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수립 60년의 역사인식

관리자
발행일 2008.01.17. 조회수 441
칼럼

이정희 경실련 상집위원 (한국외국어대 정외과 교수)


환갑(還甲)잔치! 요즘 좀처럼 들어보기 어려운 말이다. 평균수명이 80세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60세가 되었다고 잔치를 벌이는 것이 쑥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잔칫상을 앞에 놓고 자식, 손주들과 함께 흐뭇하게 웃으며 찍은 환갑기념 사진을 쉽게 볼 수 있었다. 60년의 경륜이 서려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과 앞으로 그만큼의 세월을 더 살아 나가야 할 천진스런 손주들의 모습이 꽤나 잘 어울리는 사진이다.


후대 생각하는 환갑잔치의 해


시간의 마디마디 무수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동양철학의 60년 주기는 또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듯하다. 한 세대의 경험을 현세대는 물론 그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길목이기에 그간의 회한과 오늘의 걸림돌, 앞으로의 희망이 혼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정부수립 60돌 무자(戊子)년을 맞아 우리나라 또한 지난 세월의 역동적 변화 속에서 축적한 경험을 다음 세대로 넘겨주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기억하기 싫은 과거도 많지만,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싶은 업적도 꽤 많다. 쭈글쭈글한 얼굴의 모습에 역경의 흔적이 있지만, 은은한 미소에는 여유와 의연함이 묻어난다.


60년 헌정사를 되돌아보면 우리나라는 질곡과 파행의 과정을 끊임없이 겪어왔다. 전쟁과 쿠데타, 유신과 독재정치, 광주민주항쟁과 외환위기, 최근에는 사회경제적 불안정과 이념적 갈등이 우리를 옥죄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진입했으며,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내는 역량을 과시했다. 서울올림픽, 월드컵 대회 개최로 국가이미지를 높일 수 있었고, 여수 엑스포 유치의 기쁜 소식도 들린다.


2월 말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5년을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60년 헌정사를 이어받는다는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한다. 새 정부의 밑그림을 그리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역시 헌정사의 큰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좌파 정권의 실패만 들추어 낼 게 아니라, 과거 보수 정권의 일탈도 꿰뚫어 봐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단순히 정책실패가 아니라, 설득과 포용의 실패였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설득과 포용의 실패, 편 가르기는 흑백논리와 과거 보수 독재정권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와 다름 아니며, 언제나 국민적 저항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절대빈곤 퇴치와 독재타도를 외치던 시절에도 설득과 포용이 결여된 경우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권력을 쟁취한 개인이나 집단은 그 권한을 자의적으로, 독단적으로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정치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일정기간 위임 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파행의 정치가 움튼다.


규제 완화를 통한 효율성 제고의 원칙 또한 마찬가지다. 경쟁을 유도하고 자율성을 높이면 시장 기능에 의해 적절하게 자원이 배분될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규제 완화가 풍요로운 국민의 삶으로 이어지려면 책임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금산분리와 출자총액제한, 부동산세제 등의 규제가 왜 필요했는지 신중하게 되짚어 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설득 포용 균형이 모두의 과제


단지 좌파 정권의 치기에 의한 규제나 평등주의적 정책으로 치부해 버리기보다 과거 60년 규제와 규제 완화의 사이클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규제 완화의 필요조건은 무엇이며,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때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은 없는지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정부 수립의 환갑을 맞는 우리사회는 의연하고 여유 있는 정치, 신중함과 균형감각을 갖춘 정책을 보여 줘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숙제이며 동시에 국민 모두의 숙제다.



이 글은 한국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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