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의 "중도 진보" 노선을 분명히 해야

관리자
발행일 2009.11.17. 조회수 534
칼럼

 


경실련의 "중도 진보" 노선을 분명히 해야



유종성(전 경실련 사무총장)


 


 


작년에 우리 학교의 한국인 학생이 내가 과거에 한국에서 경실련 활동을 했다는사실을 알고서는 "그러면 유교수님은 보수적이겠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놀란 적이 있다. 경실련이 적어도 일부 젊은이들에게 보수적인 단체로 알려져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얼마전에는 과거 경실련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분이 경실련은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중도 단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을 직접 듣고서 더 큰 혼란을 느껴야 했다.


 


경실련은 보수적인 단체인가 진보적인 단체인가?  우리 사회의 진보적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경실련에 젊음을 불태웠던 나로서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물론 내가 경실련에 참여할 때 경실련은 급진적이고 비현실적인 진보가 아닌 합리적인 중도 진보를 지향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또 우리 사회의 개혁과제중 상당수의 개혁과제는 진보나 보수를 떠나서 합리적인 공공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개혁과제가 많기 때문에 합리적인 보수세력과도 연대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도 동의했다. 그러나 경실련 자체가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고 그저 중도를 지향하는 단체라면  내가 그렇게 박봉을 감수하고 젊음을 불태우며 참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경실련은 소모적인 이념논쟁보다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데에 주력을 했고, 토지공개념이나 재벌개혁과 같은 진보적인 경제사회정책뿐만 아니라 금융실명제나 반부패개혁과 같이 보수와 진보를 떠나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개혁을 주창해왔다.  경실련은 효율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중도 진보를 지향하였고, 효율성을 중시한 나머지 형평성을 등한히 하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또는 형평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효율성을 무시하는 교조적인 진보주의도 취하지 않았다. 경실련은 대북관계나 통일외교 정책에 있어서도 종북주의와 반북주의를 모두 배격하고 민족화해와 평화를 우선시하는 전향적인 정책을 옹호해왔다.


 


경실련은 언제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개혁을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달성하는 것을 추구해왔다. 그리고 경실련에 참여한 분들 가운데는 상대적으로 보다 진보적인 분들과 보다 보수적인 분들이 공존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창립초부터 지금까지 경실련의 활동내용을 보면 진보도 보수도 아닌 무색무취한 단체라고는 할 수 없고,  크게 보아 중도 진보적인 개혁을 추구해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경실련을 보수적인 단체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경실련의 활동내용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이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라고 본다. 과거와 같이 시민단체들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적극적이고 우호적이 아닌 환경 속에서 경실련이 우리 사회의 진보적인 개혁을 위해 실질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저처럼 현장에서 떠나 있는 사람들보다는 현재 경실련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와 회원들이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청탁을 받았으니 조심스럽게 다음 몇가지 제안을 여러분의 토론을 위해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경실련 창립 20주년을 맞이하여 경실련이 우리 사회의 진보적인 개혁을 추구한다는 것을 분명히 천명하는 것이다.


 


둘째, 경실련이 창립당시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이었던 부동산투기등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했던 것처럼 최근들어 가장 많은 국민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교육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교육의 기회균등 (형평성)이라는 가치를 중시하고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효율성과 수월성을 동시에 균형있게 추구하는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며, 여기에는 교육학자와 현장교사뿐 아니라 학부모, 학생의 의견과 정치학자, 경제학자등의 분석도 함께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평준화라는 이름으로 획일화가 정당화되거나 수월성이라는명분으로 교육의 기회균등이라는 대원칙이 부정되는 일이 없이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경실련다운 대안을 개발하는 것이다.


 


셋째, 시민참여의 확대를 위한 새로운 방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미국의 MoveOn.org 같은 단체들은 인터넷을 통해 수백만명의 회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이라크전 종결, 의료보험개혁 등의 이슈에 다양한 방식으로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참여하며 소액기부를 통해 재정을 운용하는 등 시민운동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 강국인 한국에서도 이러한 방식이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고 본다.


 


넷째, 지역 차원에서는 기존의 전문가중심의 예산감시운동을 넘어서서 시민중심의 참여예산 (participatory budgeting) 운동과 사회적 감사 (social audit)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에서 시작된 참여예산운동과 인도 등 아시아 몇 나라에서 시도되어온 정보공개운동과 사회적 감사운동의 경험과 성과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약력>


전 경실련 정책연구실장, 기획조정실장
전 경실련 사무총장
현 UC샌디에고 국제대학원 교수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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