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건강한 사회

관리자
발행일 2009.11.20. 조회수 398
칼럼

 


모두가 건강한 사회


 



김진현(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서러울 때가 배고플 때와 질병으로 고통받을 때라고 한다. 배고픔의 문제는 다행히 경제성장으로 대부분 해소되었지만 질병은 여전히 신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가계소득을 넘어서는 엄청난 치료비로 인해 가정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역사적으로 보면 질병은 가난한 계층에서 더 많이 발생하였고, 사망률 또한 빈곤층에서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인구 특성, 사회경제적 수준, 문화적 환경, 보건의료제도에 따라 질병 발생과 그에 대한 대처 능력은 소득계층 간에 차이가 나타나고 정책적으로 해결하기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런데 질병 발생보다 더 큰 문제는 질병을 치료하는 데 지출되는 치료비가 개인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날 때가 많아 가족 중에 중환자나 난치성 질환자가 있으면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가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우리 이웃에 얼마든지 있다는 점이다. 저소득층은 물론이고 중산층이라고 해도 간혹 고액의 치료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거나 치료시기를 늦추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헌법은 "모든 국민은 건강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건강권을 헌법적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국가가 아직 건강권을 보장해주지는 못하고 있으며, 선언적 의미에 불과한 실정이다. 국민의 치료비를 보장하기 위해 건강보험제도가 시행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치료비의 60% 정도밖에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질병으로부터 이중 삼중의 고통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중증으로 대학병원에서 수술하고 진료비 청구서를 받아보면 건강보험에서 급여해주는 것이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말이 보험이지 진료비 할인제도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대부분 진료비의 90% 이상을 보장해주고 있으며, 우리처럼 개인이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하도록 방치해놓고 있는 나라는 없다.



  정보의 비대칭성과 의료인 면허제도, 의과대학 입학정원 제한에 의한 진입장벽 등 보건의료시장이 가지고 있는 독점적 성격으로 인해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는 보건의료시장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으며, 건강권 보장을 위해 의료서비스의 공급과 재원조달을 국가가 직접 책임지고 있다. 공공병원이 전체 국민에게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를 아주 낮은 본인부담금만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소요 비용은 대부분 조세나 건강보험료에 의해 조달하고 있다. 의료서비스를 의사의 돈벌이 수단으로 허용하고 있는 나라는 없으며, 의료기기와 제약 산업을 성장산업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료기기와 제약이 제조업으로서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반면 의료서비스의 공급은 90% 이상을 영리성 민간병원에 맡겨두고 있으며 건강보험 보장률이 60% 수준에 불과하고, 행위별 수가제로 인해 과잉진료와 허위청구가 만연해있지만 정부의 규제가 거의 없어 국민의 혈세가 무방비 상태로 누출되고 있는 셈이다. 정책결정과정을 보면 강력한 이익단체인 의약계와 이들과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있는 정치권, 보건의료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관료들 간의 끈끈한 삼각관계에 의해 국민의 목소리보다는 이익단체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사례가 적지 않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경실련이 제기한 의약품 실거래가격 공개 소송에서 정부가 패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판결마저 무시되고 있는 지경에 있다.



  자본주의의 순조로운 발전을 위해 도입된 사회보장제도가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할 때,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근로자와 그 가족이 건강하고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적으로 생산성이 증가하고 개인적으로는 치료비로 인한 궁핍도 방지할 수 있다. 질병의 발생 자체를 막는 일은 개인의 능력 밖이라고 하더라도, 치료비 부담 때문에 제때 치료를 못 받거나 가계가 빈곤해지는 사태만은 막아주는 것이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이다.



  열심히 일해서 한푼 두푼 모아 집도 장만하고 자녀교육도 시키며, 적당히 여가도 즐기면서 삶의 질을 추구하는 생활이 우리 모두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질병에 걸렸을 때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치료비 걱정이 없도록 국가가 보장해주어야 한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현재의 60% 수준에서 적어도 선진국의 평균 수준인 90% 수준으로 끌어올려 사회안전망의 핵심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에 따라 급증하는 국민의료비를 적정한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공정한 유통질서를 확립하여 과도한  약가 거품을 제거하고 병원 진료비도 공정하게 지출되도록 해야 한다. 노인요양보험의 합리적 운영을 통해 고령화 사회의 노인부양 문제를 적정한 부담 속에서 해결되는 것도 중요하다.



  의료공급체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공공병원을 지금의 10%에서 30% 정도로 확대하여 의료서비스 공급의 최후보루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스(SARS)나 신종플루의 사례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전염병으로 국가적인 사태가 발생했는데도 이를 관리할 병원을 확보하지 못해 허둥지둥 대는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말아야 한다. 대도시에도 보건지소를 확대하여 필수의료서비스에 대한 지역주민의 접근성을 높이게 된다면 의료이용의 형평성과 의료자원 이용의 효율성이 제고될 것이다.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일반의약품은 편의점에서 판매하도록 허용하여 소비자의 자가치료 기능을 강화하는 동시에 야간이나 공휴일에 약국을 찾지 못해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불필요하게 병원응급실을 찾게 하는 사회적 낭비를 막아야 한다. 



  미래의 성장산업으로서 제약산업과 의료기기산업을 적극 육성하여 다음 세대에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경쟁의 험난한 파도에 밀리다보니 한미 FTA협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차세대 산업으로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가진 제약 산업을 너무 일찍 포기한 것이 아닌가하는 자괴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정책 방향을 제대로 잡아 후속세대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어떤 산업을 선택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저출산은 우리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지금처럼 여기저기서 나오는 단편적인 대책보다는 뭔가 획기적 대안이 필요하다. 예컨대 3번째 자녀에 대해서는 출생에서부터 사망까지 모든 의료비를 국가가 부담한다든지, 보육비와 고등교육비 지원, 주택분양권 등 실질적인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농촌에도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리는 세상을 기대할 수 있다.



  통일을 대비한 의료자원 관리는 지금부터 치밀하게 준비하여, 어느 날 갑자기 닥치게 될 상황 하에서 북한주민에 대한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의료서비스가 적절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의료 인력의 양성에서부터 의료장비, 의약품 공급, 풍토병 연구 등 체계적인 기획과 대책이 필요하다.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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