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을 향한 새로운 시민운동

관리자
발행일 2009.11.18. 조회수 405
칼럼

 


선진국을 향한 새로운 시민운동



최정표(전 경실련 상집위원장)


 


 


  경실련이 벌써 20주년을 맞았다니 나는 그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다. 경실련이 창립된 1989년은 내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교수를 시작한지 6년째가 되는 해였다. 그 6년은 정말로 짜증나는 기간이었다. 우선 캠퍼스에 최루탄 냄새가 마를 날이 없었다. 심지어는 내 연구실 창문이 최루탄 파편에 맞아 금이 가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조용히 연구실에 앉아 있기가 힘든 기간들이었다.


  교수들은 시국선언이다, 서명이다 해서 교수의 성향이 체크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학생들까지 그 틈새에 끼어들어 어떤 교수는 서명교수이고, 어떤 교수는 비 서명 교수라고 나름대로 편 가르기를 하였다. 교수생활이 참 불편했던 시기였다.


  그러던 차에 1987년에 소위 말하는 6.29선언이 발표되면서 정국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하였다. 국민들이 원하던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되고 정치 민주화가 빠른 템포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의 잔영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문민화는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과거와 같은 길거리 정치투쟁은 이제 더 이상 명분을 갖지 못했다. 새로운 사회운동이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탄생한 것이 경실련이었다. 1989년 11월의 일이다. 


 


  나는 경실련의 시민운동 취지에 100% 공감했다. 그런 연유로 1989년부터 경실련에 참여하게 된 것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는 경실련이 당시로서는 꼭 필요한 새로운 사회운동의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경실련은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크게 공헌 하였다. 경실련은 우리 국민이 최고로 신뢰하는 조직이 되었고, 시민들로부터 많은 각광과 사랑을 받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실련에 참여 하였다. 그동안 경실련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국가를 위해 더 봉사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경실련이 사회운동의 효과를 발휘하자 이어서 많은 NGO들이 출현하여 우리 사회 각 부문에서 우리 사회를 더 살기 좋은 사회로 바꾸어 나가는 일에 앞장 서 나갔다. 경실련은 많은 아우들을 거느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경실련은 이제 NGO의 맏형으로서 그 책임이 더 무거워졌다. 맏형이 모범을 보여야 동생들도 훌륭하게 커나가기 때문이다. 경실련은 20년 동안 그 임무를 잘 수행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자만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경실련은 반성할 점도 많다. 특히 아직도 초심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우리가 꼭 한번 되씹어 봐야 할 일이다. 어떤 조직이던 나이가 들어가면 해이해지고 초심을 잃기 마련이다. 경실련도 예외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실련에 대한 시민들의 사랑이 예전 같지 않은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예전 같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그 이유를 논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심기일전하여 새로운 평가를 받도록 우리 스스로가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이제는 사회 환경이 20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경실련도 20년 전의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20년 전에는 그 때의 생각이 옳았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20주년을 맞아 경실련은 새로운 초심을 가졌으면 한다.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민운동을 개척하는 것이 새로운 초심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선진국을 지향하는 새로운 시민운동에 나서야 한다. 선진국은 소득이 높아진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은 사람이 선진화 되어야 달성되는 것이다. 경실련은 사람을 선진화시키는 일에 앞장섰으면 좋겠다. 사람을 선진화시키는 일은 우리 국민을 선진 시민으로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선진국에 나가 보면 앞으로 우리 국민들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를 가늠할 수 있다. 선진국은 살기 좋은 사회이다. 살기 좋은 사회는 서로를 편하게 해주는 사회이다. 서로가 친절하고 서로가 예의 바르고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신뢰하는 그런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 아닐까. 우리도 의식주 문제는 어느 수준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편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회는 만들지 못했다. 정신적으로는 매우 각박하게 사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경실련이 이제는 정신적으로도 편하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을 바꾸는 운동을 해야 한다. 사람을 바꾸는 일은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 한 것이다. 그것도 유아기와 청소년기에 훌륭한 시민을 만드는 교육을 해야 한다. 기성세대는 이미 너무 늦었다. 기성세대를 계몽하여 선진시민으로 만드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따라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새로운 문명인을 만드는 교육에 나섰다. 일본의 선각자들은 구미 선진국을 돌아 본 후 자기들을 미개인으로 보았다. 자기들도 서양과 같은 문명인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 시절부터 새로운 선진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 교육을 통해 항상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진 시민을 길러 냈다. 일본은 산업도 선진화 시키고 사람도 선진화 시켜 이제는 명실 공히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우리도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제 사람을 바꾸는 일에 나서야 한다.


  입시제도를 아무리 바꾸어도 교육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이 바뀌어야 교육문제도 해결 된다. 사람 바꾸는 일은 초등학교까지의 교육 내용을 바꾸어야 가능하다. 기성세데는 별로 희망이 없다. 새 세대라도 제대로 교육시켜 그들 시대에는 그들이라도 행복한 사회를 꾸려 나가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지식 교육에서 탈피하여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일에 나서야 한다. 이것은 초등학교의 교육 내용을 대대적으로 축소 개편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일은 사회운동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수많은 이해관계인이 개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실련이 이제 이 운동에 나섰으면 좋겠다. 선진시민을 길러 내는 교육개혁 운동에 나서야 한다. 이것은 시대의 요청이다. 기초질서를 잘 지키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건강한 선진시민을 만들어 내는 운동이 우리 사회를 명실 공히 선진국으로 만드는 운동이다. 특히 초등학교의 교육개혁 운동에 나서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새로운 교육 내용으로 건강한 새 시민을 길러내면 그들이 사는 시대는 살기 좋은 행복한 사회를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기성세대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에 이미 머리가 너무 굳어 있다. 새 시대의 새 시민은 지금의 선진국처럼 대학의 이름에 연연하지 않는 시민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교육 문제도 입시 문제도 옛날 옛적의 일이 될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그런 사회가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이다.


 


  경실련이 이제는 이런 사회를 만드는 운동에 앞장섰으면 좋겠다. 비록 그런 사회가 우리 다음 세대의 사회가 될지라도 지금 그런 사회를 만들어주는 일에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을 바꾸는 일이 필수적이다. 경실련은 교육을 바꾸어 사람을 바꾸는 운동에 나서는 것이 지금부터의 할 새로운 일로 정했으면 좋겠다.



 


 


<약력>
전 경실련 정책위원장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현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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