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민운동의 방향과 과제

관리자
발행일 2009.11.18. 조회수 616
칼럼

 


한국시민운동의 방향과 과제



김용채(경실련 공동대표)


 


 


지금까지의 한국시민운동


  70-80년대까지의 억압적 사회체제가 반독재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으로 인해 탈권위화하고 제도정치와 국가의 개방적 재편이 일어나 시민사회의 자율적 영역이 확장되었다. 여기에는 80년대 후반 한국경제가 호황국면에 돌입하면서 과거 허위적이고 의제적이었던 중산층의식이 비로소 물질적 기반을 얻어 사회적 실체로 등장한 측면과 잇달아 집권한 문민정권들의 친시민사회적 연성화정책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와 같은 배경 하에 등장한 한국의 시민운동은 스펙트럼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결국은 범세계적으로 수용되어온 가치중립적이고 자유민주주의적인 시민사회론에 입각하여 국가와 시장영역의 권위주의와 비민주성을 저지함으로써 시민의 권익신장과 시민사회영역의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로써 한국사회는 절차적 민주화를 상당 부분 성취하였다. 시민운동은 그간 국가와 시장영역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통해 그들의 권위주의적 행태, 비리와 부패, 정책적 무능을 질타하고 각종 개혁프로그램을 제안 추동하여 입법화시킴으로써 자신의 무용론을 농담 삼아 걱정할 만큼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사회가 존속하는 한 변화와 개혁은 필수적인 것이고 이를 효과적으로 견인해갈 시민운동의 역할은 여전히 요구되고 있다. 그리고 시대와 사회가 바뀌면 새로운 운동과제가 발생하고 그에 대응하는 운동조직과 방식 그리고 처방이 달라져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달라진 상황 속에서 지난날 이 땅에 민주주의와 공공선의 괄목할 만한 실현에 이바지해온 시민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어떻게 새롭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에 대해 소박한 의견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향후 시민운동의 방향과 과제


  경실련 운동은 합법적이고 온건하며 가치중립적인 중산층 운동이었고 목표는 공공선(공익)의 실현에 있었다. 그와 같은 운동의 준거는 87년 체제가 대유하고 있는 일정 정도의 민주성, 사회경제적으로 성장한 중산층 의식 등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실련은 평등이념의 급진적 구조화 보다는 자유주의시장경제체제를 수용하는 바탕 위에서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과 감시, 대안제시를 통해 점진적으로 민주화된 중산층 사회를 꿈꾸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는 급진적이고 비생산적인 과거 사회운동방식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현실주의적 고려가 작용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경실련 출범 20년이 된 오늘 공공선의 핵심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실질적 민주주의와 중산층화의 비전실현은 요원하고, 오히려 보수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과거로 역류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경실련의 점진적이고 온건한 가치중립적 운동의 소극성과 현실주의를 비판하는 이상주의 지식인들의 불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주의적 진보성에 있어서 경실련은 현실운동 세력의 헤게모니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경실련의 정체성과 운동방식이 또한 소중한 측면이 있고 깊은 성찰 속에서 인기에 영합하지 않으며 묵묵하게 멀리 내다보는 운동노선을 지향하는 것이 유의미하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사회 진보의 요람이라는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때로 착잡한 생각을 가질 때가 있다. 이 글에서는 경실련 운동의 정체성과 노선 등 문제를 접어두고 영역과 과제 측면에 있어서 일반 시민운동의 방향을 적어보려고 한다. 


 


 1.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 


  실질적 민주주의란 절차와 제도 속에 담아야할 권리가 충일한 상태, 특히 사회 경제적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는 상태의 민주주의를 말한다. 이제까지 시민운동은 대의의 대행에 의해 시민권의 확대,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 등 자유주의적 개혁을 강조해 왔다. 그리고 그 개혁은 정책능력이나 의지가 부족한 정당이나 정책담당자에게 법안이나 정책을 제안 압박하고 여론화함으로써 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정당이나 정책담당자가 자체역량이 부족하고 개혁입법을 하지 못할 때 그와 같은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의적 절차적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권이 상당정도 신장되어 있는 상황 하에서 이제 시민운동은 국민 대중에게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확충해줌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걸맞은 문화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토대와 제도를 만드는데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2. 장기적으로 한국사회회의 비전을 제시하는 운동
 


 한국의 시민운동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창달, 권력통제, 다원주의적 이익대변 등을 주창하는 자유주의적 시민사회 개념에 충실하여 왔으나 이제부터는 방어적 운동에서 나아가 미래를 통찰한 가운데 적극적으로 장기비전과 대안적 가치를 제시하고 만들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 사회체계가 근거하고 있는 근본적인 가정과 지향점을 점검하고 대안적 가치와 삶의 양식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모든 영역을 재구성해 나가는 대안문화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생태주의적 전망, 탈물질주의적 삶의 양식, 여성주의적 시각의 보편화 등이 그것이다. 대안문화운동은 경쟁에서 패배한 자들만의 가족적 운동이 아니라 비인간적 지배문화에 도전하는 좀 더 넓은 사회적 차원으로의 운동이며 그곳으로 가기위해 시민운동과의 결합이 필요하다.


 


 3. 생활세계 개혁과 풀뿌리운동 


  이제까지 한국의 시민운동은 국가나 경제제도 등 거대부문개혁에 치중해온 결과 그 분야의 개혁과제는 상당정도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제도적 성과물은 구성원들의 공명과 자각 없이는 장식적으로만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지연 학연 혈연 등 연고주의, 허례의식 줄서기 따위와 같은 봉건적 인습의 사슬을 끊어내고 시민 개개인의 의식과 관행을 개혁하여 새로운 문화적 가치와 규범을 창조함으로써 그것이 개인적 삶의 의미에까지 파고드는 정신혁명운동을 펼쳐야 할 것이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중앙 집중적이다. 이제 지역주민 생활 속에 뿌리박아 지역의 자치와 공생적 공동체를 강화하는 운동을 활발히 펼쳐야한다. 지역공동체 생활 속에서 고유한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훈련과 역량을 쌓고 타 지역과도 유기적인 연대를 이룸으로써 마침내는 탄탄한 하부구조에 기초한 상부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다행히 경실련에는 전국 각지에 지역경실련이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으므로 이와 같은 역할을 보다 충실히 해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4. 세계시민운동


  지금은 글로벌 세계화 시대이다. 국민국가의 통제를 넘어 자본 노동 자원의 이동이 자유로이  일어난다. 기후와 환경, 질병, 물과 에너지, 전쟁, 빈곤 등은 지구촌 전체에 연관을 갖는 인류공동의 문제들이므로 국제적 공조와 협력관계 속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첨병이라는 다국적 기업의 횡포는 어떠한가. 그런데도 각국 정부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서만 이들 문제를 다루려 할 뿐이고 유엔 등 국제기구도 강대국의 영향력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초국적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세계NGO의 조직과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국가적 정체성 또는 기타 정체성을 떠나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진 세계시민들이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서서 조직화된 방식으로 뭉치고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 각국의 NGO는 자국정부에게 권력이나 자원을 투명하고 책임성 있게 행사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여야 한다. 경실련 국제위원회가 주로 ODA(공적개발원조)가 적절하게 수행되는가를 감시하고 있고, 좀 더 광범위하게 인류공통의 문제를 다루는 한국NGO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구촌 시대의 인류공통의 문제에 대한 좀 더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5. 협치(거버넌스)


  권력과 자본은 기본적으로 감시 비판하고 투쟁하여야 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표면적으로나마 민주화가 상당정도 진행되었다. 정부나 기업이 할 수 없거나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영역이나 사업도 있다.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매 사안마다 대립하고 갈등하면 에너지만 헛되이 소모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정부도 기업도 시민단체도 결국 사회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데 존재의의를 두고 있다. 따라서 시민단체가 사회 공공선을 실현하는데 이들과 협력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될 때는 협력하는 것이 그 책임을 다하는 일일 것이다. 다만 정부나 기업에 비해 조직화된 힘과 자본이 열악한 입장에서 연성화된 관계를 맺게 되면 본연의 비판 감시의 칼날이 무뎌질 염려가 있으므로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경실련은 시민운동과 정부기업간의 파트너쉽을 강조해 시민사회 안에서 노동운동을 고립시키고 시민사회를 보수화 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 경실련의 정체성과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약력>
전 광주경실련 공동대표
    광주경실련 집행위원장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중앙위원회 부의장
현 경실련 공동대표
    광주 NGO센터 이사장
    변호사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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