줄 장치를 자체 내에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빈곤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이전의 전통 사회는 교회나 마을 공동체와 같이 빈민을 구제하는 장치를 자체 내에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등장은 이런 전통적인 빈민구제장치들을 파괴되고 인민들은 절대 빈곤과 저임금으로 내몰았다. 이 때문에 폴라니(Karl Polanyi)는 시장경제를 '악마의 맷돌'(satanic mill)이라고 불렀다.



시장의 실패, 두 번째 요소는 불황과 그에 따른 대량 실업이다. 자본주의 경제에 불황이 존재한다는 것이 최초로 인식된 것은 1870년대 초이다. 1870년대 초부터 1890년대 중반까지 무려 20여 년 동안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전 세계에 걸쳐 대불황이 발생하여 자유방임시장에 대한 신뢰가 동요하고, 보호 무역주의가 다시 부활되었으며, 선진국 간의 제국주의적 쟁탈전이 전개되어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그 후 1929년 10월 뉴욕 주식시장의 주가폭락으로 이보다 더 심한 세계적 대공황이 발생하여 2차 대전까지 계속되자 불황과 대량실업은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임이 누구의 눈에나 분명하게 되었다.



케인즈가 <일반이론(1936)>에서 불황의 원인은 상품들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의 부족임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정부의 확대 재정금융정책(정부가 통화를 증발하여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정책)을 해결책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케인즈의 처방에 따라서 2차 대전 이후 대략 1980년경까지 구미 선진국은 큰 불황과 실업 없이 유례없는 장기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에 세계적 석유파동과 이에 뒤따른 스테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1980년경부터 케인즈의 개입정책을 비판하는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정부의 경제개입이 줄어들고 자유방임의 시장경제가 확대되면서 세계적 경제위기가 빈번히 발생하고 실업이 증대하고 빈부격차의 확대되고 중산층의 실질소득이 감소하였다. 특히 금융부문에 대한 정부 규제가 대폭 축소되면서 세계금융시장이 투기 시장화되면서 세계적 금융위기와 이로 인한 세계적 불황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시장의 실패, 셋째 요소는 독과점이 심해지는 것이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경쟁하는 경쟁시장에서만 시장경제의 효율성이 발휘될 수 있다. 원래 19세기 초 산업혁명으로 공업화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대부분 시장이 경쟁시장이었고, 독과점시장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자유방임의 시장경제가 지속됨에 따라서 독과점화 경향이 등장하였다. 그 주된 원인은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생산물의 평균생산비가 감소하는 규모의 경제이다. 철강업, 시멘트 제조업, 통신업, 에너지산업 등 시설장치비의 비중이 높은 업종에서 규모의 경제가 현저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업종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여 독과점화의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19세기 말의 대불황은 독과점화를 더욱 촉진시켰다. 흉년에 소수 대지주들에게로 토지가 집중되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독점 자본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판매가격을 높이고, 협력업체의 납품가격을 과다하게 낮추고, 대형 매장들이 입점 업체들에게 과다한 수수료와 억지 할인을 강요하는 것처럼 독과점 대기업들은 부당한 횡포를 부리는 경향이 있다.



네 번째 시장의 실패 요소는 공공재의 공급부족이다. 공공재란 사회가 공동으로 생산하여 공동으로 소비하는 재화를 말한다. 무료의 도로, 등대, 가로등, 공원과 같은 무료의 공공시설이나 국방, 치안, 행정과 같은 무료의 공공서비스가 이에 해당한다. 일반 상품과 달리 공공재는 이용자에게 일일이 돈을 받고 팔 수 없으므로, 민간 기업이 생산하려 하지 않으므로 국가가 생산하여 국민들이 함께 사용할 수밖에 없다.



시장의 실패의 다섯 번째 요소인 외부효과란 합당한 금전적 대가 없이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나 손해를 주는 것을 말한다. 무료로 이익을 주는 것을 외부경제라고 하고, 보상 없이 손해를 입히는 것을 외부불경제라고 한다. 기초 학문이나 기초기술의 발전, 정부의 도시개발로 땅값이 올라서 땅주인이 가만히 앉아서 이득을 보는 것, 공원 옆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공원의 경치를 무료로 즐기는 것 등이 외부경제이며, 공해와 같은 환경훼손은 외부불경제이다.



시장에 맡기면, 외부경제가 있는 것은 과소 생산되고 외부불경제가 있는 것은 과다 생산된다. 예를 들어 시장경제에만 맡기면 무료도로는 건설될 수 없고 공장은 정수하지 않은 폐수를 마음대로 방출하여 인근에 피해를 줄 것이다.



스미스를 비롯하여 19세기 전반까지의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실패를 간과하였기 때문에 자유방임의 시장경제를 신뢰하였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영미 경제학에서는 시장의 실패에 관한 이론이 정립되어 정부개입을 지지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에 신자유주의가 유행하면서 경제는 모두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장 숭배자들이 경제학자 중에도 상당히 많다. 이들도 시장의 실패를 경제학원론에서 분명 배웠을 터인데도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안 된다. 현대의 독점 자본주의 시대에서 시장에 맡기라고 하는 것은 재벌들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실패와 천민 자본주의



시장의 실패라는 경제학 용어는 자본주의경제의 구조적 결함들을 모두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시장의 실패는 경제적 문제점들에 국한되지만, 자본주의 경제는 이에 더하여, 금권정치의 발호, 지나친 이기주의와 물신숭배로 인한 윤리의 타락과 인간성의 황폐화, 공동체의 약화와 같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면에서도 심각한 폐해들을 갖고 있다. 경제부문에 국한된 시장의 실패에 더하여 이런 비경제적 면에서의 자본주의 폐해들을 합한 것을 자본주의의 실패(capitalism failure)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실패는 시장의 실패를 포함한다.



자신과 돈밖에 모르는 현대의 천박한 천민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원래 자본주의는 천민 자본주의이다.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돈으로 안 되는 것이 거의 없는 자본주의에서는 누구나 저도 모르게 돈의 노예가 되어 사람들을 단지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 쉽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전성기였던 19세기의 유럽과 미국은 소수 부자들의 허영과 탐욕과 노동자들의 비참한 가난이 당연시되던 황폐한 사회였다. 이러한 천민 자본주의를 추방한 사람이 미국에서는 루즈벨트 대통령이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노동조합을 보호하고 부자들의 사치와 초고액연봉, 근로자의 대량 해고를 부끄럽게 여기는 건강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다. 다른 선진국에서도 복지국가가 형성되면서 천민 자본주의가 상당히 쇠퇴하고 인간미 있는 자본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를 바꾸어 천민 자본주의를 부활시킨 것이 신자유주의이다.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유행하여 자유방임의 자본주의가 찬양되면서, 근로자의 대량 해고와 임금 삭감, 최고경영자들의 초고액 연봉, 부자들의 초호화 사치와 같이 그간 부끄러움의 대상이었던 것들이 다시 찬양과 선망의 대상으로 되었다. 대량 해고로 기업 이윤을 높이고 초고액 연봉을 받는 경영자들의 탐욕스럽고 뻔뻔한 얼굴이 잡지의 표지에 등장하는 세상이 되었다. 천박하고 비인간적인 천민 자본주의가 부활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지 부자는 소수이기 마련이므로, 소수만 부자라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허나 부자들이 전반적으로 부끄러움과 염치를 모르고 동정심이 없다는 것이 천민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이근식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메일보내기



 



※ 이 글은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2011년 9월 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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